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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Nov 12. 2023

지칠수록 선택은 미루기

번아웃 인지 단계

처음에는 동료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퇴근 후 고민거리를 같이 털어버릴 수 있는 사람만 있다면 힘든 내일의 회사생활도 나름 즐길거리가 있구나 여겼다. 이 단계는 나의 마음 속 응어리를 같이 공감하고 풀어낼 수 있는 에너지가 맞는 사람만 있다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초기 상태다.


가벼운 우스갯소리의 푸념일지라도 하루 나의 모든 걸 털어내고 나면 당분간이라도 일할 힘을 얻게 되고, 위안을 받는다. 나의 의견에 지지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건 사회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자산이다.


그럼에도 직장생활 5년 정도 넘어가다 보면 더 이상 동료들과의 고민 상담, 불만, 욕으로도 풀어낼 수 없는 내적 답답함이 생긴다. 어느 순간 우리가 매번 같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 한 지긋지긋한 고민은 끝나지 않겠구나 위험을 감지한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세다.' 아인슈타인 명언이 떠오른다.


그때부터 나는 어느 정도 답답함, 무료함을 이기기 위한 만남은 조금 줄이며 나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실질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직, 퇴사, 커리어 방향에 대해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외부 강연을 듣거나 자격증 공부에 몰두했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보다 당장의 변화를 위해 남들이 주로 많이 하는 것을 찾다보니 끈기있게 하질 못했다.


이력서 업데이트를 하다가 좌절하기도 했고, 더이상 타인에게 의지만 해서 달라질게 없을 거라는 생각에 휴식과 또 다른 도전을 위한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3년 전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사업, 개인의 직무 성장 가능성을 고려했을때 번아웃이 온 상태에서 결단이 필요했다. .


어렴풋이 이 상태를 지속할 수 없겠다는 답답함은 퇴사를 통해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6개월 정도 휴식과 재취업 준비를 하다보니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쓸모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연이은 면접 탈락으로 인한 또 다른 우울감을 얻게 됐다. 퇴사 후 일할 때 만큼이나 바쁘게 시간을 보냈지만 즐기지 못하고 내심 불안함을 안고 지내다보니 자신감 위축으로 이어졌다.


그때 나는 다음 번아웃이 오게 된다면 그때는 조금 더 현명하게 극복하자, 무작정 퇴사라는 선택으로 또 다른 불안감에 나를 던지지 말자고 다짐했다. 주위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고, 충분히 환경이 바뀔 수 있는 시점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선택한 나를 질책했다.


|번아웃이 깊어질수록 무언가 인생의 결정, 선택은 미루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현재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감정에 너무 심취하지 말자.

이직에 성공한 후 새로운 직장에 익숙해지며, 그 속에서 나의 포지션을 잡아가기 위한 시간이 2년 정도 걸렸다. 이후 3년차가 되어 나는 번아웃을 다시 마주하게 됐다. 


새로운 업무 환경은 잠시 번아웃을 잊고 내가 앞으로 더 해야할 것에 집중하면서 또 다른 성장을 이루기도 했지만 만족할 수 없는 또 다른 상황에서 오는 번아웃, 높은 업무강도는 결국 똑같은 선택을 고민하게 만들었다.나는 여전히 N년째 번아웃이었다. 


번아웃이 올 때마다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걸까. 분명 선택이 아닌 인내를 다짐했던 경험이 있음에도 여전히 또 다시 마주한 이 병에 대한 나의 처방은 퇴사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번의 결심을 토대로 무작정 이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선택이 아닌 나를 정확하게 진단하고자 했다. 반복적인 나의 번아웃의 이유. 조직 내에서 느끼는 결핍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봤다.


일을 통해 삶의 동기부여를 얻고 직장생활에서 나의 존재감, 업무 수행 능력을 통해 나의 자존감을 높이는 것을 원동력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내가 명확하게 답할 수 없는 다음 항목이 번아웃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일, 조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나의 필수 조건이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임을 깨달았다.

 

1. 조직과 개인의 성장 연결성

2. 직무, 커리어에 대한 불확실성

3. 조직 내 동료와의 관계

4. 능동적, 주체적이지 못한 업무 환경

5. 일을 못하는거 같다는 셀프평가


그 중에서도 5번이 눈에 띈다. 1번부터 4번까지는 통상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장, 일에 대한 가치관으로 중복되는 경우가 많지만 '일을 못하는거 같다는 셀프평가' 는 조금 달라보였다.



가면증후군 (Imposter Syndrome)

1) 자기 능력에 대한 회의적 태고, 평가 절하 : 늘 나는 부족하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이루어도 그것이 온전한 내 능력이라 믿지 않는다.

2) 높은 목표 설정 : 내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새로운 높은 목표를 이루고자 애쓴다.

3) 타인의 평가가 중요 : 다른 사람들 눈에 부족하게 보이지 않을까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신경쓴다.

<명상 및 심리상담 app, 마인들링 출처>



성과 중심의 조직 문화에서 나의 쓸모있음,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가는 직장생활에서 나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내가 일을 잘하고 있는가에 대한 타인의 시선, 평가, 인정을 기본 평판 이상으로 신경썼다. 안정적으로 일을 해내고 있다는 인정, 평가가 수반되는 경우엔 다른 결핍 ( 조직과 개인의 성장 연결성/직무, 커리어에 대한 불확실성/조직 내 동료와의 관계/능동적, 주체적 업무 환경)에 대해서 크게 인지하지 않았다.


업무적 혹은 개인적인 성장과정에서 나의 부족함을 마주할 때 그동안 잠재적으로 불만족했던 기준들이 증폭되면서 번아웃을 자극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다시 찾아야하는가, 내가 앞으로 이 직무를 지속했을 때 성장할 수 있는가, 이 성장통을 겪는것이 정말 필요한가 등등.


직장생활 모두 만족하면 일할 수 없겠지만 특히 업무 능력에 대한 자기 평가는 나의 자신감, 자존감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일에 대한 의욕, 동기부여를 잃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였다. 당당하게, 자신있게 일하는 나의 모습을 통해 큰 동기부여를 얻는 사람으로서 맞지 않는 일을 할 때의 의기소침함은 번아웃에 나를 취약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지속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재고민 하는게 맞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나의 시간을 어떻게 나를 위해 쓸지는 나만이 조율할 수 있다. 회피하기 위한 선택, 합리화 하기 위한 선택일지라도 지금 나를 살릴 수 있는 선택이라면 과감히 질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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