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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다 Mar 02. 2019

울릉도는 압도적이다

서서히 드러나는 울릉도의 모습은 엄청난 등장감을 주었다.

이른 아침 묵호항을 출발한 배가 먼 바다를 가르며 울릉도를 향했다. 처음에는 기대감이나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속이 약한 탓에 파도가 높지 않기를 바랐다. 다행히 뱃멀미에 대한 걱정을 심각하게 하고, 철저히 대비하며, 계속 긴장을 유지해서인지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어서 울릉도에 도착하기만을 바라며 계속 잠을 청할 뿐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울릉도를 동행한 동료가 나를 살며시 깨웠다. 저기 울릉도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어디?” 잠에서 깬 나는 창 밖으로 울릉도를 찾기 시작했다. “울릉도가 어디 있어?” 내가 두리번 거리며 동료에게 묻자, 그는 손가락으로 위치를 가리킨다.


보인다. 섬이다. 조금씩 가까워지자 그 거대함이 나를 압도한다. 엄청난 등장이었다. 마치 영화 <관상>에서 이정재의 등장씬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섬이 아니라 산 같다.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요새 같다. 암벽으로 둘러싸인 엄청난 크기의 섬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서서히 드러난 울릉도의 첫인상은 웅장함이었다.


처음 두려움과 달리 울릉도는 친근하게 다가왔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울릉읍
울릉읍에는 좋은 해안산책 코스가 있다



사실 울릉도가 목적지는 아니었다. 독도경비대 취재를 위해 울릉도를 향했었다. 배에서 내려 함께 간 사진기자와 함께 울릉읍의 한 민박집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날씨가 좋다면 예정대로 내일 오후 늦게 일을 마치고, 모레에는 서울에서 저녁식사를 할 것이었다. 결과를 먼저 이야기하자면 나는 울릉도에서 이틀을 더 있어야 했다. 일을 마치고 셋째 날 아침, 울릉도를 출발해야 했을 때 바다는 나를 곱게 육지로 보내주지 않았다. 파도가 높아 기상특보가 발효됐고 출항 일정은 누구도 모르게 됐다.


다시 첫째 날로 돌아와. 미리 예약해 둔 민박집에 짐을 풀고, 예정대로 울릉경비대를 찾았다. 다음날 독도경비대 취재에 앞서 먼저 만나기로 사전 허가를 받았더랬다. 이번 출장의 목적지인 독도경비대는 울릉경비대에 속해 있다. 문제없이 일을 마치고 울릉읍으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위해 찾아간 식당. 오징어 내장으로 끓인 탕을 먹고 울릉도 더덕으로 만들었다는 구이를 먹었다. 역시 출장의 즐거움은 일을 마치고 나서 먹는 저녁 식사에 있다.


그리고 둘째 날 독도에서 주어진 일을 하고 다시 울릉읍으로 돌아왔다. 이때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또 즐거웠다. 순조로운 일정, 즐거운 여행지, 맛있는 음식. 이곳이 천국이로구나. 다음날 울릉도를 떠나야함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집이 좋다. 마지막 날의 시원섭섭함은 오징어회와 소주로 달래기로 했다. 울릉도에 왔으니 오징어는 꼭 먹어줘야겠지.


#울릉도에서 만난 오징어는 반가움 그 자체였다.


저녁 시장에서 만난 울릉도 오징어
날씨가 맑아졌다, 이제 떠나야 한다



이윽고 셋째 날 출발을 하려고 민박집을 나서려고 했을 때, 민박집 사장님이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내게 건넸다. ‘오늘 배가 뜨지 못한다고.’ 헐 이게 뭔 소리. 어떻게 해야 하지. 내 눈동자는 갈 곳을 잃었고, 몸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일단 항구로 향했다. 민박집 사장님의 말이 믿기지 않은 것도 있지만 대책을 찾아봐야 했다. 예정을 벗어나는 일들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가급적 모든 일들이 차곡차곡 순조로웠으면 하는 게 내가 원하는 방식이다.


대책은 없었다. 날씨가 좋아지기를 바랄뿐. 그렇게 기약 없이 울릉도에서 추가시간이 주어졌다. 비가 내리진 않았지만 하늘은 흐렸고 바람도 세게 불었다. 민박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비만 오지 않으면 괜찮다. 어디든 가봐야겠다. 짐을 다시 민박집에 풀고 밖으로 나와 버스에 올랐다. 울릉도 반대편을 가볼 생각이었다. 시간이 된다면 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배운 성인봉 근처 분지에도 가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찾아간 나리분지에서는 평온함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여서 그런지 바람도 잔잔하고 조용하다. 조용한 시골마을 같았다. 책에서만 보던 너와지붕 집들이 있었다. 풍랑특보 덕분에 며칠 더 묶게 되고, 이렇게 구경도 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흐린 날씨가 고맙게 느껴졌다. 울릉도에서 넷째 날 오후, 날씨가 다시 좋아지면서 다음 날에는 출항이 가능할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틀 정도 발이 묶인거면 운이 좋은 편’이라며 좋은 하루 보내라는 덕담(?)과 함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심하면 한 일주일씩 결항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틀이면 운이 좋은 거구나.


그 날은 울릉도 동쪽으로 향했다. 처음 배가 결항됐을 때 이를 어쩌나 하는 걱정은 온데간데없고, 이제 울릉도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조금이라도 더 울릉도의 모습들을 눈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한 사나흘 머물다 보니 울릉읍 정도는 이제 골목들이 익숙해졌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곳에 살던 사람 마냥, 자주 가는 식당 아주머니와 반갑게 인사를 나눌 정도가 됐다. 며칠 더 날씨가 좋지 않아 조금 더 머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 일이라는 게 참 알 수 없어

당장 내일 이곳을 떠날 수 있을지 조차 모르니


풍경이.. 그냥 멋있다는 생각만 든다
울릉도 북쪽은 남쪽과 다른 분위기다
눈내린 성인봉 아래 분지



살면서 울릉도를 한 번은 다시 가게 되지 않을까. 여행을 목적으로 방문하기에는 쉽게 결정 내리기 어려운 곳이지만, 그만큼 한 번 다녀오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섬인 건 분명하다. 처음 웅장한 자태에 덜컥 겁이 들기도 했지만, 울릉도를 떠나며 바라본 뒷모습에는 못내 아쉬움이 가득했다. 언제 다시 울릉도를 찾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그때에도 예정 일정보다 며칠 더 ‘어쩔 수 없이’ 머물게 되는 ‘행운’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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