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걸어요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는 크고 작은 공원이 여럿 있다. 내가 이곳에 이사 오기 훨씬 전부터 지역을 지켜온 ‘역사 깊은’ 큰 공원부터 최근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며 생겨난 작은 공원, 도로가 정비되며 길을 따라 만들어진 아담한 공원까지. 크기와 생김새가 다양한 공원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공원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당연히 반가운 일이다. 요즘에는 ‘공세권’ ‘숲세권’ 이라며 녹지 환경이 집의 가치를 매기는 중요한 요소로 반영된다는데, 일부러 그런 지역을 찾아가지 않아도 알아서 동네에 공원이 생겨나는 건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공원이 근처에 이렇게나 있는 데에도, 정작 내가 공원에 가질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껏 공원에 가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핑계였다. 아침에는 출근하기 바빠서, 저녁에는 피곤하니까. 또 주말에는 공원에 사람이 많다는 이유를 들었다. 조금만 나가면 곳곳에 공원이 있는데, 집 바로 앞에 나가는 일조차 귀찮게 여겼다.
공원이 가까이 있다고 해서 꼭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원이 근처에 있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놓치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최근에서) 문득 들었다. 가을이기 때문일까?
갑작스레 노랗고 빨갛게 물든 공원이 눈에 띄었다. 출퇴근 길에 공원을 지나치며 산책에 대한 욕구가 생긴 것도 이즈음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천천히 공원을 걸어보고 싶다.’
드디어 지난 주말 아침 기회가 찾아왔다. 직장인답게 아침 6시 30분이면 저절로 눈이 떠지는 습관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다. 일어난 김에 공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식사하고, 집안을 정리한 뒤 집을 나섰다.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한 공원은 청량한 공기로 가득했다. 제법 쌀쌀한 가을 날씨가 살짝 춥다는 생각을 들게 했지만 대신 상쾌함을 얻을 수 있었다.
공원 둘레를 따라 걸었다. 차분한 발걸음은 분주했던 지난 한 주를 씻겨주는 기분을 들게 했다. 맑은 공기를 마시겠다며 계속해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건강해지는 느낌.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점이 아쉬웠지만, 한적하고 상쾌한 공간은 마음을 평온함으로 가득 채웠다.
그렇게 한시간을 걷고 또 걸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멍때리며 걷다가, 이런저런 생각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걸었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노랑 빨강 초록 나무의 색색 이파리들과 그것이 바람에 날리는 작은 소리는 보고 듣는 기쁨을 깨웠다.
산책에서 오는 평온이 내 안의 근심과 걱정을 전부 해결할 순 없겠지만, 복잡한 속을 잠시나마 환기해주었음에 느낌이 새롭다. 주변의 사물에도 눈길을 준다. 그동안 겉을 지나치며 바라봤던 것들이 안에서는 또다른 모습이다.
공원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즐거움이다. 생각없이 그냥 걸어도 좋고, 고민이 있다면 천천히 걸으며 해결방법을 고민해보는 것도 좋겠다. 공원에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