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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조던 Mar 02. 2017

한 번으로 족했던 다낭 여행

여행의 기억은 모두에게 다르게 적힌다는 교훈


나는 여행의 행운에 집착한다.

나는 좋게 말하면 매사 긍정적인 사람이고, 다르게 표현하면 행운에 굉장히 집착하는 사람이다. 나는 날씨의 요정;;이라 여행을 가면 날씨가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여행지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아마도 모두 착한 사람들일 거라 무턱대고 믿어버린다. 누군가 날 속였거나, 돈을 좀 더 받는다 해도 그래도 그곳에서 이건 좋았잖아!라고 하면서 끝내 아름다운 여행을 위해 마음을 바꾼다. 다니면서 남들은 무덤덤한 평범한 것들에 감탄도 많이 하는 편이다. 자연이 모습을 조금만 바꿔서 작은 풍경들이 마음에 들어오면 이 얼마나 행운인가!라고 생각하며 크게 기뻐한다. 좋을 거다 다 잘될 거다라는 마음으로 여행을 다니다 보니 정말 웬만하면 다 좋았다. 도움을 주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고, 유럽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일주를 할 때도 소매치기 한 번 당한 적 없었다. 날씨가 야박하기로 유명한 나라에서도 맑은 구름을 몰고 다녔다.


자, 이쯤에서 다낭 날씨 나와주세요. 우기라기엔 너무 좋던 날씨


다낭은 행운에 집착하는 나에게 달랐다.

다낭은 그렇게 행운에 집착하는 나에게, 너 역시도 때론 행운을 피해 가는 여행자가 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준 여행지였다. 다낭에 대해서는 글을 쓰고 싶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글을 쓰기 싫기도 했다. 묘한 마음이 교차했는데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도 다낭의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전달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다른 이유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미 다낭 열풍에 빠졌고, 작년엔 정말 모든 여행사들과 업계 사람들이 다낭을 밀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확 다가 올 정도로 수많은 다낭 예찬 콘텐츠가 쏟아졌다. 그걸 보면서 이 시점에 저의 다낭은 이랬어요,라고 달랐던 여행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져 글을 쓰기로했다. 동기가 나쁘군...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어쩌면 이건 안 좋았던 포인트가 메인이 되는 글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여행일 뿐이다. 나의 여행과 다른 사람들의 여행은 모두 다르고, 다낭 역시 그럴 것이다. 나에게는 이런 기억이라 해도 어떤 누군가에게 다낭은 잊지 못할 행복한 여행지, 추억을 품고 있는 도시일 수 있다. 당신의 다낭 여행은 후자라면 좋겠고 그러길 기원하는 마음이다.


이제 막 발견된 베트남의 숨은 진주라는 말

다낭은 새로웠다. 내가 예상하던 푸껫, 세부, 코타키나발루와 조금 다르게 덜 익숙한 구역으로 벗어나 있었다. 나 역시 당시 다낭을 홍보하던 '베트남의 숨은 진주'라는 문구와 마주했고 끌리더니, 홍보 문구 뒤로 하얗게 펼쳐진 모래사장과 바다의 풍경 사진이 또 다른 휴양지의 발견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좀 더 확고하게 만들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뜨고 있는'이라는 표현이 점차 나를 결제의 창으로 몰고 가더니, 이내 난 다낭에 가 있었고 시내가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른데? 싶었지만 그래도 리조트에 가면 좋을 거야라며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진입했다.

리조트에 도착했더니 내가 본 홍보 사진들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리조트는 전형적인 휴양지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요


이상하게 내 예상과 조금씩 빗나갔다.

여행을 준비하며 생각했던 것, 하고 싶었던 것을 하나씩 할수록 이상하게 모두 조금씩 달랐다. 내 생각보다 리조트 음식과 간식들은 아주 싸지 않았고, 친절할 거라고 예상했던 베트남 사람들은 생각보다 프렌들리 하지 않았다. 특히 구매를 권유하다 안 산다는 것을 알았을 때 휙 돌아서는 표정에 마음이 살짝 시큰하기도 했다. 음식 주문 역시 받는 즉시 쌩- 찬바람이 불었다. 시내에 나가면 싸고 맛난 먹을거리가 널려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았고, 시내 역시 볼거리가 없었다. 볼거리라곤 휭휭 매연을 내뿜는 오토바이들? 포스팅에서 찾은 식당에 자주 전화를 걸고 예약하기 시작했고, 인기 식당에 그냥 계획 없이 가면 대기는 또 내 예상을 넘어섰다. 기념품 사기 좋은 곳에 늘 오르는 다낭 롯데마트에 찾아갔지만 뭐든 다 사버릴 거야!라는 욕심 가득한 마음을 반도 못 채운 가벼운 봉지로 귀가했다. 물론 내가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건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다낭 여행이니깐...

