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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민 Jun 12. 2024

믿고 싶지 않지만 여자의 적은 여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업무를 하고 싶어 옮긴 홍보팀에서 다섯 달 동안 연경 선배와 함께 일하며 업무 인수를 하고 배웠다.

그녀는 1980년대 초 입사한 내게는 까마득하고 하늘 같은 선배였다.

20여 년 동안 사보 제작이라는 한우물만 판, 한마디로 엄청난 베테랑이었으니 어쩜 자식 같은 본인의 업무를 놓아야 한다는 서운함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걱정되었을까?

다행히 5개월 동안 가르쳐준다니 열심히 배우리라 다짐했다.


막상 업무를 맡아보니 매월 1일 발간하는 사보를 위해 기획을 하고, 직접 취재를 나가고 외부 전문가에게 원고를 의뢰하고 또 교정, 교열, 윤문, 리라이팅(rewriting)까지 해야 됐다. 편집과 인쇄만 연간계약한 외부 용역업체에 의뢰하는 시스템이었다.

기획만 하고 전체 과정을 외주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원고료와 취재비, 편집비, 인쇄비 등을 따져보니 외주제작 소요예산과 별만 차이가 없어 보였다.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초짜니까 연경 선배와 함께 일할 동안은 지금 시스템대로 하고 천천히 개선해 나가자.


그런데 참 이상한 게 매달 20일부터 약 열흘동안 인쇄소에 딸린 편집실로 출근해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연간 계획 아래 정해진 꼭지가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편집 후 PDF파일을 메일로 보내면 그걸 받아 교정하면 될 텐데, 직접 현장에 나가 디자이너 옆에 앉아 있어야 할까?

덩달아 나도 보조의자에 앉아 지켜봤다.


"제목 글씨 금적색으로 바꿔."

"카메라 아이콘 노란색으로 교체!" 등등 연경 선배는 디자이너에게 하나하나 업무지시를 했다.

예를 들어 '카메라로 본 세상'이라는 콘텐츠 맨 위 왼쪽에 붙어 있는 카메라 모양의 아이콘 색상을 매달 바꾸는 것이다.


'내용이 중요하지 코딱지만 한 아이콘 색이 뭐가 중한디? 온전히 내 업무가 되면 죄다 없애 버려야지!'라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하루는 연경 선배의 지시에 영혼 없이 기계적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는 디자이너가 안 돼 보여 연경 선배에서 조심스럽게 "저는 지금 색도 괜찮은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더니 "여민이 넌 미적 감각이 그렇게 없어서 어떻게 사보를 만든다고 덤빈 거니?"


'응?'

난 교재만 12년을 만들었고, 더군다나 미술을 전공했다. 하하하.

평생 살면서 미적 감각이 없다는 말은 그때가 처음이고 마지막이었을 듯.


인쇄소 편집실은 예닐곱 명 정도 되는 디자이너들이 각자 담당한 회사의 사보를 편집하느라 매킨토시 컴퓨터에 얼굴을 박고 마우스와 자판소리만 들렸다.

간혹 의뢰한 회사에서 사진이나 편집을 바꿔달라고 전화가 오고, 서로 밀당을 하거나 조율이 안돼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내던지는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눈치도 보였다.


어느 날 연경 선배가 잠시 사무실에 들어가 혼자 인쇄소에 있던 날 긴 한숨과 함께 "어이구! 꼴뚜기 같은 년!"이라거나 "전공도 아닌 주제에 잘난 척은..."이라며 회사 담당자들을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저희한테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연경 선배의 갑질로 디자이너가 1년에 7번이나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 날은 감기가 심하게 들어 기침이 끊이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급성폐렴 증세가 있다고 쉬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호흡기 질환이 있었는데, 지하에 있는 인쇄소의 좋지 않은 공기가 원인이었던 것 같다.

웬만하면 견디겠는데 나의 시끄러운 기침소리가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저녁 7시쯤 연경 선배에게 오늘은 좀 일찍 들어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얘! 나는 뭐 하고 싶어서 이 지랄인 줄 아니? 나도 빨리 손 털면 편해. 다 너를 위해서 이렇게 밤늦게까지 고생하는 거잖아. 나 없이 이거 다 혼자 할 수 있겠어?"

마침내 응급실에 실려 가버렸다.

'다섯 달만 참자.'


그렇게 연경 선배는 어느 지사의 부서장으로 갔고, 나 역시 홍보팀에서 3년 근무 후 기획실로 자리를 옮겼다.

몇 년 후 연경 선배가 홍보팀장으로 복귀한 후 소란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연경 선배는 젊었을 때부터 후배는 물론 선배들에게 밥이나 간식을 잘 샀다. 또 복도를 지나가는 직원들을 사무실로 데리고 와 아몬드나 땅콩도 먹이고, 과일도 대접했다.

식물도 좋아해 홍보팀은 작은 온실처럼 온갖 꽃화분으로 가득했다. 물론 밖에서 보기에는 참 너그러웠다.

문제는 과일을 깎거나 화분에 직접 물을 주면 되는데, 여성직원들에게 시킨다는 점이었다. 여성직원들에게만...

결국 반기를 들던 한 직원이 락스와 뜨거운 물을 모든 화분에 부어 버리고, 그것도 분이 안 풀렸는지 컴퓨터를 포맷시키고 회사를 때려치웠다.


대학을 나온 사람이 드물었던 80년대 초 대졸로 입사한 연경 선배 같은 경우는 사실 감히 올려다볼 수 없는 대선배였고, 어려웠지만 내 앞을 개척해 간 여성선배가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정년퇴직 때까지 단 한 번도 우리 후배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한 적이 없었다. 응원도 없었다.

다행인 것은 그녀를 반면교사 삼아 누군가에게 내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노력했다.


연대하며 함께 성장하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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