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 엔딩 썸머 겨울엔 방콕만한 곳이 없지
방콕을 좋아한다. 한 겨울의 방콕은 더 좋아한다. 추운 겨울 서울에서 덜덜 떨다가 만나는 네버 엔딩 썸머 방콕은 행복 그 자체다. 처음으로 방콕을 방문한 20대 때는 뭣도 모르고 여름방학에 방콕에 갔다. 장렬하게 불타는 태양에 타 죽을뻔했고 턱 끝까지 차오르는 습한 공기에 걷다 녹초가 되었다. 이제는 몇 번을 오가며 적당한 여행의 온도를 찾았다.
정말 산타가 있어서 겨울에 무슨 선물 받고 싶냐고 묻는다면 1초도 망설임 없이 "방콕에서 일주일을 보내게 해주세요"라고 말할 거다. 정말 직장인에게는 무엇과도 바꾸기 싫은 선물이다.
Thailand Creative and Design Center. 이곳은 엠포리움 백화점의 TCDC와 다른 곳이다. 뒤에 resource center가 붙고. 위치도 BTS 사판탁신역 근처로 이동했다. 몇 년 전 왔을 때 엠포리움백화점 5층에 있는 TCDC를 방문했었는데 그곳에 가려니 이슈가 생겨 문을 닫았다 다시 오픈했다고 했고 (가보지 않았지만 이전과는 달라졌다고) 이곳은 17년 5월부터 새롭게 오픈되었다고 했다. 나는 늘 혼자 방콕에 온다면 TCDC에서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편지도 쓰면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거야!!라는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치앙마이 TCDC에 가는 게 소원이라 그 로망은 아직 유효하다. 이곳에선 급하면 안 된다 여유로운 시간을 챙겨가자.
좋아요: 시원하고 여유로운 공간, 디자인에 관심 없는 사람도 볼 수 있는 다양한 책과 매거진, 노트에 쓸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전시회까지 관람 가능, 깨끗한 화장실에 카페는 덤.
아쉬워요: 일단 좋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분위기는 엠포리움 TCDC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이곳은 좀 더 도서관스럽고 딱딱한 느낌이랄까. 정말 공부를 한다면 더 잘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엠포리움의 경우는 여권을 보여주는 1년에 한 번 무료입장이 가능했는데. 여기서는 여권 + 100밧을 내면 입장이 가능. 하지만 책도 보고 내부 다양한 디자인 재료들과 전시회까지 볼 수 있으니 너무 아쉬운 것은 아님!!! 오래 머물지 못한 게 아쉬움.
방콕에 사는 친척동생이 '요즘 핫한 곳이야' 하고 알려줘서 호기심에 들렸다. 참고로 위에 적은 TCDC resource center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라 세트로 묶어서 가기 좋다. 창고형 매장은 우리나라 외 글로벌 트렌드가 맞나 보다 이곳 역시 이름 그대로 창고를 개조한 샵, 카페를 볼 수 있다. 평일이라 그런지 정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물건도 더 들어와야 할 것 같은 조금의 휑함. 물건이 비싸서 예쁜 여름 과일 무니의 자수를 한참 바라만 보고, 옷도 입어만 보고 왔다. 얼음 커피만 한가득 마시니 속이 시원하고 정신도 드는구나.
좋아요: TCDC만 가기 아쉬울 때 묶어서 가기 좋다. 날이 더울 땐 실내에서 구경하고 쉬기 좋음
아쉬워요: 비싸다!!!! 모든 물건이 다 비싸다!!!!!!
이동 팁: 사판탁신 사톤 선착장에서 쉐라톤 호텔 셔틀(배)을 타고 갈 수 있음. 쉐라톤 호텔 선착장에 내리면 걸어서 5분 후 Ware house 가 나오고 다시 걸어서 5분 후 TCDC resource center가 나온다 물론 주황색 수상버스를 타고도 이동 가능. si pha ya pier에서 내리면 될 듯.