'마담란' 전화 예약도 잘 되고, 음식도 맛있어 몇 번 갔던 식당


그래 이렇게 조금씩 예상을 벗어나는 것도 여행의 맛이지, 어긋난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이내 부릉부릉 긍정 모드로 시동을 걸었지만, 그런 나를 호이안 파이터로 등극시키고, 나에게 다낭 여행을 단 한 번으로 남기기로 한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다낭 여행의 꽃 호이안에서 말이다.


호이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이다. 해서 관광객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요. 동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진 무역항이 있었고, 밤엔 컬러풀한 등의 불빛으로 형형색색 아름다운 올드타운의 이미지로 유명한 곳이다. 다낭 리조트들은 대부분 호이안까지 갈 수 있는 셔틀을 운행해서 쉽게 갈 수도 있다. 여행 전 호이안의 사진들을 보면서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찜 해두고 나 역시 설레며 기다렸던 곳이었다. 분위기 그 자체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그런 호이안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사양식 건물과 꽃 컬러풀한 등불의 호이안 풍경
구석구석 좀 더 구경했더라면 마음이 달라졌을까
사람들은 호이안은 '밤'이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호이안으로 떠나기 전 찾아본 우리나라 사람들 리뷰 중에, 호이안을 구경하기 위해서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해야 하는데 진입로에서 서양인들은 패스시키고 동양인들에게만 구매를 시킨다는 글이있었다. 입장권을 사느냐 마느냐는 복불복인데 저녁 6시 이후엔 괜찮다는 리뷰도 있었고, 누군가는 끝내 싸워서 경찰서까지 갔다는 글도 있었다, 길마다 다 받는 건 아니니 돈을 안 받는 다른 길을 찾아보면 될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막상 가보니 어떤 느낌인가 하면 우리나라에서 인사동에 갔는데, 인사동에 진입하는 길에 매표소가 있고 입장권을 사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난 인사동에 갈 곳이 있어서 이 길을 지나가야 하는데, 이 길로 들어가려면 우선 돈을 내고 입장권을 사라는 느낌이었다. 모두 돈을 내는 것은 아니고 차별적으로.


욱하고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나는 호이안 '모닝글로리'라는 식당을 예약했고 그 식당에 가기 위해 호이안 길을 들어가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같이 셔틀 구역에서 내린 수많은 서양인 동양인이 섞여서 길로 들어가는데 가장 구매 타깃이 잘 된다는 동양인 여자 = 나를 보자마자 와서 입장권을 사라고 말했다. 관리인의 표정은 표를 사셔야 입장이 가능해요라는 안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안내 전단으로 날 툭툭 치며 매표소로 밀었다. 나를 몰고 있는 사이 첫 입장인 서양 관광객들은 프리 패스처럼 어떤 제약도 없이 쓱쓱 들어간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국인 가족들이 잡혀서 표를 사고 있었고, 이 관리인들이 서양인에겐 말 도 못 거는 것을 본 순간, 욱하고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그래 이 길이 유료라면 얼마든 돈을 내고 입장할 수 있다. 솔직히 입장료가 몇만 원 하는 것도 아니고 못 낼 돈도 아니다. 유료가 이곳의 규칙이라는데 안 낼 사람이 있겠는가? 한데 날 화나게 만든 것은 동양인, 그것도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돈을 받는 그 불공평함 때문이었다. 한국인 가족들 아무 말 없이 구매하고 잘 들어가는데 나 혼자 왜 그렇게 논쟁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난 관리인 게 묻기 시작했다.


GO GO YOUR COUNTRY

"난 호이안 모닝글로리라는 식당을 예약했다, 그 식당에 가려해도 표를 사야 하는 것이니? 그냥 길을 걷기만 해도 돈을 내는 거야?" 그녀는 그렇다며 어서 가서 입장권을 구매하라고 했다. 난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저기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은 뭐야? 왜 너희는 저들에겐 돈을 받지 않는 거야? 지금도 저들은 입장권 없이 들어가잖아? 우리에게만 입장권을 사라는 이건 공평하지 않아, 이 길은 너의 길이 아니고, 네가 선택해서 누군가에게 받고 안 받는 건 아니잖아" 표를 사지 않고 버티던 나를 상대하던 여자는, 좀 더 나이와 경력이 많아 보이는 다른 관리자를 불렀다. 난 새로 마주 선 그녀가 좀 더 논리적으로 설명해주길 원했으나 그녀는 설명을 해 줄 사람이 아니라, 더 강하게 표를 사라고 압박 가능한 사람이었다. 그때였다 계속 묻는 나의 가슴을 손으로 확 밀더니 "GO GO YOUR COUNTRY"라고 말했다. 순간 이 여행에 탁 금이 가는 느낌이었다. 제 몸에 손대지 말아주세요!라는 말을 했고 그 이후 일행이 이래서 될게 아니라며 다른 길을 찾아 들어가자며, 날 말렸고 바둥바둥 그곳을 벗어났다. 지금 쓰면서도 그때의 기분이 확 밀려오며 키보드를 두드리게 된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나에게 첫 번째 호이안은 그렇게 입장한 곳이었다.

