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는 이불을 덮고

퇴사 D-6

by 세라

바야흐로 모든 것이 끝을 향해 다. 오늘은 남은 휴가를 썼고, 푹 자고 일어나 오후에 짧은 산책을 했다. 따스한 기운이 무연하게 세상 전체를 한 톤 끌어 올리고 있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손이 시리지 않았다. 이젠 마음이 딴청을 피워도 어쩔 수 없이 봄이 왔다.


늘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느라 계절의 흐름을 놓치며 살아왔다. 내가 봄이라고 명명하는 그 순간에도 봄은 흘러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또 한 번 어리숙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살얼음이 완전히 다 풀려버린 연못 앞에서, 반짝이며 헤엄치는 물살이들 앞에서…… 봄날의 아기처럼 꿈을 꾸었으면 했다. 이게 꿈속이라면 저 작은 물살이들에게 내 그림자가 아늑한 지붕이기를. 수면 위로 동심원들이 팔랑팔랑 퍼져나갔다. 저쪽 너머의 무언가가 몸부림을 친 걸까. 문득 두려웠다. 물살이들도 잠을 자고 꿈을 꾼다던데, 혹시 모든 게 너희들이 맞은 불면의 밤은 아닐까. 나라는 존재가 실은 거대한 어둠 아닐까.


연못 속에서 새가 날고 바람이 불고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문장 하나가 내게 다가와 속삭인다. '흐르는 것만 믿기로 해.'


봄은 시작하는 계절이라지만, 나에게는 지친 하루의 끝에 이불을 덮고 잠드는 시간 같다. 긴 긴 여행이 끝나는 시간. 이제 그만 짐을 풀어도 될 것인가. 나 볕바른 양지에 지나온 시간을 묻어두려 한다. 그리고 잠들어야지. 눈부신 봄의 우주 속에서 루저의 삶을 다 잊고, 그 어떤 무기력보다 더 무기력하게 잠들어야지.


연못 속에 새 봄이 새근새근 잠들고 있다. 이쪽의 나와 저쪽의 내가 겹쳐 있다. 더 이상 아무것도 고백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문을 열고 들어와
춤을 추지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


그게 전부야


두렵고

아름다웠어


- 허은실 詩 「춤추는 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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