방콕에서 사원은 그냥 안 간다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더운 날엔 그 말을 인정할 수 있다. 더위를 못 이기는 사람에게 그늘 없는 사원은 쥐약일 수 있으니깐... 하지만 원래 사원 같은 곳을 안 좋아해서 갈 생각이 없다는 사람을 부여잡고 설득해서라도 데려가고 싶은 두 곳을 꼽으라면 왓포와 왓아룬을 선택하겠다. 심지어 이 아름다운 두 사원은 마주 보고 있어서 배를 타고 건너면 볼 수 있다. 시간이 없다면 하나라도 선택해서 꼭 가보실래요?(부탁하고 싶다) 규모상은 왓아룬이 좀 더 아담하다. 게다가 아침에 가면 바람에 흔들리는 종소리까지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곳이다. 왓포는 둘러보는데 좀 더 시간이 걸리지만 다니다 보면 반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긴 와불상의 미소를 따라 동전을 넣고 나오면 구석구석 오리엔탈풍 무드가 넘쳐난다. 가야 하는 이유를 여기에 한 바닥 쓰고 싶지만... 가야 하는 진짜 이유는 비로소 가고 나서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들어가는 입구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내가 기대하고 상상했던 재즈바의 입구랄까? 우리나라처럼 지하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 건물 몇 층에 있는 것도 아닌 건물의 자태와 포스가 문을 열기 전부터 설레었다. 다른 재즈바와 달리 음료도 비싸지 않다. 칵테일 한 잔에 150밧 정도인데 우리나라 물가를 생각하면 한두 잔 정도는 부담 없이 마시며 음악을 즐길 수 있다. 뽬뽬 소리를 직선으로 쏳아대는 금관악기가 이토록 사람의 기분을 업시키는구나. 연주자들이 공연을 즐기고 서로 신나서 연주를 하다 보니 보는 사람들까지 전염돼서 기분이 좋아진다.
좋아요: 적당한 음료 값, 전통이 느껴지는 실내 분위기, 익숙한 노래, 밴드의 라이브 연주
아쉬워요: 예약을 하고 가서 좋은 자리에 앉았지만 그냥 우연히 들린다면 어떨지는 예상이 안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시로코바 가야 할까? 난 4번의 방콕 방문 중에 이 유명한 루프탑바에 가본 적 없었다. 친구는 한 번쯤 가볼만하다고 말했고, 다녀온 후 나 역시 누군가가 묻는다면 한 번쯤 가볼만하다고 말해줄 것이다. 친구가 내게 해 준 조언은 시로코바는 바람이 엄청 부니깐 바지를 추천한다는 것이었다. 난 입고 있던 검은 원피스를 벗고 (이상하게 아쉬웠지만) 청바지로 갈아입고 시로코에 입장했는데... 그날 한껏 멋지게 차려입은 루프탑의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결심했다 다음에 간다면 눈이 와도 비가 와도 허리케인이 다가와도 드레스업!
좋아요: 짜오프라야강과 방콕 시내를 한눈에, 황금색 돔 아래서 마시는 칵테일과 분위기, 라이브 음악
아쉬워요: 색소폰바 10배 넘는 칵테일 가격. 내가 방콕에서 마신 음료 중 가장 비싼 값, 처음에 안내받고 여기가 시로코바야? 하고 실망했는데 그 작은 공간이 다가 아니라 계산 후 올라가서 나가야 했다.(생각해보니 친구가 아웃사이드 바로 나가야 한다는 조언도 청바지와 함께 날려줬었다.)
방콕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장 놀이는 짜뚜짝 구경 일 것이다. 있을 건 다 있는 곳은 화개장터가 아니라 짜뚜짝이다. 아시아티크에서 본 가방을 안 사고 꾹 참았는데... 더 싸게 팔 때 참길 잘했구나란 생각이 드는 곳이다. 이니셜을 새겨주는 가죽 여권 케이스부터, 티셔츠, 코끼리 바지, 왕골가방, 에코백, 무드등, 작은 그릇, 소품까지 모든 물건을 만날 수 있다. 더위를 피해 아침에 가니 좋았다. 걸으면서 봉지를 하나둘씩 팔에 걸고 지칠 때 먹는 간식은 꿀맛이다. 나중에 돌다 보면 그 물건이 그 물건 같을 때 시장을 나오면 반은 성공.
좋아요: 일단 물건이 많고 시중보다 싸다. 코코넛 아이스크림이 너어어어무 맛있었던 기억.
아쉬워요: 주말에 가야 해서 일정 조절 필요. 그늘로 된 상점은 견딜만하나 기본적으로 덥다. 더위와 사람을 피해 아침에 가니 좋았다.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은 많으나 제대로 된 밥을 먹기엔 어려울 수 있다.
기억해요: 구경은 무조건 일자로 쭉쭉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면 좋다. 마음대로 왔다 갔다 방향을 틀면 여기 어디? 할 수 있다. 또 더 싼 게 있겠지란 생각으로 마음에 든 물건을 지나 지면 다시 찾기 어려움. 그냥 사자!