결국 다른 길로 들어서니, 그곳에서는 입장권 사건이 있었냐는 듯 훤히 열려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시장과 관광객들을 보니 그냥 표를 사거나, 융통성 있게 다른 길로 가면 될 일이었는데 난 그 순간 왜 그렇게 참을 수 없었을까? 란 후회도 스쳐갔다. 어쩔 수 없이 무너지는 기분을 안고 예약한 모닝글로리라는 유명한 식당을 찾아갔다. 이 식당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기분 전환을 하자는 권유에 분발하려던 차 예약한 우리 이름이 없다고 하는 정말 바빠 보이는 식당 종업원의 말과, 예약했음에도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다시 한번 좌절, 그래도 다시 그런 나를 일으키며 식사를 했고 호이안을 둘러보았다. 첫날의 호이안은 그랬다. 밤인데 그 예쁘다는 불빛은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호이안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망치기 싫었고, 딱히 다낭에선 할 게 없기에 다시 한번 호이안에 갔다. 한국인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유명한 식당 '미쓰리'에 찾아갔고, 그토록 맛있다는 화이트 로즈와 완탄도 맛보았다. 구시가지 골목골목 풍경도 담아봤다. 저녁이 찾아오고 할머니에게 작은 등불을 사서 호이안 강가에 내려놓으며 이 모든 기억을 잊고, 좋은 기억만 남기게 해달라고 달님에게 빌어보았다.

 

그럼에도 맛있는 기억으로 남아 준 '미쓰리'
호이안 올드타운 저녁의 풍경, 보트에 탄 관광객들
만월의 베트남, 사진으로 다시 보니 아름답구나
등불을 물로 내려보내며 빌었다. 달님~ 좋은 기억만 남겨주세요


시간이 제법 지나서인지 그래도 다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좋은 기억도  가지 있다. 바로 숙소와 그곳에 있던 바게트라는 카페다. 이름도 예쁜  가게는 , 밖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룸에서 바게트까지 가던 길과, 베트남 연유 커피와 빵을 사서 나올  노을 지던 붉은 하늘이 생각난다.  노을이 다낭과 화해하라고 말하는  같았다. 연유 커피도  맛있어서 출출할  참새 방앗간처럼 들렸었다. 내부에는 물건을 담을  있는 바구니부터 간식들까지 아기자기해서 좋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베트남 음식이 생각난다. 특히 반미가 생각난다. 쌀국수와 분포 싸오, 짜조도 생각난다. 한국에서도 저 음식들을 좋아하는데 베트남에서 국내보다 저렴하게 먹을 수 있으니 좋았다. 늘 전화로 예약하면 분수 옆 자리를 주던 다낭 시내의 '마담란'과 호이안의 나쁜 기억을 살짝 흐릿하게 해 준 '미쓰리'가 생각난다. 먹을 때만큼은 예외 없이 행복했다니 이건 축복으로 여겨야겠지?


다낭 '마담란'에서 늘 시켜먹던 메뉴들


그리고 다낭이 나에게 알려준 교훈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모두의 여행은 다르다는 것이며, 여행지의 행운은 돌고 돈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가 누구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고 반대로 누군가는 별로였고, 나쁜 기억만 있다고 말하는 여행지도 나에겐 다를 수 있다는 희망도 있다. 여행의 행운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며, 그동안 내가 그 행운을 워낙 크게 느끼고 받아들이다 보니 나의 여행은 곧 행운의 여행이 될 거라는 지나친 확신이 있었던 건 아닐까,  이전에 내가 행복할 땐 누군가가 나머지 불행을 견디고 있는데 그게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글을 봤었다. 여행에서도 그런 적이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내가 행복한 여행을 하는 동안 누군가는 비와 구름을 만나고, 소매치기를 만나기도 했을 거다. 생각해보니 나보다 더 먼저 다낭에서 이런 일을 당한 여행자들도 있었고 그럼에도 먼저 쓰고 공유해서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위로가 되기도 했었다... 여행지의 불행한 사건을 나눠준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여행의 기억은 모두에게 다르게 적힌다. 크게 이변이 없는 한 난 다시 다낭에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대신 앞으로 한 번이 아닌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를 만난다면 크게 한번 더 감사할 것 같다.


** 글을 쓰다 보니 당시에 위 입장권 사건을 베트남 관광청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게 떠올랐다. 베트남 여행을 권할 때 다낭과 호이안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행 중에 차별받고 있는 부분을 인지하고 해소하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든다. 오늘 꼭 메일을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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