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 Cri #2
와하까에서 산크리스토발까지 12시간 야간버스를 타고 새벽에 도착했으나 잠이 오지 않아 요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대로 슬리퍼에 츄리닝 차림으로 가까운 시장에 어슬렁어슬렁 나와 보니, 아침이라 그런지 더욱 활기가 가득했다. 시장은 그 어느 도시보다도 서민적인, '진짜 시장'이었다. 수공예품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길거리에 살아있는 닭을 팔고 있었다. 게다가 이곳 시장은 물가가 무척 싸서 기분 좋게 이것저것 사 왔다. 양파, 당근, 감자 합해서 600원, 귤 15개 600원, 키위 5개 1200원! 그리고 우연히 마트에서 오뚜기라면을 발견했는데 700원으로 다른 라면들이 300원인 거에 비하면 무지 비싼 편. 그래도 멕시코 시골마을에서 발견하는 한국 라면이라니, 반가운 마음에 한 개 쟁였다.
과달라하라에서부터 다져 온 요리 실력을 마음껏 발휘해보자(!?) 짧은 산책 후 호스텔에서 나오는 차분한 음악을 들으며 요리를 하니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본격적인 아침 시간이 되자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부산하게 부엌을 들락거렸다. 대부분은 호스텔에서 주는 토스트와 커피를 마시고 갔고, 나는 그 사이에서 주인처럼 혼자 바빴다. 밥솥 같은 건 없기 때문에 밥은 늘 이렇게 어설프게 만들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산크리스토발에 있는 동안에는 매일 적어도 한 끼씩은 요리를 해 먹었다.
사진 폴더를 열어보니 이렇게 며칠 동안의 인증사진이 남아있다. 메뉴는 여전히 고추장 활용 볶음밥과 만만한 스파게티가 다였다. 고추장만으로는 역시 뭔가 밋밋하긴 했지만 사실 모닝 토스트가 취향에 안 맞아서 밥이면 뭐든 좋았다. 과일들도 웬만하면 다 좋았지만, 귤만큼은 우리나라께 훨씬 맛있는 것 같다.
산크리스토발에서의 첫 시작은 평화로웠다. 사실 메뉴를 보면 요리랄 것도 없지만, 일상적으로 만들어 먹는데 재미가 들리니 제주도에 한 달 정도 살러 온 나그네처럼 느껴진다. 요리도, 여행도 무르익어 간다. 머무는 동안 그 어느 도시보다 현지 생활에 빠르게 녹아들었던 이유가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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