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문제는 조기축구회

by 레이다

1

요즘 같은 5월은 우리 동네 공원의 성수기다. 너도나도 공원에 몰려와 공원은 낮에도 밤에도 북새통이다. 공원이 생겨나기 전에는 군부대였다. 탱크나 대포는 본 적 없지만, 군인 아저씨들은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군부대가 떠나가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긴 현수막도 오랜 시간 함께 봤다. 동네 사람들의 바람대로 군부대가 떠나고 작은 공원이 생긴 것이다.


내가 다니는 중학교는 공원 북쪽 끄트머리에 있다. 우리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와 주택마을도 공원과 마주하고 있다.


달걀 모양처럼 생긴 공원은 북쪽의 학교, 동쪽의 아파트와 남쪽의 주택마을에 포위되어 있는데, 서쪽에 있는 작은 산이 공원의 숨통인 것 같다.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우리 집 베란다에 나가면, 아파트와 주택 마을이 마치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병풍처럼 보이기도 하고, 공원에 꼭 달라붙어 살아가는 기생충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공원을 보면 신기한 것이 한 가지 있다. 공원 가운데 잔디밭을 따라 나 있는 트랙을 사람들은 모두 한 방향으로 걷는다. 선캡을 쓴 아줌마들이 팔을 크게 휘저으며 걷기도 하고, 언니들은 몸에 달라붙는 바지와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뛰기도 하는데, 걷거나 뛰는 방향이 모두 반시계 방향이다. 그러고 보니 누구도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건 내 친구 초롱이랑 우리 집 베란다에서 공원을 볼 때마다 확인하는 것인데, 지금까지 다른 방향으로 걷거나 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주방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에게 왜 사람들이 저렇게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물었지만, 엄마는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며, 방에 들어가서 공부나 하라고 한다.


“다른 방향으로 돌면 부딪히니까 그렇지.”


그런가? 엄마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 충돌을 막기 위해 암묵적으로 만든 사람들의 약속이라는 엄마의 설명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나는 갑자기 다른 동네 공원도 그런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이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우리 동네 공원은 아담하지만, 그렇다고 엄청 작지만도 않다. 잔디밭과 나무들, 연못과 벤치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쓰레기 집하장도 함께 있다는 것이다.


쓰레기 집하장은 공원의 남쪽 끝에 있다. 공원 안에 있으면서도 높은 담벼락 때문에 공원과는 별개처럼 느껴진다. 쓰레기 집하장 옆으로 작은 도로가 있고 그 길 건너에 주택 마을이 있다. 주택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공원에 오려면 길을 건너 높은 담벼락의 쓰레기 집하장을 마주해야 하는데, 조금 무서울 것 같다.


초롱이는 주택 마을에 살고 있다. 초롱이도 엄마랑 공원에 운동하러 올 때 무섭다고 했다. 쓰레기 집하장 옆을 지나갈 때면 이상한 소리도 들리고 고약한 냄새도 나는 것이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아빠한테 저 쓰레기 집하장이 빨리 다른 동네로 갔으면 좋겠다고 몇 번인가 말한 적이 있지만, 그럴 때마다 아빠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쓰레기 집하장은 우리에게 필요한 시설이라고 했다.


엄마는 군부대를 이사 보내면서 공원을 만든 것은 좋았지만, 대신 쓰레기 집하장을 받아들인 것은 동네의 실수라고 했다. 암튼 나는 공원에 가더라도 그쪽 근처에는 잘 가지 않는다.


우리 반에는 초롱이 말고도 주택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절반 정도 된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우리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작년에 우리 반 2학기 회장을 뽑을 때에는 아파트에 사는 지현이랑 주택에 사는 준구가 출마했는데, 아파트에 사는 애들은 모두 지현이를, 주택에 사는 애들은 모두 준구한테 표를 준 적 있다. 우리 반 애들이 누구를 찍었는지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응원하는 것을 보면 그랬다.

우리 반 애들처럼 공원에도 역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랑 주택에 사는 사람이 뒤엉켜 있다. 배드민턴장과 그 옆에 있는 팔각정은 주로 주택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차지다. 팔각정에서는 항상 바둑판과 장기판이 벌어지곤 한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어른들은 주로 집에 있거나 단지 안에 있는 노인정에 가는데, 주택 마을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은 한 번도 아파트 노인정에 놀러 온 적이 없다.

