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ly Choi Jan 12. 2022

이리저리 쪼개고 붙여본

모듀라이터 빌딩

매서운 바람이 갑자기 불던 지난주 금요일 저녁, 올 겨울 처음으로 쌓인 눈을 밟으며 모듀라이터* The Modulighter Building 오픈하우스에 다녀왔다. 미국 건축가 폴 루돌프 Paul Rudolph (1917-1997)가 친구 어니스트 와그너 Earnest Wagner와 함께 1989년 구입한 이곳은 구매 당시는 상업 건물이었다고 한다. 미국의 현대건축 거장 중 하나로 언급되는 루돌프는 학부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바우하우스 The Bauhaus의 창립자인 월터 그루피스 Walter Gropius에게 배우기 위해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에 진학하는 데 이 시절의 학업이 그의 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음은 당연하다. 건축가로서 명성을 얻은 후 그는 예일대 건축학과장으로 재직하며 후계를 양성했는데, 스타일로 따지자면 브루탈리즘 Brutalism으로 분류되는 루돌프의 디자인은 다스먼트 대학과 예일 건축 디자인 대학이 잘 알려져 있다.

모듀라이터 빌딩 전면 사진 출처: paulrudolphheritagefoundation.org

실내공간에 들어오는 반사광과 기능적인 공간 구성을 중점으로 둔 모듀라이터빌딩은 폴 루돌프의 디자인 중 뉴욕시내에 유일하게 일반인에게 오픈된 공간인데 브루탈리즘에서 벗어나 생활공간의 편안함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뚜렷하다. 커다란 유리창과 강철구조, 자연/ 외부환경과의 연결 시도(꼭대기에 루프탑이 있다) 등이 현대 건축의 교과서적인 특징이 드러나는 빌딩 전면부는 여러 개의 네모난 도형이 쌓인 모습이 디 스티지 De stiji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모더니즘 The Modernism의 시초를 생각해보면 역시, 그 흐름이 다 이어져 오는구나, 하며 고개가 끄덕여진다.

1976년 조명회사 모듀라이터 라이팅 컴퍼니를 설립한 루돌프는 이 빌딩을 조명회사의 쇼룸이자 듀플렉스 아파트로 재건축해 임대사업에 이용하겠다는 생각으로 디자인을 시작했다고 한다.** 모듀라이터 라이팅 컴퍼니는 지금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건물 1층에 사무실이 있다.) 내부 여기저기에서 루돌프가 작업한 것을 포함, 간결함 그 자체인 이 조명회사의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다.

5층 북향 거실 사진 출처: prhfoundation.org

5층 남향 거실 사진 출처: prhfoundation.org

내부로 들어가면 일단 모든 것이 흰 색인 공간에 약간의 이질감이 든다. 자연광을 최대한 반사하여 북-남으로 긴 실내를 밝히기 위한 목적은 확실히 달성했으나 실내 텍스처가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병원같이 딱딱한 분위기가 나는 것은 모더니즘 건축가의 취약점이랄까. 한겨울에 방문한 까닭에 위의 사진처럼 환하고 탁 트인 느낌은 받을 수가 없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로프트를 잇는 내부 계단으로 역시 하얗게 페인트칠 한 이 철제 구조물은 여러 방향으로 이어져 선반이 되기도 하고 손잡이가 되기도 하며 퍼즐놀이를 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준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계단이지만 훌륭히 디자인의 중심 역할을 한다. 오르락내리락하다 계단에 앉아 있어 보고 싶었지만 오픈 하우스를 찾아온 관람객이 꽤 많아 혼잡했으므로 폐가 되는 행동을 삼가기로 했다.

휴대폰으로 급히 찍은 영상

폭 20ft(약 6mt), 전체 2800sqft (약 260 sqmt)밖에 되지 않는 비좁은 모듀라이터 빌딩의 내부 공간은 가운데에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이 자리하는 데 한 층에 하나의 아파트를 두는 대신, 두 층을 연결하고 북향과 남향, 두 공간으로 층을 쪼개어 복층으로 만들었다. 베드룸을 따로 두지 않고 아래층에 생활공간이 있고 위 층에 슬리핑 로프트를 두어 공간의 연결성과 열림을 중요시하는 전형적인 로프트 디자인이다. 건물 전면, 내부 구조, 계단 설계, 붙박이 장과 소파 등 모든 요소가 기능을 중심으로 연결된다. 자신의 디자인에 적합한 가구를 찾는데 애를 먹던 루돌프가 결국 선반이나 소파, 바퀴가 달린 의자와 테이블 등 거의 모든 가구를 제작했다고 설명이 적힌 인쇄물이 벽에 걸려 있다. 집에 돌아와 평면도를 찾아보니 발견한 것보다 더 많은 벽장 공간이 있었다. 다음에는 해가 오래 떠 있는 여름에 방문해 남향 정원과 루프탑을 가봐야겠다.

3층-6층 평면도 출처: prhfoundation.org

* 한국어로 모듀라이터라고 써야 하는지, 모듈라이터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모듀라이터로 표기합니다. 올바른 표기를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수정하겠습니다.

** 자료 출처: Paul Rudolph Heritage Foundation, www.prhfoundati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