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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다 Feb 10. 2019

제주는 겨울에 가야지

세찬 바람을 오롯이 받아들이거나 조금 일찍 봄을 느끼거나..

지난 1월 말경 제주를 다녀왔다. 회사를 옮기기 전 며칠 정도 여유가 있던 터였다. 금요일까지 다니던 회사에서 일을 하고, 그다음 주 수요일부터 새로운 곳으로 출근을 해야 할 때였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는데 여행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문득 제주가 떠올랐다. 서울은 너무 추워,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요일 아침 비행기로 출발해 월요일 저녁 비행기로 돌아오는 1박 2일 스케줄. 제주에서 특별히 가고 싶은 장소가 있거나 혹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꼬박 제주를 가면서, 월정리 해변이나 예래동 근처 보말국숫집, 대정읍 해안도로 말고는 아끼는 장소도 없었기에 이번 제주행은 순전히 휴식을 위한 시간이었다.


제주의 겨울 날씨는 복불복이다.
바람이 세게 불기도 하고,
흐리거나 비가 내리기도,
아예 봄처럼 기온이 높기도 하다.
월정리 해변은 절대 실망을 주지 않는다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아도 제주 바다는 감동이다

첫날 월정리 해변으로 향했다. 불과 몇 년 새 예쁜 카페들이 들어서더니 핫 플레이스로 변해버린 동네가 바로 구좌읍 월정리. 일요일 오후 서너 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려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즐겨가던 카페 바미아일랜드에도 차들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이곳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새하얀 월정리 해변 모래와 그 너머의 에메랄드 빛깔 바다는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의 평온을 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날은 제주의 날씨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매우 추웠기에 실내, 실내로 들어가고만 싶었다. 흐리고 바람까지 불어대는 '월정리답지 않은' 무거운 날씨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보니 그래도 제주는 제주다.


김녕 해안 도로를 지나면서 마주한 일몰.
잠시 차를 세웠다.
바람이 세고 파도가 높지만 내겐 감동이다.


전날 흐리고 강한 바람이 불던 날씨는 어디 가고, 맑은 월요일이 나를 반겼다. 알다가도 모를 제주의 겨울이다. 바람 때문이었는지 서울보다 더 춥게 느껴졌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그냥 봄이다. 기온 역시 크게 올랐다. 따사로운 햇살에 눈이 부시다. 이래야 제주지. 서귀포시 예래동에 있는 국수바다에서 고기국수를 한 그릇 하고 대정읍으로 향했다.


모슬포가 있는 대정읍에서 차귀도 근처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 이곳은 내가 가장 아끼는 제주의 드라이브 코스다. 이 날처럼 기온이 한껏 오른 1월 말, 지금이 겨울인지 봄인지 착각이 들 정도로 따뜻한 날씨에 창문을 열고 천천히 달리면 기분 좋은 바람이 얼굴에 부딪힌다. 그리고 오롯이 봄을 전한다.


즐겨 듣는 노래, 따뜻한 오후, 여유로운 해안도로


이 느낌이 제주의 겨울이다. 유독 추위에 약한 나 같은 사람에게 제주의 따뜻한 겨울은 감사함이다. 간혹 1월 말임에도 불구하고 기온이 영상 10도를 웃돌기도 하는데, 공기의 냄새부터 다르다. '날이 풀렸다'는 표현보다 '우와 봄이다'라는 말이 먼저 입 밖으로 나올 정도. 이 느낌을 알고 있기에 나는 1월 말, 아직 한겨울인 서울을 떠나 제주로 향했다.


그리고 제주는 실망을 주지 않았다. 적어도 '겨울 같지 않은' 따뜻한 오후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말이다. 아무것 하지 않아도 그냥 좋다. 물론 무언가 생각을 정리하려 해도, 제주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멍 때리고 있는 것만으로 즐겁고 재미있다.


제주는 겨울에 가야 한다. 제주를 제대로 알 수 있어서도 아니고 특별함이 있어서도 아니다. 제주의 겨울은 따뜻하다. 운이 좋으면 봄을 만나기도 한다. 물론 다시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겠지만 잠시나마 계절 여행을 다녀온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제주는 기다림을 즐겁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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