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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 Jul 14. 2019

불국기행

마음을 따라가면 마음이 보인다.

늦은 밤 수업을 마치고 오니 기다리던 책이 탁자에 올려져 있었다. 지난 주 카페에서 빙수를 먹으며 진열된 책을 보다가 만난 불국기행. 특이하게 작가정신 출판사의 책들이  전시되어 있는 독특한 공간, 책을 보자마자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사상, 철학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나. 책의 서문이 눈에 들어온다.

'부탄이라는 나라를 보자.  첫 눈이 오면 공휴일로 지정하고, 꽃을 꺽지 않고, 병원비와 학비, 유학비마저 무료인 나라, GNP(생산량)가 아니라 GNH(국민총행복)가 우선인 나라. 세계에서 탄소배출량이 가장 적은 나라.'

부유하다, 잘 산다 라는 의미를 완전히 뒤바꾸어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귀 기울이게 한다.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니  발목을 잡히고 고꾸라지기만 한다.

'행복'의 의미는 뭐라고 정의될 수 있을까.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누릴 수 있는 여유를 다 누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  내 능력 범위내에서 소유와 욕구를 채우는 것 일수도. 하지만 물질적 풍요로움과 쾌락적 만족이 사치와 방종에 허둥대지 않으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스리고 바라볼 수 있는 평정심과 항상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부탄은 행복에도 기술이 필요함을 바로 '명상'과 '수행'이라는 스스로 깨우치는 기술을 어려서부터 연마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늘 '나'를 알고 '세상'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세상에 너무 깊이 발을 들여놓은 것 때문인지 매순간의 '나'를 잊곤 한다.

  십여 년 전 바라나시 여행을 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과 경계가 완전히 허물졌다. '살아있음'에서 '죽음'이라는 정지상태의

육신은 쓸모 없는 나무 토막처럼 아주 무뚝뚝했다. 젖은 나무토막에 사그라져가는 덩어리, 생의 다음 순서는 죽음이라는 걸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며  그저 담담하게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거라고 물은 일러 주었다. 생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가는 데로 흐르는 데로 놓아두고 바라보기.


이후,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방편으로 시작한 명상과 호흡으로 스스로를 일으키고 세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명상과 호흡은 일종의 '마음챙김' 훈련이자 자신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영양분. 때론 돈벌이 일상에 발목이 잡혀 까마득히 잊고 있을 때도 있지만 문득 문득  깨어있으려고 노력하니 그나마도 다행이다. 마음을 바라보면 마음을 따라가게 되고 그러다보면 스스로 고개를 낮추게 된다.

작가의 깊은 불심은 깨달음이 있는 여행으로 안내하며 오래전 법정스님의 '인도기행' 을 떠올리게 한다.

'입안에는 말이 적어야 하고, 마음에는 생각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는 밥이 적어야 한다'

 육신이라는 내 몸덩어리를 볼 때마다 스님의 나직한 말씀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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