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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조던 Apr 13. 2021

애를 낳았더니 한글 깨친 기분

세상 풍경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건가요?

긴 시간 아이 없이 살았다.

그 시간 속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 가까웠다. 세상은 나와 가족 친구들로 이뤄졌으며 이 외 내 생활 속 사람들도 모두 어른이었다. 아이와 관계를 맺을 일이 없었고 기억에 남는 아이도 없었다.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나와 친구의 관계가 메인이었다. (아이는 서브일 뿐) 난 그렇게 철옹성 같은 어른 나라에 살던 사람이었다.


주변엔 타고난 듯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가 없지만, 결혼도 안 했지만 그냥 아이를 보면 좋다는 사람. 아이를 좋아하는 모습이 본성 같은 그들은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귀여워! 아구구구! 입으로 감탄사가 튀어나오며 몸과 손이 기운다. 난 본성보다 노력으로 아이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쪽이었다. 어른 나라에 살다가 갑자기 어린이 나라의 문이 열리면 함께 있다가도 이내 아~ 편하고 예측 가능한 내 어른 나라로 갈래갈래! 하는 그런 사람이 나였다고요.


그런 내가 아이를 낳았다. 

임신 기간도 신세계였는데 (이건 차차 적기로 하고) 아이를 낳으니 이건 뭐 완전 신세계 별세계 그냥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세상에!! 세상에!! 이런 세상도 있는 거였다. 이토록 오래되고 거대한 세상을 내가 몰랐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아니 몰랐다기보다 관심 없음 필터로 내 인생에서 지우고 살아왔다는 것이 놀라웠다.


세상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의 인생에선 CG 처리해서 지워진 듯했던 아기와 어린이들은 3D, 4D처럼 웃고 울고 움직이며 팡팡팡! 내 삶 속으로 튀어나왔다. 길을 가다 마주친 아이들의 몹집과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어? 우리 아기랑 비슷해 보이는데 몇 개월일까? (이 궁금증은 바로 입 밖으로 튀어나와 몇 개월이에요?라고 수시로 묻곤 한다.) / 쌍둥이다 쌍둥이 나란히 유모차를 탔네 귀여워/ 저 정도 크면 엄마 아빠랑 대화도 가능하고 씽씽이도 타는구나/너무 예쁘게 생겼네/ 저저 통통한 볼 다리봐/ 저런 옷을 입히니 진짜 귀엽구나/ 어쩜~ 걷기 시작했나 봐"/이제 아이에 눈을 뜬 내 시선은 바쁘고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이야기가 터진다. 마치 문맹으로 살다 한글을 터득해 이제야 세상의 글자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젠 정말 아이를 보면 절로 눈이 간다.

공원에, 백화점에, 마트에, 거리에, 아파트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모두 다른 아이들이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있고, 걷고 뛰고 움직인다는 것이 놀랍다. 어른 세계 사람들도 달리 보인다. 아이를 바라보는 눈, 태도, 멀리서도 말투가 먼저 들려온다. 친구들이 낳은 아이들도 새롭게 보인다. 전보다 더욱 예쁘고 사랑스러우며 자라는게 대견스러워 죽겠다. 이렇게 아이를 키워낸 내 친구가 대단해보이기도!


백화점에서도 수유실 표시가 눈에 들어온다. (늘 빵집과 푸드코트가 1순위였는데 ㅎㅎ) 식당과 카페에서도 메뉴보단 아기 의자를 먼저 찾는다. 아무 생각 없이 쉽게 오르내리던 계단과 에스칼레이터 대신 유모차로 이동 가능한 엘리베이터가 절실하다. 내 삶과 전혀 무관하던 키즈존, 노키즈존 간판도 매우 중요해졌다. 전에는 관심조차 없었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이유식 판매 부스나, 건물 내 키즈 카페, 아이가 있는 곳은 모두 눈에 들어온다. 심지어 아이가 좋아하는 동물(개와 고양이)까지 눈을 뜨게 되어... 난 요즘 세상에 이렇게 많은 또 하나의 가족 반려견과 냥이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깨닫고 있다. 공원에선 산책하는 멍멍이 뒤를 쫓기 바쁘며, 동네에선 햇살을 즐기는 냥이들을 찾아 나서야 하며, 수시로 고개를 들어 나무 사이를 오기는 까치야~를 찾아줘야 한다. 그렇게 계속 보다 보니 동물 녀석들도 참 예쁘다. 사랑스럽다.


난 눈을 떴다. 마치 글을 모르다가 가. 나. 다. 라를 배우고 막 한글을 읽기 시작한 사람처럼, 철옹성 같은 어른 나라에서 다른 세상으로 들어왔다. 아이와 공존하는 나라, 그곳의 언어와 표식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하나씩 하나씩 읽어갈수록 (내 몸은 고되지만) 내 시선과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알면 알수록 인간다워지는 느낌이다. 세상 사람들의 슬픔도 기쁨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기분이다.


막 아이를 낳고 사랑과 눈물이 넘치던 1년, 차 안에서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들만 봐도 "저 사람들 참 귀한 사람들이겠지/ 저 사람도 누군가의 아들 딸이었겠지/ 얼마나 소중한 자식이었을까/ 저렇게 큰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없이 사랑받던 아이에서 저렇게 어른이 될 때까지 그 수고스러움 힘겨움 어째 어째" 하면서 과도하게 마음 아파하며 눈물 뚝뚝 흘린적도 있었다. 한동안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의 모습이 아기 시절로 보이는 시기를 지나왔다. (자꾸 그도, 그녀도 소중한 아기였겠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던 것이다...)


다 큰 어른이 되어 이렇게 세상이 달리 보일 수 있다니 사람이 난다는 것은 이토록 엄. 청. 난 일이구나 실감하며 나는 오들도 아자차카타파하! 배우고 익히며 고군분투 중이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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