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마을을 닮고, 마을은 사람을 담는다.
'하동'을 가게 된 것은 모두 친구 덕이었다. 살면서 꼭 한 번은 하동에 가보고 싶었다는 친구. 하동이라는 이름조차 예쁘지 않냐며 하아 도옹하고 발음하던 친구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래 정말 이름이 예쁘네 '하동' 6월의 남도 여행, 보성부터 순천과 여수를 지나 하동에 이르는 코스였다. 다른 도시들도 충분히 좋았고 매력이 가득했지만 유독 하동이 기억에 남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사람 때문일 것이다. 하동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첫 번째, 100년 한옥 차꽃오미 민박집을 운영하던 부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나는 사람이 누구냐면 단연 이 두 분을 꼽고 싶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두 분을 떠올리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하동의 악양 하덕마을에서 오래된 한옥을 민박집으로 운영하시는 이 두 분은 주말 부부시다. 민박을 운영하시며 주말부부로 사신다는 것도 특이했지만, 남편이 아닌 아내가 서울에서 일한다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색다르게 느껴졌다. 아내분은 금요일까지는 서울 광화문에서 직장인으로 근무를 하시고 금요일 저녁 고속버스를 타고 하동으로 내려오신다. 두 부부는 매주 금요일 밤 화개장터에서 상봉하신다. 그리고 일요일 밤 저녁 5시 30분 다시 화개장터에서 아쉬운 이별을 하신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의 만남과 헤어짐이라 상상만 해도 나까지 아련하다. 그리고 얼마나 낭만적인지.
평일 민박 운영은 고스란히 남편분의 몫이다. 이불 빨래를 하고 고택의 뷰를 위해 단 한가닥의 빨래 줄도 허용하지 못한다는 남편분은 모든 빨래는 자가에서 말리신다. 아내분의 제안대로 방은 2번씩 닦고 본인의 성격상 화장실 청결을 특히 중요시해서 물기 하나 없는 화장실로 마감하신다. 이 마을에서는 꼭 필요하다는 냥이들의 밥을 챙기시고 밤이면 새로운 아침 메뉴를 탐구하시는 남편분! 고택 민박을 하기 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학원을 하셨고 그 보다 전 꿈은 개그맨이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정말 쉼 없이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상황에 맞는 다양한 표정과 진지한 말투에 우리도 모르게 마음이 무장해제되어 크게 웃곤 했다. 아침을 먹을 때면 몇 가지 쨈을 내어주시고 설명하시고는 어떤 살구잼이 더 맛있는지 물어보는 것이나, 매우 진지하게 고객들은 어떤 샴푸, 린스를 기대하는지 의견을 묻고, 직구로 구매한 독일제 all in one 샴푸는 어떠한지 조사를 하는 모습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오늘 밤은 또 어떤 고민을 하고 있으실까? 지금도 충분히 좋은데 말이지 :)
서울에서 근무를 하시는 아내분, 워낙 '차'를 좋아하시고 많이 드셔서인지 피부가 정말 좋으셨다. 처음 만난 날 환한 얼굴빛에 깜짝 놀랐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사셔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실 줄이야, 회계 관련 업무를 해서인지 야무진 말투와 꼼꼼해 보이는 성격, 하지만 남편분의 주장에는 웬만하면 다 넘어가고 져주신다. 그러면서도 적절한 순간에 모든 상황을 정리해주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아내분이셨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찌나 잘 웃고 공감해주시는지 나도 모르게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게 되었다. 아내분이 해주신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화는 이제 직장 생활 10년 차인 내가, 회사라는 곳을 10년을 더 다니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라는 질문이었다.
25년 직장 생활을 하신 아내분의 대답은 이러했다.
"조금 더 빨리 직장을 그만두고 내 일을 할걸 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하동으로 내려오는 것이 지금은 제 목표예요. 그만두고도 할 일이 있으니 이전처럼 불안하지 않아요. 그리고 주말에 이곳에 오면 피곤하지 않아요. 오히려 여기서 에너지를 얻고 가요. 힐링이 되고 여기서는 잠도 잘 와요"
회사일을 한다는 것과, 내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즘이라 그랬을까? 그 말이 한동안 마음에 남아서 난 하동에 머무는 내내 나도 이런 민박집을 한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했다.
'차꽃오미(五味)'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두 분은 모두 차를 공부하고 즐기시는 부부였고, 곧 행랑채에 찻집을 오픈할 예정이라고 하셨다. 자고 가지 않아도 좋으니 이곳을 지난다면 차를 마시러 오라며, 귀한 차를 계속 내어주신다. 보이차를 마시면 우리의 몸도 후끈, 맘도 후끈해졌고 스르륵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놓게 된다. 이곳에서 했던 신기한 경험 중 하나가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본 '낯선 사람과 대화의 즐거움'이었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익숙한 사람, 내 상황을 잘 아는 편안한 사람만 찾게 되는데 이곳의 다실 문을 여는 순간, 어제 옆방에서 잤던 처음 보는 분과도 대화를 할 수 있었고, 주인 부부님들과의 대화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린 차처럼 깊어져 서울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서로 애틋함을 나눌 정도였다.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주고, 그리워할 수 있다니 오랜만에 느껴보는 낯선 행복함이었다. 돌아와서 찾아보니 '차꽃'의 꽃말은 '추억'이라고 했다. 정말 딱 맞는 꽃말이 아닌가 싶다. 물 좋고 공기 좋은 하동 악양의 품 속에서 피워낸 추억.
