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2022년으로 바뀐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일까. 자꾸만 2021년에는 그랬구나, 2022년에는 이래야지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한편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일들을 '작년'이라고 규정짓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왠지 서운하다. '시작'을 짊어진 1월의 행보는 언제나 힘차고 새로워야 하고, '끝'을 담당하는 12월은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고 챙겨줘야 하는 맏언니 같다. 같은 추위도 1월의 것은 어쩐지 졸음을 깨우는 냉수처럼 시원한데, 12월의 것은 세상을 꽝꽝 얼리고 가두려는, 한 줄기 온기로 극복해야만 하는 어둠 같다. 그러니 12월의 결심은 소원하고, 1월에 쓰는 '-하기.'라는 문장의 마침표는 무겁다.
2021년 이 무렵에 쓴 글을 보았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면서 살기'
이렇게 쓴 적도 있다.
'기분 좋아지는 일들을 최대한 많이 하면서 살기'
나를 위해 기분 좋아지는 일을 많이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때는 맞지 않는 회사를 다니며 늘 우울했고 분위기에 억눌려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소중한 사람들을 챙겨야겠다고 결심했던 때에는 지나친 배려로 내 감정을 묵혀두다가 우연한 계기에 드러나 관계가 끝나버린 사건이 있었다. 나는 쉬는 기간 동안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으며 말없이 요리를 열심히 했고, 여행지에 다다라서는 회개하듯 당신의 안녕을 기도하곤 했다. 그러다 문득, 정해놓은 명제를 놓치지 않으려고 잔뜩 힘을 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끈을 놓치고 떨어져 다친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삶이란 건 수정 테이프를 덧발라 완성할 수 있는 문장이 아닌데.
매년 반복되는 결심도 있다.
2022년에는 더 나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 2022년에는 책을 더 열심히 읽고 공모전에 참여해보고 싶다. 2022년에는 여행을 더 많이 가고 싶다. 2022에는 가족들에게 더 자주 연락해야겠다……
이런 것들을 쓰다 보니 어쩐지 작년에 썼던 보고서를 살짝 수정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거 어차피 매년 똑같이 하는 거니까 작년 거랑 비슷하게 하면 돼."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일종의 안전장치를 점검하러 나온 2022년의 신임 유지보수관리자가 되어 있었다. 물론 새해의 밝고 긍정적인 결심을 부정할 생각은 아니다. 다만 공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2월 끝날에 뜨는 해에게도, 1월 첫날에 지는 해에게도.
12월의 추억은 여전히 생생하고 1월에는 꼭 한해의 대장이 되지 않아도 된다. 12월에 끝내지 못한 것들은 1월에 끝내도 된다. 아니, 사실 1월에는 그저 다 내려놓고 푹 쉬어도 좋다. 그래서 올해 새해 계획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