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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 Jan 14. 2019

다시 인도

10년 만에 찾은 도시

20년 전 서른이 될 무렵 처음으로 배낭을 짊어지고 두 달간의 여행을 갔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열심히 살아도 모자랄 판에 젊은 애엄마가 여행 바람이 난 것이다. 마치 영영 떠나가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주위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한창 엄마 손길이 필요한  세 살 난 딸은 어쩌고, 남편이 과연 허락을 할까.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나의 유일한 지원군인 친정 엄마에게 당당히 맡기고 남편에게는 떠나기 며칠 전에 통보하듯 알렸다. 엄청 소심하고 내성적인 내게 어찌 그런 용기가 생겼을까. 사람의 생애에 주기가 있는 것이라면 십 대를 넘어서는 스무 살, 서른, 마흔, 오십, 나이의 첫머리가 손으로 꼽게 되었을 때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열 손가락을 꼽으며 몇 주기를 살았는데 내게 무엇인가 훅 빠져나가고 텅 비어버린 껍데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우울증 초기 증세같은 허전함과 허무함이랄까. 어쩔 수 없이 나이만 계속 먹을거라는, 그러면서 불현  조금이라도 정신이 멀쩡하고 두 다리가 튼튼할 때 어디든 두 발로 다녀와야 한다는 '인생 의무감'이 밀려 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걷기는 몹쓸 생각들을 떨쳐 버리고 마음을 환기시키는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여행경비는 철저히 내손으로. 덕분에 생활력은 엄청 강해졌다. 목표가 생기면 실천에 옮기는 추진력과 지구력이 생긴 것 그때부터 였는지도 모르겠다. 이후 역마살이 낀 사람처럼 틈만 나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왜 여행을 할까. 솔직히 여행을 다녀와도 그다지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내 의지로 여기 아닌 다른 곳을 두 발로 내딛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을 뿐. 삶은 어디서든 묵묵하게 이어지고 펼쳐져 있었다.  그저 지칠때쯤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감사했다.

아이가 자라면서는 아이와 함께 그러다 마흔에 들어섰을 때 불현듯 인도를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특정한 이미지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붓다와 힌두신들, 시바와  비슈누, 바라나시의 수행자들, 눈이 커다란 아이들, 사리를 감고 아이를 안은 여인들, 그리고 영국 왕세자비 다이에너가 타지마할 흰 대리석 의자에 앉아 있는 슬프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른거렸다.  눈앞에 뭔가가 아른거리면 마음과 몸이 움직이는 법,

마흔 살 생일을 지난 무더운 여름, 법정스님의 인도 기행을 한 손에 들고  드디어 베이징을 경유하는 저가 항공을 타고  델리로 향했다. 가족과 친구들은 인도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당한다고 갈 데가 없어 거길 가냐고 난리였다. 다행히 또래의 여행자들을 만나 무사히 여행을 마쳤지만 이런 걱정은 지금도 여전한 듯하다.

누군가 그랬다. 델리역을  빠져나오는 순간 뒤도 안돌아보고 다시 들어갈거라고. 바로 내가 그랬다. 한 밤 중 역앞의 소란함은 오토릭샤와 오토바이, 택시, 버스의 경적, 수많은 사람들과 뒤엉킨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여길 온걸 격하게 환영한다는 첫 날의 소음, 그 소음은 여행내내 곁에서 함께 했다.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던 인도 여행, 호텔 욕실 모가 섞여 나오는  물을 받아내 씻어 했던 기억, 야간 열차 맨 꼭대기 3층에 꼼짝없이 누워 맞으편에서 빤히 나를 쳐다보았던 인도 인과의 눈싸움, 몸을 지탱하기 힘들었던 흔들리는 열차의 화장실, 소했  바라나시에서의 호흡 요가, 생각보다 맛이 너무 고약했던 카레와 탄두리 치킨,입에 맛는거라곤 밀떡 같은 난과 뜨끈한 짜이 뿐, 그래서 다이어트 여행으로 인도를 가라고 했을까. 여행을 마치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사진을 인화하고 정리하며 떠오르는 장면들만이 그때의 여행의 추억을 회기시켜준다. 사진 한장 한장 속에 풍겨나는 기억들은  힘들었던 일보다는 구석구석 숨겨진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고 있다.


가물가물 인도에서의 기억이 저 멀리 물러날 무렵, 오십이 되던 무더운 어느 여름날 델리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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