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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다 Sep 19. 2020

스쿠터 타고 제주 한 바퀴

제주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

사실 스쿠터를 타고 제주도를 일주하겠다는 일정은 계획에 없었다. 매년 한두 번씩 제주를 가면서 자동차를 렌트해 이동하고, 가격 대비 깨끗한 숙소에서 머무르는 것이 당연한 흐름이었다. 특히 이번 제주 일정은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해안길과 올레길을 따라 걸을 것이었다. 스쿠터는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계획에 변화가 생긴 것은 함께 제주로 떠난 친구의 한마디였다.     


“아, 더워... 스쿠터 타고 다니면 참 시원할 텐데.”     


여행 첫날의 코스가 절반도 지나지 않을 무렵, 잠시 쉬어가는 지점에서 친구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제주시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이동하며 3시간여를 걸었을 때였다. 평소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운동에 관심 없던 녀석이었기에 그냥 웃으며 어깨를 두드려줬지만, 스쿠터를 타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여름 무더위의 정점이었던 8월 초순. 뜨거운 햇살은 걷는 내내 쉼 없이 내게 왔고, 무거운 배낭에 마스크를 쓰고 있던 우리는 온 얼굴과 몸이 땀으로 가득했다. 별생각 없이 스쿠터 이야기를 꺼낸 친구. 그러려니 듣고 있던 나. 순간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오, 괜찮은 생각인데.”     


하지만 나는 이제껏 스쿠터를 운전해 본 경험이 없다. 아무리 차량 통행량이 많지 않은 해안도로를 따라 주행한다고 하더라도 ‘안전할까’라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나의 안전도, 다른 사람들의 안전도 함께 중요했다.      


“별 것 없어. 너 자차로 출퇴근하고, 자전거도 두 손 놓고 잘 타잖아.”     


두 손을 놓고 자전거 타는 것이 스쿠터와 무슨 상관이지. 친구 녀석은 이미 마음이 스쿠터로 넘어간 것 같았다. 해는 조금씩 저물고 있지만 내일도 역시 무더운 날이 이어질 것이었다. 짧은 여행 일정을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여행의 만족도를 높이는 길이다. 또 걸어서 제주를 돌아보겠다는 계획은 다음에, 선선한 계절에 해도 될 일이다.라고 나 역시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었다.      


계획에 없던 스쿠터 일정이었지만
언제 또 스쿠터를 타고 제주를 누빌까.
이내 방향을 돌려 택시타고 제주시로 향했다.      


스쿠터 대여점에서 안내사항과 주의사항을 듣고, 주인아저씨의 지도 아래 20~30여분 동안 스쿠터 기초교육을 받았다. 이렇게 교육까지 해줄 줄은 몰랐는데, 초보자인 내게는 큰 도움이 됐다. 시동을 켜고 끄는 것부터 시작해 주정차와 주행에 대해 익히고, 실전 테스트를 거친 후에야 주인아저씨의 오케이 손짓을 받았다.      


내가 탄 스쿠터는 비노50. 배기량 50cc 짜리였다. 예약을 하고 간 것이 아니었기에 남아있는 스쿠터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70~80cc는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곳에 가기 전 전화로 문의한 결과 다른 스쿠터 대여점도 상황은 마찬가지.


‘스쿠터를 빌리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주행에 어려움은 전혀 없었다. 라이딩을 시작한 지 한 30분이 지나자 이내 적응해버렸다. 하지만 절대 방심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새겨들은 안전 수칙을 철저히 지킬 생각이었다.


사흘간 나와 함께 한 스쿠터, 비노50. 걸을 때와 달리 또다른 재미가 있다.


산간도로처럼 스쿠터로 가지 말라는 길은 가지 않고, 50분 주행에 10분 휴식을 지키며 하루에 100km 이상 이동하지 않으면 된다. 자동차 통행 흐름에 따라 도로 최고·최저 속도에 맞춰 이동하면 될 일이었으며, 자동차를 운전할 때와 마찬가지로 방어운전을 하면 사고 날 확률은 낮을 것이었다. 50cc 스쿠터도 차량과 같다.

 

다시 동쪽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두 다리가 아닌 스쿠터를 탄 채였다. 3시간을 걸어 지나친 지점을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통과했다. 바람은 시원했고 기분도 좋았다. 비록 50cc 스쿠터였지만 온갖 멋있는 포즈를 유지하며 해안도로를 달렸다.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예정에 없던 스쿠터가 계획에 치고 들어오면서 전체적인 여행 일정도 수정했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 처음 제주에 오면서 사흘간, 걸어서 서귀포까지 이동하려는 계획은 스쿠터로 아예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바뀌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하루에 70km 내외를 이동하면 될 것이었다.     


