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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민 Mar 06. 2024

애를 낳고 오니 선임이 되었다.

개나리가 노랗게 핀 4월의 봄날 아침, 77번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다리 사이로 주르륵 뭔가가 흘러나왔다. 말로만 들었던 양수가 터졌다.


남편과 불타는 밤을 보낸 덕분에 애를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세 달 만에 임신을 했다.

시댁 형님네는 딸만 둘을 낳아 시부모님들은 내심 아들을 기대했다.

그런데 임신 4개월쯤 했던 피검사에서 다운증후군이 예상된다는 결과를 받고 하루하루가 피가 말렸었다. 결국 그 당시 자연분만과 입원비가 약 30만 원 정도였는데, 7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양수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열 달 만에 바깥세상으로 나온 아이는 지금 한 손으로 소도 잡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


다리를 베베 꼬며 집으로 돌아와 회사와 남편한테 전화를 하고 바로 한양대학교병원에 입원했다. 흥분한 남편은 친정엄마한테 전화를 했지만 엄마는 본인을 닮아서 아마 내일쯤에야 애가 나올 거라고 천하태평이었다.

진통하면서 너무 배가 고파 남편이 사 온 김밥 한 줄을 다 먹었더니 병원에서 난리가 났다.

관장까지 다 한 산모가 철 없이 밥을 먹었으니... 결국 또 관장을 했다.

엄마 말대로 27시간의 진통 끝에 15대 국회의원 선거날 자연분만으로 아들을 낳았다.

셋째 이모랑 같이 오신 친정엄마는 너도 내가 그렇게 힘들게 낳았다며 간호사한테 아들이면 제왕절개를, 딸이면 자연분만하게 해달라고 청을 넣었다.

아들이 귀한 집안이라 제왕절개로 첫 애를 낳았는데 만약 딸이면 아들 볼 때까지 제왕절개를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 서러운 얘기는 엄마 나이 81세인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원망하고 있다.


애를 낳고 14개월까지 모유를 먹였다. 돌잔치를 하다가 병풍 뒤에서 한복 옷고름을 풀고 수유를 했다.

자다가 일어나 분유 타는 게 정말 힘들었고, 모로 누워 젖만 물리는 게 훨씬 편했기 때문이다. 근처에 사시던 셋째 이모가 산후조리와 아이 19개월에 구립어린이집 보낼 때까지 봐주셨다. 지금은 기본으로 육아휴직이 1년 6개월이지만 90년대 두 달밖에 안 되는 육아휴직이 내게는 정말 2년 같았다.


이른 여름을 맞아 애는 이모께 맡기고 남편과 단 둘이 신라호텔로 호캉스를 갔는데,  모유를 먹이지 못한 젖이 퉁퉁 불어 기대하던 조식도 못 먹고, 새벽 6시에 집으로 달려와 젖을 물렸다.

그날 수유를 하며 어찌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애를 여섯이나 낳아 키우는 현모양처가 꿈인 여자 어디 갔나. 개뿔... 빨리 두 달이 후딱 지나가 출근하고 싶었다.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발걸음도 가볍게 출근을 했는데, 민상선배가 안 보였다.

자리를 빈지 불과 두 달이었는데, 민상선배는 부산지사 부서장으로 발령나 가버렸다.


"그럼 저 많은 종류의 교재는 누가 만들어요?"


빈자리가 채워지긴 했다. 그러나 새로 온 양반은 법령 개정으로 인해 업체에 교재 납품기일 연장해 준걸 제본  후 인쇄하면 될 것 아니냐고 호통 치던 그 감사관이었다.

입사 4년 만에 난관에 봉착했다. 신입사원은 몇 연차까지였지?

애를 뱃속에 다시 넣고 육아휴직을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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