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by 세라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 생각해 보면 나는 열다섯 살쯤에도 어른스러움이란 것의 대부분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을 혼자 걸어 다니며 사색하고 고뇌하는 속 깊은 학생이었으니까. 스무 살쯤에 나는 비로소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대학교를 다니며 알바를 해도 해도 가난했지만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꿋꿋하게 살아갔으니까. 스물다섯 살쯤에는 당연히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월급이란 것을 받으며 스스로 의식주를 꾸려나갔니까. 서른 쯤에는 내가 어른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숱한 이별과 이사와 이직을 겪었고 세상의 온갖 야박하고 불합리적인 것들로부터 경험치를 쌓았으며, 심지어 나는 주민등록상 세대주였으니까 어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른 살이 넘어서부터, 나는 그동안 진정한 어른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스스로가 모나고 삐죽한 어린아이에 불과했음을 순연히 받아들였던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날 것 같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불신하고 세상이란 그렇고 그런 거라는 염세 속에 빠져 있는 것은 어른이 아니다. 하루에도 천만번씩 요동치는 내 마음속에서 가끔이라도 빠져나와 진정으로 판단 없이 나 자신을 바라봐줄 수 있는 것이 자기를 아낄 줄 아는 어른이다. 싫은 사람도 한편으론 선한 면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음을 깨끗한 마음으로 인정할 줄 아는 것이 어른이다. 내 삶은 불행으로 가득 차 있고 세상은 나에게 차갑기만 하다는 식의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은 어른이 아니다. 나는 홀로 떠난 여행길에서 내 삶은 가난하지 않았음을 알았고, 햇살 따뜻한 날 산책길에서 세상이 나에게 화가 나지 않았음을, 그토록 다정함을 알았다. 은근히 내가 더 잘났다거나 솔직히 내가 더 힘들다는 생각도 어른스럽지 못하다. 세상에서 가장 뜨겁다고 여겼던 나의 열정도 저마다 가지고 있는 평범한 열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지구 상 어디에도 사연 없는 삶은 없으며 내가 가장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내가 타인의 아픔을 알아차릴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에 중요한 것이란 없다. 만약 누군가가 너무 미워서 또는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해서 오늘 하루가 힘들고 괴로웠어도, 자꾸만 무언가에 집착하게 되는 나 자신이 싫어져도, 괜찮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원래 그렇다. 누구나 그렇다. 자체가 그런 게 아니라 마음의 성질이 그렇다.


나는 아직 미숙한 어른이어서 내 과거의 가난과 초라를 꺼내 놓고 자기 연민 속에 빠질 때가 많다. 가끔은 누구라도 내 얘기를 들어주고 고생 많았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나는 날이면 타고난 후미진 본성이 다시금 드러나서 악마의 마음으로 세상을 미워하고 스스로를 혐오한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알고 있다. 내게는 이런 '멍청이 자아'가 하나 있고, 그런 나를 품어주고 보살펴주는 '엄마 자아'가 있음을. 나는 나 자신에게 친절한 내가 존재함에 감사하고, 가끔 주책맞게 눈물이 나면 계절 탓을 하기도 한다. 기대하지 않은 세상에서 가끔 즐거운 일이 손님처럼 찾아옴에 감사하고, 이기적인 내 곁에 여전히 남아 있는 벗들이 있음에 감사하다. 내게 주어지는 호의와 친절이 당연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글 쓰는 나를 가장 사랑한다. 글 속에서 나는 여전히 자기만 봐주기 바라는 어린아이로 존재하지만, 그 아이를 위해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운 글을 꿋꿋이 써 내려가는 나는, 나를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부끄러운 어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