그 길을 오롯이 달리는 게 목적이었고,
단지 달리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기도 했다.


첫날은 성산일출봉 근처에서 마무리했다. 스쿠터는 처음이라 겁이 난 것도 사실이었다. 이동 중 주변 경치를 감상할 여유 따위 없었다. 지나가는 차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더랬다. 도로 위 차들 역시 속도가 느린 스쿠터를 배려해줬다.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고, 그제야 목을 위아래 좌우로 움직이며 큰 숨을 내쉬었다.


둘째 날 코스는 성산읍에서 대정읍까지 이어지는 남쪽 해안도로였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8시경 출발해 두 번째 숙소에 도착해보니 오후 4시쯤이었다. 중간중간 휴식하고, 식사하며 천천히 왔음에도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긴장감은 그대로였지만 경직됐던 첫날과 달리 여유가 생겼다.


일부러라도 자주 쉬는 게 중요했다. 뜨거운 햇볕에 살이 탈까 봐 긴팔 긴바지를 입고, 여기에 헬멧과 마스크까지 착용했더니 한 번씩 답답함이 느껴졌다. 스쿠터의 목적은 빠른 이동에 있겠지만, 내게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제주를 바라보는데 여행의 이유가 있었다.


셋째 날은 대정읍을 출발해 제주시로 이어지는 서쪽 해안을 달렸다. 스쿠터에 완전히 익숙해진 상태였던 데다 한림-애월-곽지로 이어지는 도로가 워낙 아름다워 가장 인상적인 구간이었다. 어쩌면 여행 마지막 날이었기에 아쉬움에 더욱 아름답게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총 3일에 걸쳐 약 200km, 하루 평균 65km를 이동했다. 하지만 스쿠터를 탄 시간만 따지면 하루 네댓 시간이 넘질 않는다. 스쿠터를 탄 시간만큼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은 숲을 보고 바다를 보며 멍 때리는데 할애했다. 큰 도로에서는 자동차 흐름에 맞춰 속도를 냈고, 차량이 거의 없는 작은 해안도로에서는 오히려 시속 20km로 달리기도 했다.


다시 제주시에 도착해 스쿠터를 반납하며 새로운 경험에 뿌듯했다. 원래 계획대로 걸어서 제주를 기억 속에 담았다고 해도 나름의 만족감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 것을 선택해도 제주는 내게 기분 좋음을 주었을 테다. 다만 스쿠터는 내게 또 다른 제주를 선사했다. 익숙한 모습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전혀 다른 장면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차가 진입하기 애매한 길도 갈 수 있다. 내가 멈추는 그곳이 나만의 쉼 공간이 되었다.




*스쿠터로 제주를 일주하며...


-제주 대여스쿠터 배기량은 보통 세 종류로 나뉜다.

-50cc, 70~80cc, 100~120cc

-단 70cc 스쿠터는 금방 예약이 찬다.

-수량이 적거나, 중간을 선호하는 심리적 이유거나

-나는 50cc로 일주했는데, 전혀 문제없었다.

-신호와 속도를 철저히 준수했다.

-물론 50cc의 한계가 있어서 최대로 당겨도 일정 속도 이상 나가지 않는다.


-동쪽과 서쪽, 어느 방향으로 일주해도 상관없다.

-경로를 벗어나기도 했지만, 내 마음 가는 대로 가고 싶다면 내비게이션도 필요 없다.

-비용은 48시간 대여료와 3일분 완전 자차 보험료를 포함해 11만 8000원.

-대여료보다 보험료가 더 들었다.

-주유는 약 4000원이면 가득 채워졌고, 일주하며 두 번 주유했다.


-여성이라고 스쿠터 못 탈 것 없다. 자전거 탈 줄 안다면 스쿠터도 금세 적응한다.

-트렁크가 있더라도 스쿠터에 실어 고정하면 문제없지만, 가급적 배낭이 좋다.

-차량 통행에 민폐가 되지 않고자 왕복 2차선 도로에서는 뒤에 차가 오면 차선 바깥으로 비켜줬다.

-다만 편도 2개 이상 도로에서는 가장 바깥 차선의 가운데로 일정하게 주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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