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가을이 찾아오니 문득 한화이글스가 생각났다.
“맨날 지는데 왜 한화이글스를 응원해요?”
주변 사람들과 프로야구를 이야기하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그러게 나는 왜 한화이글스를 응원하는 것일까?
초등학생 시절부터 줄곧 한화이글스를 응원했으니, 한화 팬이 된 지 20년은 훌쩍 넘은 것 같다. 처음 한화이글스와 마주한 건 초등학교 시절 아빠와 함께 갔던 잠실야구장에서였다. 그때는 한화이글스가 아닌 빙그레이글스였는데,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하는 아빠를 보며 그보다 더 열정적으로 함성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야구 규칙도 잘 모르던 때였다. 그냥 아빠가 저 팀을 응원하니까 따라 했겠지.
연고지팀을 응원하는 게 일반적이었던 시절이었다. 충남이 고향이신 아버지의 한화이글스 응원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건, 어릴 적부터 한화이글스를 응원해왔던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줄곧 한화이글스를 응원했다. 야구 못하는 팀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그래도 2000년대 중반까지는 곧잘 했다. 아닌가?
잘하면 잘하는 대로 ‘역시 우리 팀’이라고 뿌듯해했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내일은 이길 것’으로 희망했다. 최근 한 10년 동안은 성적이 좋았던 시간보다 그렇지 못했던 시간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국내 야구에서 내로라하는 명감독들이 여럿 부임해 지휘했지만 잠시 반짝하고는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올해는 18연패라는 역사적인 대기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타이기록이라는 것이 아쉬울 뿐.
야구 전문가들과 팬들은 저마다 부진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했지만, 어디 야구가 그렇게 뜻대로 되던가. 누군가는 내게 그랬다. “잘하는 팀을 응원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그런 말 하면 섭섭해. 팬이라면 잘할 때도 못 할 때도 한결같이 응원해야지. 뭐,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잘하는 팀으로 갈아타 응원할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 팀이 잘했으면 좋겠어.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경기에서 졌다고 나무랄 수는 없다. 또 우리 팀이 꼴찌라고 해서 “나 오늘부터 한화 팬 안 해”라고 할 수도 없다. 물론 경기에서 지면 짜증이 난다.
아직 나는 보살팬이 아닌가 보다. 하지만 인내하려고 노력한다. 이기는 경기보다 지는 경기가 훨씬 더 많지만, 그래도 어쩌다가 이기는 경기를 보면 참 즐겁다. 에휴...
한화이글스의 모기업인 한화그룹은 꾸준하게 야구단에 투자하고 있다. 누군가는 모기업의 야구단 투자가 인색하다고도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최근 10년간 수백억의 예산을 들여 FA를 진행했고, 훌륭한 시설의 훈련장을 새로 지었으며 그걸로도 모자라 대대적인 시설 확충을 하고 있다.
내후년 공사가 들어가는 대전야구장, 일명 베이스볼 드림파크 신축에도 한화이글스는 430억 원을 투입한다. 정말 통 큰 투자다.
(지난해 개장한 창원 NC파크 공사에서 NC다이노스는 100억 원, 2016년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 공사에서 기아는 300억 원을 제공했다.)
지금 당장 아쉬운 성적은 실망스럽지만, 한화 팬의 한 명으로서 모기업에 고마운 마음은 분명하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큰 시대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편성해 (수익성이 높지 않은) 야구단에 쏟고 있는데, 그 돈이 다 얼마인가. 단기적인 성과 목표 기조에서 장기적 관점으로 투자의 방향을 변화해 진행 중인 모습은 희망을 갖게 한다.
꾸준한 투자의 결실에는 시간이 걸린다. 씨를 뿌렸다고 바로 다음 날 열매가 맺는 것은 아니다.
꾸준히 물을 주고 볕을 쬐어주며, 신경쓰고 관리해야 한다. 간혹 일부 병충해를 겪거나 시들어버릴 수도 있다. 시간, 노력, 돈을 들여 투자했음에도 결실을 본다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다. 매우 지루한 일이다.
올해는 코로나19로 홈 경기장을 찾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나는 운이 좋게도 홈경기 관중 입장이 허용된 첫날, 직관을 다녀올 수 있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지만 연패 중이었던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고 팬들도 그 비를 맞으며 끝까지 경기장을 지켰다. (물론 승리하진 못했다.)
올해 시즌이 얼마 남지 않았다. 탈꼴찌를 위해 전력을 다하지만, 순위에 변동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선수들은 마지막 경기까지 혼신으로 경기에 임할테다. 차라리 꼴찌를 해서 내년 신인 드래프트 선순위 혜택이라도 받는 게 어떨까 하는 잔꾀도 생각나지만, 매경기 최선을 다해주면 좋겠다.
내년에는 달라지겠지. 라는 희망이 단지 희망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이 되기를 바란다. 단숨에 1위를 할만한 실력을 쌓을 수는 없겠지만 (바라지도 않는다.) 조금씩 전력이 오르기를 기대한다. 더는 내려갈 곳도 없으니 얼마나 마음 편해.
내년 이맘때에는 코로나19의 해소와 함께, 쌀쌀한 날씨에 홈 경기장에서 두툼한 ‘가을 점퍼’ 입고 한화 야구를 지켜보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