가격 면에서 훨씬 저렴한 대형 마트를 이미 다녀왔어도 고메마켓은 꼭 가고 싶은 곳이다. 먹고 싶고 사고 싶은 허영을 자극하는 동시에 충족시켜줘서 그럴까. 단순하게 말하면 백화점 지하 슈퍼마켓인데... 뭔가 고메마켓에서 팔면 더 맛있어 보이고, 물건도 더 많고 좋아 보인다. 요즘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옥수수카라멜이나 선실크 헤어팩은 이미 텅텅 비어서 구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한 바퀴 구경만으로도 신나요. 마켓에 내려가기 전에 인포에 가면 여행자 할인카드와 바우처를 준다. 들고 고메마켓 구경 후 위층 와코루 매장으로.
좋아요: 한눈에 방콕의 먹거리를 구경하는 재미, 의외로 슈퍼에 없는 물건도 발견 가능
아쉬워요: 사오고싶은 인기 제품은 조기 품절, 확실히 TESCO가 같은 제품이라도 프로모션이 많아서 쌌음.
아시아티크의 반응은 두 부류로 나뉜다. 누군가는 지나지게 관광지 같고 물건도 짜뚜짝보다 비싸서 별로라고한다. 또 누군가는 놀이동산 같고 분위기가 좋다고 한다. 난 방콕을 간다면 아시아티크에 가보라고 추천할 것 같다. 일단 시내에서 머물다 보면 강으로 내려오거나 배를 타는 경험이 없는데 아시아티크로 이동하며 잠시나마 강바람을 쐴 수 있다. 강가 노천에 앉아 호가든 로제 생맥주를 마시면 기분이 좋고, 놀이동산 같은 야시장 아시아티크를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짜뚜짝 시장에 가면 좋겠지만 주말까지 방콕에 머물지 않는다면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 것도 괜찮을듯하다. 그 비용의 차이가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기에. 100밧을 내고 팔에 판박이 문신을 하고 호가든을 마신다. 곧 지워질 문신 같은 하룻밤이 반짝 반짝 빛나며 출렁인다.
처음 방콕에 온 배낭여행객 중 카오산로드에 숙소를 잡아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대학시절 친구와 방콕에 찾아왔을 때 우리의 숙소는 카오산로드 옆 람부뜨리의 한 게스트하우스였다. 당시는 더 어둡고 정신없고 약간은 무서운 느낌의 밤을 선사했던 카오산로드는 여행자의 거리답게 정돈된 흥겨움을 표출하고 있었다. 십몇년이 훌쩍 정말 오랜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람부뜨리에서 우리가 지낸 호스텔을 찾고, 무수히 걸었던 길을 지나고, 당시 드나들던 바 조이럭 클럽도 잠시나마 볼 수 있었다. 속으로 너무 반가워서!!! 와 세상에 아직 그대로 라니 하고 소리쳤다. 시간이 흘러도 첫 여행의 기억 속으로 돌아갈 수 있는 영원한 여행자의 천국이다.
그동안은 늘 시내에 숙소를 잡았었다. 아속, 칫롬, 수쿰윗 등에... 짜오프라야 강 쪽은 동선이 불편하고 멀다는 이유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 리조트는 아시아티크 맞은편 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BTS를 타려면 호텔 배를 타고 20분 정도 나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막상 생활하다 보면 이게 불편보단 여유고 행복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잡한 방콕에서 리조트 같은 쉼터를 찾는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아침마다 조금씩 다르게 차려지는 디너 뷔페 수준의 조식은 내가 방콕에서 먹은 중 최고였고, 170이 넘는 나의 발이 닿지 않을 만큼 깊고 큰 수영장을 보유하고 있다. 방콕 시내에서 이런 수영장을 찾기 힘들다는 것은 가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수영을 하다 몸을 물에 반쯤 담그고 나무 아래 앉아 노을을 바라보던 저녁을 잊을 수 없다. 시내로 숙소를 옮기고 이곳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다시 방콕에 간다 해도 기간의 반 정도는 뚝 떼어서 이곳에서 보낼 것이다.
좋아요: 복잡한 방콕에서 여유로운 시간, 크고 깊은 수영장, 디너 뷔페 수준의 조식, 아름다운 리조트 자체, 친절한 직원들, 호텔 배 (밤 12시까지 탈 수 있고 저녁에는 아시아티크도 운행)
아쉬워요: BTS역까지 가려면 호텔 배를 타고 나가야 함(20분마다 배치), 일정이 짧다면 그냥 시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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