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간의 스페인어 수업

San Cri#3

by 세라

휴식을 취한 후 도시에 관한 책자를 보던 나는, 우연히 어학원 파트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갑자기 마음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단기 스페인어 클래스를 신청하게 되었다. 물론 예전부터 어학연수에 대한 로망이 있긴 했지만 하루 이틀 수업으로 뭔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호기심이 동해서 학원에 잠깐 들렸는데, 리셉션에서 만난 선생님의 용기를 주는 말들에 이끌려 결국 사흘간의 어학연수코스(?)를 이수(?)하게 된 것이다.


사흘일 뿐만 아니다. 무려 하루에 1시간. 세상에서 제일 짧은 어학연수다!



학원으로 가는 길
노란 성당도 구경


산크리에는 어학원들이 몇 개 있는데 이곳에서 여행자들이 종종 여행용 스페인어로 단기 클래스를 듣고 가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스페인어를 1도 모르는 채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런 경우라면 생존용(?)으로 유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와하까에서 친해졌던 친구 D는 산크리에서 다른 민박에 묵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쪽에서 만난 한국인들과 함께 같은 선생님께 수업을 들었다고 했다. 이런 우연이!


어학원 1층


1시간 동안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말 짧은 시간인데 말이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동안 독학으로 공부를 했기도 하고, 다른 어떤 어학연수 경험도 없기 때문에 그저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학원은 호스텔에서 10분만 걸어가면 나오는 거리에 있었다.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시간에 맞춰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그때마다 학생들이 왔다 갔다 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니 사흘 동안 수업을 해 주실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첫 수업은 문법 프린트물과 함께 소개 위주로 진행됐다. (전체 수업의 1/4이 소개 타임ㅎㅎ)


내가 수업 받았던 곳은 2층


별거 아닌 시간으로 흘러가 버릴 수도 있었던 이 수업이 유용했던 것은, 질문 덕분이었다. 어차피 얼마 되지 않는 시간, 그동안 궁금했던 거나 물어보자 하고 시작했던 질문이 아예 수업 전체를 이끌어가게 된 것이다. 선생님은 간단한 질문도 뉘앙스 차이를 이해하기 쉽도록 자세히 알려주셨다. 그 덕분에 노트에 쌓여있던 질문들을 하나씩 '미션 클리어'해 갔다. 또 그날그날 산크리스토발에서 무얼 구경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에 대한 일상 대화도 주고받으면서 친구처럼 대해주시기도 했다.


선생님은 아시아 사람들은 정말 똑똑하다며 이해도 잘 하고 빨리 배운다고 했다. 마지막 질문으로 읽을 만한 간단한 소설이나 동화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가방에 있던 단편모음집을 보여주시며 “이런 거?” 하시더니 책을 아예 나에게 주셨다. 와우 쏘쿨~! 감사합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선생님은 저 멀리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그쪽에 자기 집이 있다고 하셨다. 이별 인사를 하던 때 스산히 볼을 스치던 바람의 감각이 여전히 선명하다. 내가 참 좋아했던 산크리스토발의 서늘한 날씨.


아, 짧지만 좋은 인연이었다.


선생님이 선물해 준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언젠가를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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