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자들의 영혼

by 세라

사는 게 고통스러울 때마다 일기장을 펼쳤던 것 같다. 내 마음은 항상 때 묻은 마음이었다. 종이 앞에서 나는 제 얘기가 맞다고 떼만 쓰는 아이였다. 무조건적인 동의와 위로를 원했다. 종이와 연필은 나를 사랑했을까. 언제나 억울하고 일방적이며 폐쇄적이고 유아적인 나를.


쓰는 사람들은 내향이 많다. 그들의 쓰는 취미는 아주 은밀하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조용히 가서 몰래 언어를 품는다. 그러다 자기 안의 폭발을 견디지 못해 온 세상에 제 가장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꺼내놓고야 만다. 사실 은밀한 자아에 대한 고백이 아니고서야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것도 없다. 이쯤 되면 세상 누구보다 나를 드러내기 꺼려한다는 건 응큼한 거짓말이 되고 마는데, 그조차 억울하니 믿어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이다.


쓰는 자들의 영혼은 작은 균열에도 잘 부서진다. 애초에 마음에 금이 간 사람들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상처 많은 사람들이 쓰기를 좋아한다는 건 편견이겠지만,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순순히 인정할 것이다. 내가 골방에서 홀로 읽으며 수많은 작가들의 내면에 반짝 가 닿았듯. 그들도 오늘 밤 어딘가에서 고 있겠지. 내면의 균열을 겨우 봉합해 가며. 부서진 영혼들은 이어져 있다. 만약 평행우주가 있다면 우리는 같은 별자리리라.


MBTI 검사를 해 본 적 있다. 간격을 두고 재미로 했는데, 신기하게도 모두 INFJ가 나왔다.

· 낯가림이 심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 도움 요청을 어려워하고 스스로 해결한다.

· 인내심이 많고 배려가 습관화되어 있다.

· 생각이 많아 현실 적응이 어려울 수 있으며, 현실과의 타협이 힘들다.

· 건강하지 않은 INFJ의 경우, 주목공포증, 발표공포증이 있는 경우가 많다.

· 혼자만의 시간을 침해당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지만 싫은 내색을 하지 못한다.

· 비유와 은유를 잘하며 본인이 하는 말을 타인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구글에서 나열한 이 특징들에 완벽히 부합한다. 회사 입장에서 봤을 때는 참으로 답답하고 사회성 떨어지는 인간이 아닐 수가 없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긴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아무렇지 않게 상처 주고 내리누르는 사람들에게, 나는 또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현실의 나는 "괜찮아요"가 디폴트로 입력된 로봇 같았다. 나는 건조한 표정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내안의 에너지를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영혼 수증기를 공급했고, 귀갓길이면 어김없이 영혼의 습도계가 고장 나 삐걱거렸다. 나는 묻고 싶었다.


"나의 주저함이 당신을 해쳤나요?"


수비하는 것보다는 공격하는 게 편하고 쉬웠는지도 모른다. 그들도, 그리고 나도. 나는 나를 해치려는 타인들을 내 가장 치명적인 곳으로 안내했다. '다 내 잘못이야', '나는 너무 모자란 인간이야', '역시 난 안 돼'.


어째서 내 모든 것은 안으로만 향할까. 안은 그렇게 크지 않은데, 잘한 일이 있어도 티를 내지 못했고 실수하기라도 하면 기어이 속을 마구 파고 내려갔다. 적재 용량이 초과된 마음은 진동을 하다가 지진을 일으켰다. 기형적으로 분출된 마음의 파편들은 날카로운 무기가 되었다. 그러니 나는 내가 쓴 글로부터도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일기장으로부터. 습도계로부터. 별자리로부터. 초토화된 마음으로부터. 안에도 밖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이 자학적인 영혼아, 너 도대체 어떡할래?


글을 써서 고통스럽기보다 고통스러워서 쓴다. 쓰다 보면 안 써져서 고통스럽고, 쓴 글을 읽다 보면 내가 너무 싫어져서 고통스럽다. 그래서? 또 쓴다. 이것은 다만 떼를 쓰는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모순적인 쓰는 자의 영혼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