“수진아, 쓰레기 집하장이 이사 간다는구나.”


엄마가 주방에서 접시를 달그락거리며 내게 말했다. 쓰레기 집하장이 이사 간다는 소문은 몇 번 들었지만, 그건 우리 동네 사람들이 바라는 희망사항이 소문으로 이어진 것일 뿐이다. 구청장, 시장 그리고 국회의원 아저씨도 우리 동네에 오면 제일 먼저 쓰레기 집하장 이야기를 하지만 항상 이야기에서만 끝나곤 했다.

“또 그 얘기야? 이사 갔어도 벌써 열 번은 갔겠다.”

“이번엔 진짜라니까. 엄마가 구청 아저씨한테 직접 들었어.”


엄마가 말하는 구청 아저씨는 아래층에 사는 아저씨다. 우리 동네가 있는 구청의 도시계획국장이라는 아저씨인데, 꽤 높은 자리에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아빠와는 조기 축구를 같이 하는 사이인데, 가끔 아빠와 술을 마시기 위해 우리 집에도 온 적 있어서 나도 잘 알고 있다.


“진짜야?”

“얘는, 엄마가 언제 틀린 말 한 적 있니?”


나는 하마터면 ‘어’라고 대답할 뻔했다. 엄마는 항상 부풀려 말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친구들이랑 놀면서 5시까지 집에 들어오겠다고 했다가 5시 15분에 들어온 적이 있는데, 엄마는 6시가 다 되어서 들어왔다고 혼낸 적이 있었다. 또 고등학교에 다니는 오빠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면서 반에서 꼴찌라며 오빠를 엄청 야단치기도 했다. 그때 사실 오빠는 40명 중에 27등이었다. 꼴등은 아니었는데.


쓰레기 집하장이 이사 가면 공원이 좀 더 좋아질 것 같다. 초롱이네 집에 놀러 가는 것도 한결 수월해질 것 같고, 엄마가 항상 아줌마들이랑 이야기하는 우리 동네 집값도 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초롱이에게 쓰레기 집하장이 이사 간다는 얘기를 해줬다.



2

“자, 쓰레기 집하장이 이사 가면 공원에 새로운 공간이 생기겠죠? 이곳에 어떤 시설이 생기면 좋을까요?”


우리 반 담임은 사회를 가르친다. 솔직히 사회라는 과목은 도대체 어떤 과목인지 모르겠다. 수업시간이면 담임은 교과서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한다. 분명히 책에 없는 이야기인데, 담임은 ‘이게 다 수업’이라며 혼자 떠들기도 하고 우리한테 막 물어보기도 한다. 다른 반에 가서도 저럴까? 가끔씩 재미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재미없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담임도 쓰레기 집하장 이사 소식을 들었나 보다. 수업 때마다 꼭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나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야기를 얘기해 주는데, 오늘 수업은 바로 쓰레기 집하장이 주제인 모양이다. 아무래도 애들은 우리 동네 이야기라 그런지 다들 집중해서 듣는 것 같다.


“운동장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지난번 회장 선거에서 떨어진 준구가 소리쳤다. 순식간에 우리 반 남자애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공원은 우리 주민 모두의 공유 시설이지요. 어느 한 단체나 집단을 위한 시설은 지양해야 해요. 지금 우리 지역에 가장 필요한 시설은 무엇일까요?”


담임이 말하는 주민 모두의 공유 시설은 종합복지관이었다. 나도 전에 노인 복지관에 가본 적이 있다. 우리 반 아이들 다 같이 봉사활동을 하러 간 것이었는데, 그곳 할아버지, 할머니들 앞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청소와 빨래도 했다.


선생님 말에 따르면 지금 우리 지역에 있는 복지 시설들이 낡고 열악해서 이번에 쓰레기 집하장이 이사 가면 그곳에 장애인 학교와 노인 복지 시설을 합쳐서 종합 복지관으로 크게 짓고 담장도 허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담임의 말을 듣고 쓰레기 집하장이 떠나는 자리에 복지관이 들어오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담임이 저런 말을 할 때는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반 회장인 지현이는 그럴 줄 알았다고 내게 말했다. 어제 지현이도 지현이네 아줌마랑 관리사무소장 아저씨가 하는 이야기를 옆에서 들었다고 했다. 집에 가면 나도 빨리 엄마한테 물어봐야겠다.



3

“학교 다녀왔습니다.”


