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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다 Dec 17. 2018

파타야는 이별이다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위해 파타야로 떠난다

태국 파타야는 나에게 완벽한 휴양지는 아니었다. 바다는 에메랄드 빛이 아니었고 해변은 장사를 위한 노점으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파타야를 아쉬워하는 이유는 한낮의 여유로움에 있다. 습관처럼 아침 일곱 시면 눈이 떠지는 성격에 더 누워있기도 심심해 대충 옷을 걸치고 호텔을 나섰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조식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현지인 틈에 끼어 아침 식사를 하고 싶었다.


몇 블록을 지났을까. 좀처럼 문이 열린 식당을 찾을 수가 없다. 몇몇 가게 문에 부착된 오픈 시간 알림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OPEN 11:00. 오전 열 한 시는 되어야 슬슬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준비하는 탓에 아침 식사를 할만한 곳을 찾는 것도 일이다. 방콕에서였다면 거리에 늘어선 다양한 스트릿 푸드를 이미 맛보았을 텐데. 방콕을 떠올리며 호텔을 나선 나의 실수였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찾아간 스타벅스. 커피에 크루아상이라도 먹을 생각이었다. 머릿속에는 팟타이와 파인애플 볶음밥, 모닝글로리를 그리고 있는데, 현실은 커피에 빵이라니. 이것도 운명이겠거니 생각하며 문을 열고 들어섰다. 파타야 힐튼 호텔 앞에 있는 그곳은 3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매장 안은 약간의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낮의 파타야는 심심할만큼 여유롭다. 아무것을 하지 않아도 즐겁다.


현지인 점원에게 메뉴를 주문하고 돈을 낸 후 거스름 돈을 내어주길 기다리는데 내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는다. ‘코리아’라는 나의 짧은 대답에 그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내뱉는다. 또박또박 발음 했지만 어색한 억양은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외국에서 외국인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여전히 나에게 감동이다. 나 역시도 한국인 특유의, 외국에 나가면 호의적인 사람이 되기 마련인데, 웃는 얼굴로 전하는 친절에 기분 좋지 않을 사람 있을까. 혹여 ‘팁을 달라는 뜻은 아닐지’하고 잠시 고민했지만 순수한 점원의 행동을 돈으로 보상하고 싶지 않아 간단한 태국어로 몇 마디 리액션 한다.


메뉴가 나오길 기다리는 사이 다른 외국인 손님들이 그에게 주문한다. 그리고는 똑같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고는 그 나라 언어로 다시 인사를 건넨다. 점원의 센스 있는 행동이 보기 좋다. 내가 사장이라면 알바 페이를 올려줬을 것 같다. 여행자들에게 반가운 아침을 건네는 모습에서 파타야의 아침도 함께 반가워진다.


혼자 떠나 온 여행에는 대화가 없다. 기껏해야 항공사 직원과 공항 출입국 심사원, 호텔 프런트와 식당 직원이 말을 꺼내는 상대. 대화라고 하기에도 어렵다. 간혹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여행자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건 그나마 대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 봐야 오늘 어디를 갈 것인지, 언제까지 머무는지 정도지만 그 짧은 대화에서도 여행자의 감정이 생성된다. 낯선 공간에서 만난 낯선 자들끼리의 동질감이라고 할까. 그래서 나처럼 동행 없는 여행자에게 대화는 언제나 새롭고 반갑다.


수영장마저도 한가하다. 모닝글로리는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사이드 메뉴.


파타야 힐튼 호텔 앞에 있는, 스타벅스의 3층은 루프탑 형태로 되어 있다. 해변 바로 앞에 있어서 뷰가 참 좋은데, 뒤로는 거대한 힐튼호텔이 나무처럼 버티고 있어서 시원한 그림자를 만든다.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드는 인테리어와 오션뷰. 해변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그것도 참 여유롭다. 파타야 해변의 아침은 산책 나온 여행자들과 노점 장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이제 막 파타야에 도착했거나 다시 방콕으로 떠나는 사람들만이 채울 뿐이다. 한가롭게 해변을 거닐어도 좋고, 해변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다.


한 낮은 호텔 수영장의 시간이다. 낮잠을 즐기거나 배낭에 꾸역꾸역 챙겨 온 책을 읽거나 수영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심지어 아무것을 하지 않아도 즐겁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유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필요한 건 진토닉 한 잔. 진토닉은 오후의 선베드에서 마실 때 가장 훌륭하다는 (지극히 주관적) 사실을 알게 된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주변이 어둑어둑 해지면 그제야 파타야는 서서히 움직인다.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밤이 되자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한낮의 여유로움과 전혀 다른 밤의 화려함이 시작된다.


파타야 메인 도로를 순환하는 썽태우를 타고 파타야 해변의 끝에서 끝까지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1인당 10바트짜리 버스투어라고 할까) 골목골목마다 시끌벅적한 바비어들이 가득하고 도로에는 과일주스를 팔거나 기념품 혹은 짝퉁 상품을 파는 노점들이 줄지어 있다. 해변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인종의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재미있는 건 슬링백 또는 힙색으로 보이는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스냅백을 쓴 사람이 있다면 한국인이 거의 확실하다는 사실. 그렇게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구경하며 파타야의 밤을 이룬다. 파타야의 밤은 그래서 길다. 새벽 두 세시가 되어도 호텔 창문 너머에서 노랫소리가 들리고, 커튼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조명 빛이 끊이지 않는다.


파타야 버스터미널에서는 (캐리어가 없다면) 오토바이를 타고 파타야 번화가로 이동하는게 가장 효과적이다.


파타야는 낮과 밤, 두 가지 매력을 가진 여행지다. 한가롭게 여유를 좇아 찾은 나 같은 여행자에게도, 또 화려한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려는 여행자에게도 결코 실망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파타야와의 작별은 아쉽다. 모든 여행은 이별이다. 하지만 파타야는 떠날 때의 아쉬움이 무척이나 크게 다가온다. 결국 이곳을 떠나야 하고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한다. 조금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아침 일찍 방콕행 버스에 몸을 싣게 한다. 조만간 다시 파타야를 찾으리라는 다짐은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여행은 그렇게 떠남의 반복이지만 언제고 돌아오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에게 수많은 도시들은 저마다의 관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에게 파타야는 여유로움이다. 그리고 그 감정이 간절해질 때면 다시 그곳으로 향할지 모른다. 오롯이 평온했던 파타야에서의 한 낮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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