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맨 앞이나 맨 뒤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들어가며>, <나오며>, <저자 소개>, <작가의 말> 따위.
소설이든 에세이든 맨 앞이나 맨 뒤에 배치된 글에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평소 어떤 자세로 글을 쓰는지,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고통을 버텨냈는지가 얼마간 드러나 있다. 그래서 작가의 말 자체가 한 편의 에세이 같이 느껴진다.
자신을 표현하는 짧은 프로필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나 자신을 한 줄로 요약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라면 쓰고 고치고 지우고 미루고 갈아끼우다가 끝끝내 제출하지 못했을 게 뻔하다. 그렇게 보면 나는 책은커녕, 표지의 책갈피조차 제대로 써내지 못할 사람이다.
이병률은:
'그곳'이라는 말을 애써 참는다. '여기'라는 말에 집중하려 한다.
이병률은:
도망을 미화하는 방랑자이며
사람을 발효시켜 마시는 술꾼이며
심지어 꽃을 자주 꺾으니 도둑이다.
-이병률, 『안으로 멀리 뛰기』 中 (작가 소개)
태어나 성장하고 일하며 대략 열 개의 도시를 거쳤다.
사람과 공간을 여의는 것이 이력이 됐다.
-한정원, 『시와 산책』 中 (작가 소개)
글을 쓸 때 홀로 먼지 속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막막한 기분이 들 때가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손에 뭔가 닿은 것처럼 온기가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감히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말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금 주먹을 꽉 진 채 이 사소한 온기를 껴안을 수밖에 없다. 내 삶을,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단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오롯이 나로서 이 삶을 살아내기 위해.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中 (작가의 말)
나는 작가들의 치열한 사투의 기록 앞에서 절로 얼굴이 달아오르고, 동시에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나는 14군데 자취방, 10군데 회사를 거치는 동안에도 어째서 '여읜다'는 표현을 생각해내지 못했나. 훔친 단어들로 수없이 글을 쓰고 술을 마시면서도 어떻게 '발효시킨다'는 표현을 생각해내지 못했냔 말이다. 그들이 내 마음을 대신 고백해 주기라도 한 것 같다. 책을 읽는 순간에 나는 이병률의 자아도 가지고, 한정원의 자아도 가지고, 박상영의 자아도 가진다. 나 같은 사람이 위로를 받으라고 쓴 글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나도 끼어서 한 몫의 위로를 챙긴다.
살다 보면 가끔은 누군가의 눈에 띄고 싶은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나를 잘 드러내지도 못하고 센스 있는 한마디를 던지는 법도 모른다. 어쩌다 용기를 내어 어설픈 시도를 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기 일쑤다. 그런 날이면 한동안 자기혐오라는 병을, 그야말로 끙끙 앓는다. 그래서 가끔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어도 존재만으로 이목을 끄는 사람, 묵직하게 있다가도 허를 찌르는 유머를 날리는 사람, 함부로 대하면 안 될 것 같은 포스를 풍기는 사람이 부럽다. 나는 죽었다 다시 깨어나도 가질 수 없는 능력 같은데, 그들에겐 거저 주어진 천성 같은 것이다. 이런 질투조차 얼마나 못났는지. 그러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밑도 끝도 없는 글을 올려놓고는, 스스로 비밀을 들키는 즐거움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지.(변태도 아니고!)
어릴 적부터 시를 좋아했다. 나는 학창 시절 시집을 끼고 다니며 자주 몽상에 빠지는 학생이었다. 대학교에 가기 전에는 엄마에게 사진작가가 되겠다고 말해서 "그건 돈이 안 돼."라는 말을 들었다. 사회에 나오기 전에는 교수님께 시인이 되겠다고 말해서 "그냥 좋은 독자가 되는 게 어떻겠냐."라는 말을 들었다. 사회에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돈을 모으지 못했고 작가가 되지도 못했으며 심지어 좋은 독자가 되지도 못했다. 남은 것은 쓰기에 몰입하는 그 상태뿐이었다. 꿈이 아니라 희망, 몽상이 아니라 망상…… 한마디로 망했다.
서른 즈음부터는 어떤 시인의 발꿈치도 따라갈 수 없는 보잘것없는 내 기록보다는, 습작의 실패와 삶의 비루함과 그럼에도 살아감과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에세이들에 손이 갔다. 먼저 쓴 선배들의 담백한 이야기가 나를 울게 하고, 나를 일으키고, 나를 끌고 갔다. 시에 비해 정제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던(그렇게 착각했던) 수필에 대해서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애틋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를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피천득, 『인연』 中
20대 중반에 이 글을 읽었을 때는 왠지 모르게 아니꼬웠던 것 같다. '젊다고 해서 상처가 없는 줄 아나?' 하는 뒤틀린 심사로 남몰래 반기를 들기도 했고, 어쩌면 수필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와서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면 얼마나 맞는 말인지 모른다.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도 관대한 것이었다. 수필은 닳고 해묵고 희미해져서 그제야말로 깨끗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실은 그게 아닌, 내면의 오랜 상처과 무늬에 대해 쓰는 글이다. 쓰기를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완전히 내려놓고 나서야 그 일상적 실패에 대해서 덤덤히 쓰는 글이다. 곁가지를 걷어내고, 털어버리고, 그러고 나서도 남아 있는 어쩔 수 없는 가식적인 자아에 대해 고백하는 글이다.
내 글은 실패의 어느 단계쯤 있는 걸까. 몇 겹의 가면 속에 있는 걸까. 여전히 세상에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아직은 시도 에세이도 되지 못한 글들을 여기저기 한 조각씩 남길 뿐이다. <들어가는 글>조차 쓰지 못할 거라는 혹독한 자기 비하와 그에 변명하는 못난 마음으로. 저 가지런한 책들의 표지, 아니 책띠에조차 도달하지 못할 거라는 환영받지 못할 자신없음으로. 아무 개성도 가지지 못한 나를 안일하게 위로하는, 나약하고 위악적이고 그 누구에게보다 나 자신에게 잔인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