집에 도착해 보니 아줌마들이 거실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현이네 아줌마도 있고, 아파트 부녀회장인 302호 아줌마도 보였다. 엄마는 식탁에 간식이 있으니 먹으라고 하고는 아줌마들이랑 다시 이야기를 나눈다. 식탁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거실에서 이야기 중인 아줌마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이건 분명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 확실하다.


엄마는 평소에도 종종 우리 집에서 다른 아줌마들과 차를 마시긴 하지만 오늘 멤버 구성은 딱 봐도 우리 아파트의 핵심들이라 할 수 있는 아줌마들만 모였기 때문이다. 아줌마들의 표정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나는 일부러 간식을 천천히 먹으면서 거실에 귀를 가까이 댔다.


“뭔가 조치를 해야 돼. 이렇게 놔두면 안 되잖아.”

“어휴 당연하지. 이러면 안 되지. 어떻게 주민들 의견은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결정을 해?”


내 예상이 맞았어. 역시 아줌마들은 복지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들 복지관이 생기는 것을 반대하는 것 같다. 수업시간에 담임이 복지관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다.


“내일 주택 쪽 사람들이랑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했으니까, 다 같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보면 뭔가 나올 거야.”


부녀회장 아줌마의 말끝마다 엄마와 다른 아줌마들은 서로 마주 보며 연신 '그래그래‘라며 동조하고 있다. 아마도 복지관이 들어오지 못하게 주택 쪽 아줌마들을 만나는 것 같다. 주택 쪽 아줌마들도 쓰레기 집하장에 복지관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겠지.


아마도 복지관은 들어오지 못할 것 같다. 이렇게 아줌마들이 모여서 동네 이야기를 심각하게 했던 것 치고 뜻대로 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관리사무소장 아저씨도 주민센터 센터장 아저씨도 심지어는 국회의원 아저씨도 우리 아파트 아줌마들에게 굽신거린다. 아마 우리 동네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부녀회인 것 같다.


“근데 복지관 대신에 뭘 지어야 할까요?”

“수진엄마도 참, 문화센터가 딱하니 생겨야지 않겠어?”


아줌마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친다.


문화센터가 생기면 너무 좋겠네요.”

“피트니스도 생기면 좋겠어요. 그렇죠?”

“이왕이면 수영장도 있으면 좋겠네.”


아줌마들이 신났다. 얘기만 들어봐서는 복지관은 물 건너간 것이 확실히다. 복지관보다는 문화센터가 더 좋긴 하다. 요즘 살이 쪄서 초롱이랑 저녁때마다 공원을 걷기도 하고 줄넘기도 하는데, 문화센터가 생겨서 수영장 같은 것이 생기면 더 좋을 것 같다.





4

“수진아 들었어? 쓰레기 집하장에 복지관 짓기로 한 것 취소됐대. 근데 주택 아줌마들이랑 아파트 아줌마들이랑 싸움이 났다.”


이건 또 무슨 소리. 아파트 아줌마들하고 주택 아줌마들하고 만나서 같이 반대하기로 했다는 것은 들었는데, 싸움은 또 뭐지.


“그게 아줌마들이 구청에 다 같이 가서 구청장 아줌마 만났는데, 구청장 아줌마가 결국 복지관 계획 없애겠다고 그랬다는 거야.”

“근데 왜 아줌마들끼리 싸워?”


“그게 아파트 아줌마들은 구청장 아줌마한테 복지관 대신에 실내 수영장이 있는 문화센터를 짓자고 그랬더니, 주택 아줌마들이 안 된다고 주상복합 오피스텔을 짓자고 해서 싸웠대.”


갑자기 주상복합 오피스텔이라니, 주상복합이 주택 마을에 무슨 이익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진짜야?”

“진짜라니까. 구청장실에서 막 소리 지르고 난리였대.”


문화센터는 아줌마들의 희망이다. 정확히 말해서 아파트 아줌마들의 로망이다. 아줌마들은 우리 동네 공원에 그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입이 닳도록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초롱이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주택 아줌마들은 문화센터보다 다른 것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초롱이는 주상복합 오피스텔을 짓자는 주택 아줌마들 뒤에는 건설회사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주상복합을 세운 뒤 주택 마을도 재개발할 계획으로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싸움은 누가 이길지 모르겠다. 아줌마들끼리의 싸움은 예측할 수 없다.


