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시대착오] 중
사람이든 사물이든 이왕이면 예쁜 쪽을 선호하는 난희는 제이미의 아름다운 오른쪽 얼굴을 너무나 사랑했고, 그의 비통한 왼쪽 얼굴을 자세히 볼 때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자책하면서도) 무언가가 완전히 훼손되어버렸다는 불길한 감정에 휩싸였다. 때때로 그는 걸어다니는 경고장같이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상처받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아름다움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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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난희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는 대신 창문에서 보이는 거리를 촬영하기로 했다. 하나의 고정된 시점을 유지하는 형식과 여러 날의 시간 층위가 단일한 공간 위로 겹쳐지는 프레임을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라도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것도 다큐멘터리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실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동시에 자리잡았다. 아직 중국인 거리와 이곳 사람들에게 애정이 생기지 않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그런 마음과 마주할 때는 좀 씁쓸했다. 왜 모든 것이 적당한 장소에 제대로 존재해주지 않는 것인지, 언제나 의문이었고, 대개 인생은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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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테이프 리코딩 카메라로 수백 분에 달하는 영상을 찍었음에도 난희는 그 영상을 도무지 하나의 방향으로 편집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그녀의 인생과도 같았다. 흘러가고, 흘러오고, 등장인물이 있고, 극적인 배경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이를 통과하는, 마음을 꿰뚫는 단 하나의 아이디어를 찾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쓸데없는 생각에 시간을 빼앗기곤 했다. 예를 들어 그녀 자신의 쓸모에 대해서. 책상 한편에 쌓여 있는 육 밀리 테이프 더미처럼, 이제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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