두 번째, 창원 진해에 이어 '하동'에서 팥빙수집을 하시는 아저씨
하동 악양의 하덕마을에 들어서면 한눈에 보이는 남다른 '팥빙수' '팥죽'집이 있다. 이런 시골 초입에 밥 집도 아니오. 슈퍼도 아니오. 풍채 있게 자리 잡은 이 건물에서 팥빙수를 판다고? 과연 여기까지 사람들이 팥빙수를 먹으러 올까? 의문이 피어오른다. 이 집에 들어서는 순간 의문들은 더욱 증폭된다. 아니 내부가 이렇게 예쁠 수 있는 거야? 테이블 하나, 찻잔 하나, 그림 하나, 풀 하나까지 정말 남다른 팥빙수 가게가 있었다.
점심 식사 후 우리는 이곳의 유일한 손님이었다. 자리를 잡고 빙수와 커피를 만들어 주신 주인아저씨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물어봤다. "어쩌다가 여기에 팥빙수집을 내게 되셨어요?" 아저씨가 대답하시길 사람들은 여기서 장사가 되냐는 질문을 안 그래도 하시는데 이 집은 본인과 정말 인연이 있어 만났다고 하셨다.
원래 아저씨네 가족들이 팥빙수 사업을 하셨다고 했다. 지금 그 빙수집이 창원에도 있고, 진해에도 있다고 하셨는데 제법 장사가 잘 된다고 하셨다. 나중에 서울에 올라와 찾아보니 그 지역에서 유명한 집이었다. (창원 팥 이야기, 진해 팥 이야기) 그러다 어느 날 '하동' 이 마을에 놀러를 오게 되었는데 마을이 너무 예뻐 마음에 들었단다. 마을 입구가 2개가 있었는데 그 날 이쪽 길로 내려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집을 만나지 못했을 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운명처럼 이 집이 자리 잡은 골목길로 나오게 되셨고 이 건물에 '임대'라 붙은 것을 보게 되셨다고 한다. 집에 돌아가서도 계속 생각이 나서 결국 하동에 땅을 보러 다시 오셨단다. 외지에서 온 여느 사람들이 좋아하는 뷰가 좋은 높은 곳의 집들도 많이 보셨는데, 다른 곳은 맘에 들지 않으셨단다. 이 집이 마음에 들어 다른 건물보다 비쌌지만 맘먹고 빠르게 계약을 했다고 하셨다. 아저씨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딴 골목으로 갔으면 몰랐을 건데, 우연하게 이 골목으로 나오다 본거지, 인연이었던 거지"
본인의 집에 있던 찬장과 서랍장을 데려오고, 아내분이 모아 왔던 그릇들로 가게를 채우고, 동생분이 만든 메뉴판을 가져오고, 너무 비싸지 않아도 가게에 잘 어울리는 물건들을 하나 둘 모아서 이곳을 꾸리셨다고 했다. 가족들의 손길이 묻어 있어서인지 여느 상업적인 가게와는 느낌부터 달랐다. 어떤 가족의 집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이런 곳을 하동에서 만날 줄이야 상상도 못 하였던 일이었다.
그리고 살아보니 더 좋다는 '하동'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사람들은 하동을 여행 중 찍고 가거나, 최참판댁, 쌍계사 같은 유명 관광지만 들렸다 떠난다고 했다. 그러면 참 하동의 모습을 알 수 없는데 아쉽다고 하셨다. 그리고 공지영 작가님의 이야기도 해주셨다. 작가님이 지리산 행복학교 연재를 할 때 '하동'에서 머물렀고, 당시 작가님은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으셨는데 그때 하동과 하동 사람들을 통해 위안을 얻으셨다고 했다. 하동이 그녀의 힘든 마음의 돌파구가 되었다고.
"섬진강에서 노을 지는 것도 보고, 물에 발도 담그고, 모래 위도 걸어보고 그래야 정말 하동을 알 수 있는 거예요" 노을 지는 섬진강에 발을 담그고 왔다는 내게 하신 말씀이다. 이야기해주신 내용을 글로 쓰고 싶은데 아저씨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니, 후다닥 피하시며 앞모습은 안되고 주방으로 들어가 뒷모습을 찍자고 하셨다. 총 3장을 찍었고 둘이 같이 보며 베스트 컷을 골랐다. (아저씨 어깨가 넓게 나와서 둘 다 맘에 든 사진이다. 후훗)
그날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고 이 집 밖으로 나가면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입구에서 헤어지며 다음에 또 오신다면 저희를 기억하실까요?라고 물었다. 아저씨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아마도 기억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잠시만 기다리라며 주방으로 가시더니 이거 가지고 올라가시라며 뜨거운 커피를 내려 우리 손에 쥐어주셨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따뜻한지 뭉클하여 잠시 서로 말이 없었다.
친구는 차로 걸어가며 내게 말했다.
" 난 이 마을 사람들이 왜 착한지 알 것 같다. 이런 마을에 산다면 정말 저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아름 다운 마을에 살고 있는 착한 사람들. 사람은 마을을 닮고, 마을은 사람을 담는다. 이 것 외 그들을 표현할 방법이 있을까? 농담처럼 가는 곳마다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마을 사람들은 훗날 찾아오면 사라지고 없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냐? 는 이야기도 나눴다. 글에 담지 못한 동화 속 할머니 같던 식당 '무량원'의 흰머리 할머니와 휴일임에도 우리에게 차를 내어주신 주신 인상 좋으신 '매암다원' 아저씨, 당면은 서비스라며 국물이 자글자글한 라면을 끓여주신 '타박네' 주인아주머니도 생각난다. 기회게 된다면 꼭 글로 남기고 싶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그리고 부디 건강하세요. 나는 하동을 당신들로 더욱 예쁘게 기억합니다. 꼭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