얼마 뒤 우리 학교 강당에서 주민공청회가 열렸다. 엄마와 아빠는 부리나케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 학교로 향했다. 나도 초롱이와 만나서 구경하기로 했기에 엄마 아빠를 따라나섰다.


공청회에서는 주상복합을 짓겠다는 건설회사 사람들이 나와서 발표했다. 커다란 스크린에 빔 프로젝트까지 쏘면서 멋진 건물 그림을 보여줬다. 또 주택은 물론 아파트 집값도 오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아파트 부녀회에서는 문화센터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오면 주변 모든 환경이 망가질 것이라고 했다. 한적한 동네에 사람도 더 많아지고 차들도 늘어나고 경관도 훼손될 것이라고 했다.

재미있는 점은 아파트 사람 중에 주상복합이 들어서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주택 마을 사람 중에 문화센터를 희망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또 일부 사람들은 그 아무것도 짓지 말고 차라리 꽃이나 나무를 더 심어달라고 했다.


결국 문화센터와 주상복합의 2파전 양상. 구청장 아줌마는 난감한 듯 보였다. 곧 구청장 선거가 있기에 어느 한쪽 편을 들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선거는 중요하다고 담임 수업에서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하는 구청장 아줌마가 답답해 보였다.


결국 구청장 아줌마는 주민투표를 하기로 했다. 역시 어른들에게도 투표는 가장 공평한 결정 방법인가 보다. 쓰레기 집하장 부지에 문화센터가 좋을지 주상복합 오피스텔이 좋을지 일주일 뒤 투표하게 됐다.


그 사이 쓰레기 집하장은 철거를 마쳤다. 쓰레기만 치우면 되는 것이기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결정이 어렵지, 행동은 신속하다. 쓰레기 집하장 철제 담벼락이 사라지고 낮은 펜스가 쳐졌다. 강아지들은 넘어가지 못하겠지만 남자애들은 쉽게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흙바닥을 드러낸 집하장은 생각보다 꽤 컸다. 축구장 정도 공간은 되어 보였다.




5

일주일 뒤 저녁, 우리 학교 강당에 다시 사람들이 모였다. 아침부터 이어진 투표가 끝나고 개표가 진행되는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른들만 투표할 수 있어서 나는 투표를 못했지만, 엄마와 아빠는 아침 일찍 투표장을 다녀왔다. 아니 투표를 하고서 두 분 모두 집으로 오지는 않았다. 엄마는 개표위원이라고 해서 종일 투표장에 있는다 했고, 아빠는 조기축구회 모임이 있다고 했다.


일요일 날 엄마와 아빠 모두 집에 안 계시니까 신이 난 건 오빠였다. 점심때가 되도록 늦잠을 자더니 오후 내내 거실 소파에 누워서는 꼼짝하지 않고 휴대전화만 보고 있다. 처음에 죽었나 싶어 물끄러미 살폈는데, 게임에 빠진 분주한 손가락을 보며 살아있음을 알았다. 개표가 시작될 시간이 되어서 구경 가기로 했다. 초롱이도 올 것이었다. 학교에 가기 전 오빠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다.

“그것 다 안 되니까, 그냥 텔레비전이나 봐.”

"뭐가 안 되는데?"


나는 집을 나서기 위해 신발을 신으면서 오빠한테 물었다. 하지만 오빠는 넌 몰라도 된다며 그냥 집에서 얌전히 있으라고 한다. 항상 저런 식이다. 왜 안 되는지 말을 해줘야 가든지 말든지 하지.

"웃기셔. 이게 얼마나 중요한 결정인데, 눈으로 직접 봐야지."

거기에 아무것도 못 들어온다고 바보야.”

이건 또 무슨 소리.


“흥, 아파트가 주택보다 사람이 더 많으니까 문화센터가 생길 게 분명해.”

“너 마음대로 하고, 집에 올 때 과자나 좀 사 와. 혹시 엄마가 나 뭐 하냐고 물어보면 공부하고 있다고 하고.”


나는 오빠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학교에 왔다. 강당 앞에서 초롱이를 만나 우리는 강당 2층으로 올라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강당은 어른들로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얼마쯤 지나자 강당 맨 앞 단상에 구청장 아줌마랑 우리 아파트 부녀회장 아줌마가 올라왔다. 그 옆에는 주택 아줌마들과 아파트 아줌마들 그리고 우리 엄마도 있었다. 그런데 다들 표정이 어둡다. 우리 아파트 아줌마들 표정만 어두운 게 아니라 주택 아줌마들도 표정이 어둡다.


“아파트 부녀회장 아줌마 표정이 안 좋은데? 우리가 이겼나 보다.”

“주택 아줌마들도 표정 이상한데, 뭘.”


구청장 아줌마가 마이크를 잡고서 잠시만 조용히 해달라는 소리를 서너 번 하고 나서야 강당의 웅성거림은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구청장 아줌마가 개표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하자 강당은 순식간에 적막이 흘렀다.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이번 주민 투표 진행 결과 주상복합과 문화센터 모두 짓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습니다.”


이건 무슨 소리지? 둘 다 짓지 않는다니?

나는 초롱이에게 내가 잘못 들은 것이냐고 물었지만 초롱이도 나처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초롱이와 내가 어이없어하는 것처럼 강당에는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어떤 아줌마는 구청장 아줌마를 향해 ‘장난치느냐’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여러분 잠시만요, 설명하겠습니다. 잠시만 조용히 해주십시오.”


구청장 아줌마가 다시 마이크를 부여잡고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외쳐댔지만 강당은 좀처럼 조용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여기저기서 ‘조용히 합시다’는 말이 나오면서 다시금 소란은 작아지기 시작했다.


“이번 투표는 쓰레기 집하장 이전에 따른 공간 활용 방안을 결정하는 주민 투표입니다. 투표율이 해당 행정구역 주민 총수의 최소 1/3을 넘어야 하는데, 투표 마감 시간까지 투표율이 31%에 그쳤기 때문에 개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구청은 추후 주민 여러분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해서...”


구청장 아줌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아파트 아줌마들과 주택 아줌마들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며 고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줌마들과 달리 아저씨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여기 동네 주민들이 다 왔는데, 투표율이 1/3이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야?”

“투표 안 한 사람이 누구야?”


고성을 지르는 아줌마들은 주택과 아파트를 가리지 않았다. 처음으로 한 뜻을 모은 듯 보였다. 그런데 이건 정말 말이 안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움직이기 힘드셔서 못 오시는 것과 일요일이니 놀러 간 사람들 빼고는 다 투표에 참여한 것 같은데 말이다. 그때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강당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 저기 우리 아빠다.”

“어디? 옆에 우리 아빠도 있는데...”


초롱이와 나는 강당을 나서는 아저씨들 틈으로 우리 아빠와 초롱이네 아저씨를 볼 수 있었다. 어딘가 급하게 가는 것 같았다. 아빠 주변에는 다른 아저씨들도 있었는데, 우르르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조용히 강당을 나가는 아저씨들을 따라 다른 아저씨들도 하나 둘 뒤를 잇고 있다. 어안이 벙벙한 아줌마들과 달리 강당을 나서는 아저씨들의 표정은 설레는 듯 밝아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문화센터를 지을지 주상복합을 지을지 어떤 결정도 나지 않은 채 투표는 무효로 끝이 났다. 그럼 쓰레기 집하장은 어떻게 되는 걸까?




6

그날 밤 엄마와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고 안방은 한바탕 전쟁터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서운 엄마가 아빠에게 온갖 공격을 퍼붓는 소리가 거실 건너 내 방까지 들려왔다. 아빠는 간혹 엄마에게 뭐라고 설명하는 것 같았지만, 엄마의 공격을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까 강당에서 있었던 사건도 그렇고 엄마와 아빠가 왜 싸우는지 궁금한 나는 곧장 오빠에게 달려갔다. 오빠라면 뭔가 알고 있을 것이다. 오빠가 집에서는 말도 별로 없고 얌전하지만 사실 아는 게 참 많다. 공부를 좀 못 해서 그렇지.

“오빠, 엄마랑 아빠가 왜 싸우는 거야?”

“왜긴 투표 때문에 그러지.”


“그게 왜?”

“아까 내가 말했잖아, 문화센터 안 될 거라고.”


그러고 보니 내가 초롱이랑 학교에 간다고 할 때 오빠가 했던 말이 얼핏 기억나기도 한다. 투표 하나마나 안 될 거라고 그랬던 것 같은데 말이다.


“왜 투표는 안 된 건데? 얘기해 줘, 궁금하잖아.”


내가 계속 묻는 동안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컴퓨터 게임에 몰두해 있던 오빠가 갑자기 키보드에서 손을 떼며 인상을 찌푸렸다.


“너 때문에 끝났잖아.”

오빠는 분명 뭔가를 알고 있다.

“알려줘. 그럼 내 방으로 갈게. 응? 과자도 사다 줄게.”

“아, 진짜 귀찮게 하네. 그거 조기 축구회 아저씨들이 투표하지 말자고 아저씨들 꼬드긴 거잖아. 아파트랑 주택 아저씨들 모두 다 매수해서 아줌마들 몰래 투표하지 말자고.”

대박 사건. 오빠 말이 진짜라면 이건 엄청난 사건이다.


“헐, 왜 투표를 하지 말자고 해?”

“내가 어떻게 알아? 동네 사람들끼리 주택이랑 아파트랑 편 갈라서 싸우는 게 싫었나 보지.”


“그럼 오빠는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냥 아빠가 엄마 없을 때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이랑 전화 통화하는 것 보니까 알게 된 거야. 뭐라더라, 모든 걸 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그러던데.”


아빠는 평화주의자였던 것일까. 한 동네에서 아파트와 주택이 서로 편을 갈라 싸우는 게 싫었나 보다. 존경스럽다. 그래도 문화센터가 들어오지 못하게 된 건 좀 아쉬운데 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아파트 아줌마들과 주택 아줌마들이 아닐 것이다. 분명 뭔가 계획을 세우겠지. 어쩌면 아줌마들이 아저씨들을 괴롭혀서 결국은 투표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아무튼 문화센터도 주상복합도 아무것도 짓지 않는다면 뭐가 생기는 거지?

“오빠, 그럼 거기에 뭐가 생기는 거야?”

“글쎄. 아줌마들이 가만히 두지는 않을 테고. 언젠가는 뭐가 생기겠지. 지금 당장은 저 상태로 남겨지겠지만. 아니면...”


“아니면? 뭔데?”


오빠는 저런 식이다. 시원하게 대답하지 않는 것은 엄마를 쏙 닮았다.


“구청장이 어느 한쪽을 편들기 어려우니까 일단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결정 안 하려고 말이야.”

“그래서 다음 재투표 날짜를 정하지 않고, 끝낸 것이구나...”

아무튼 당분간은 저 쓰레기 집하장에 아무것도 생기지 않을 테니까 빈 공터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아깝다.



7

공원은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아니 잠시 잠잠해진 것 같다. 엄마는 부녀회 아줌마들과 계속 문화센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다시 투표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는 것 같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문화센터를 짓기로 결정된 건 아니지만, 주상복합을 짓는 것으로 결정된 것도 아니기에 절반의 성공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때를 기다렸다가 제대로 투표해서 반드시 문화센터가 지어지도록 만들 것이라고 했다.


여름이 부쩍 가까워졌는지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공원에는 선캡을 쓴 아줌마들과 달라붙는 옷을 입은 언니들이 여전히 공원을 뛰거나 걷고 있다. 또 팔각정에는 할아버지들이 장기를 두고 있으며, 초롱이는 빈 공터가 된 쓰레기 집하장을 지나쳐서 학교에 오고 있다. 공원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쓰레기 집하장이 사라지면서 높은 담벼락이 없어지고, 쓰레기 집하장이 있던 자리에 흙으로 덮인 빈 공터가 생겼다는 것이다. 달라진 것이 하나 더 있다. 예전에는 차를 타고 오빠네 고등학교까지 가서 축구를 하던 아빠와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이 이제는 빈 공터가 된 쓰레기 집하장에서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축구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평일 아침에도 축구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특히 주말에는 다른 동네 아저씨들도 다 같이 모여 축구를 해서인지 집하장 공터가 아저씨들로 북적거렸다. 방과 후에는 우리 반 남자애들도 그곳에서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한다.


빈 공터에는 어디서 가져다 놓은 건지 모르지만 낡은 벤치들이 생겼고, 축구 골대도 보이고, 듬성듬성 잔디도 보였다. 아빠는 조기축구회 회원이 많이 늘었다고 요즘 기분이 좋다고 했다. 평화주의자 아빠답게 아빠는 주택 아저씨들하고도 친한가 보다.


쓰레기 집하장이 없어지면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아빠와 조기축구회 아저씨들 같다. 공터가 된 쓰레기 집하장 주변의 나무에 걸린 현수막에는 조기축구회 회원을 모집한다는 글자가 자랑스럽게 펄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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