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꾼 프랭크의 최후

전세사기 14화_결말

by 세라

구청

전세사기꾼 프랭크의 여러 방해 공작이 있었지만, 나는 끝까지 신고를 감행했다. 결국 구청은 프랭크 부동산과 대필 부동산 두 곳에게 각각 '영업정지 3개월 처분'을 내렸고 프랭크는 경찰서로 이감되었다. 사건 초기에 구청에 신고했을 때 '합법'이라고 응대했던 구청에서, 이번에는 같은 내용에 대해 '불법'이라고 동조해 주었다. 처음부터 잘 해결될 수도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가짜중개사 프랭크

프랭크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적당히 괴롭혀라" "젠틀하게 행동하라"며 욕을 퍼부어 왔다. 그는 중개보조원으로서 거래를 한 행위로 위법이 인정되긴 했으나, 아마 자신이 제시했던 합의금보다 더 적은 벌금을 내고 끝났을 것이다. '전세 사기'로 처벌할 수 있는 법은 없었다.


부동산

3개월 영업정지는 부동산에게는 상당한 타격이 되었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내 계약은 무효화되었지만 과연 지금까지 사기 계약이 나 하나였을까? 그동안 얼마나 많은 피해자를 양산했을까? 얼마나 많은 뒷돈으로 자신들의 곳간을 불려 왔을까? 어차피 3개월 뒤에 부동산 명패를 바꾸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 아닌가?


건축주와 컨설팅

프랭크와 프랭크의 부동산에는 작은 스크래치라도 낼 수 있었지만, 본체인 건축주와 컨설팅 업체는 팔다리를 자르고 모른 척하면 그만이었다. 문제의 본질은 프랭크 같은 말단 사기꾼이 아니라 소위 '부동산 가격을 만드는 이들', 바로 이들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들을 처벌할 법 역시 없었다.




그렇다.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 전세사기꾼 프랭크는 자신은 물론, 자신이 속한 부동산에까지 타격을 입히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는 자신이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천천히 멀어져 갔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누군가에게는 가정을, 누군가에게는 삶을 파괴하는 짓을 무참히 저질러놓고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억장 무너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일 따위 겪지 않아도 아프고 슬픈 일은 차고 넘친다. 전세 사기, 깡통 전세, 이게 다 뭐란 말인지. 범죄를 짓지 않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라도 되는 것인지. 나는 퇴치하고 멸절할수록 더 강해져서 돌아오는 신종바이러스 같은 사기꾼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전세 사기로 고통받다가 목숨을 끊은 청년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차라리 죽음을 이해하는 게 더 쉬운 세상, 이 무섭고 끔찍한 세상을, 나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하는가.




지난 싸움의 기록을 다시 읽고 듣는 일은 다시금 내 일상에 오물을 묻히는 느낌이 들게 해서 다소 힘들었지만, 당시의 일기를 내가 다시 읽는 일은 그때와 동등하게 처절해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이제는 눈물이 다 말라버린 종이, 그 종이의 한 면에는 그때 내 목숨을 살려준 말들이 적혀 있었다.


장하다

애썼다

고생 많았다

밥 챙겨 먹고

잠 잘 자니


아무런 위로도 받지 않은 날에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은 날에도 서러웠다. 단지 나는, 평범한 위로들을 메모했다. 나는 글 속에서 몹쓸 생각을 하는 나를 철썩 때렸고, 자꾸 피해의식으로 기울려는 마음을 바로 세우고자 노력했다. 약한 소리를 늘어놓거나 응원을 구걸하는 글 밑에는, 그다음 날의 내가 어제의 내 글 아래 덧글을 남겨 놓기도 했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를 응원해 준다면, 언젠가 내가 살아갈 미래도 지금의 나를 응원해 주지 않을까. 그러면 아무리 힘들어도 딱 오늘 하루만, 참아낼 수는 있지 않을까. 그때는 내가 읽고 쓰는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조차 자신할 수 없었지만, 까마득했던 오늘에 이르러 그 모든 시간을 기록하며 정리하고 있듯이.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돌리지 말기. 괜히 누군가를 탓하지 않기.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돌아서지 말기.


글씨를 작게 쓰는 내가, 유독 크게 써 놓은 글이었다. 나를 도와주는 이들도 다는 믿지 말라고, 다는 믿지 못할 많은 이들이 당시에 나에게 쉽게 조언했다. 다 믿지 못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이 제어되지 않아 두려웠다. 가까운 이들의 냉정한 뒷모습을 보는 건 상상만으로도 상처였다. 나는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 아는 얼굴이 없는 길 위, 차마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 앞에서 숨죽여 울었다. 그리고 또다시 다짐했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나를 배신하면 나는 정말 무너질 것 같아, 가 아니라 마지막 한 사람마저 나를 배신해도 나는 괜찮아, 나는 할 수 있어.


온종일 거의 실성한 채 하루를 보내다가 지쳐서 겨우 잠들면 꿈에서도 다음 내용의 싸움이 이어지던 날들, 그 속에서 나는 안간힘을 다해 나 자신을 지켜내고자 했다. 그렇게 뜨거운 날들이 지나갔고, 장마가 지나갔고, 가을이 지나갔다. 여러 계절이 지나고 기적처럼 무탈한 하루를 맞이했을 때, 너무도 시린 그 겨울날, 나는 얼마나 눈물겨웠던가. 하루하루 출근할 곳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날 향해 웃음 짓는 이들의 눈매를 바라봤고, 퇴근길에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있음에 행복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왔을 때, 졸지 않고 제대로 환승했을 때, 제일 일찍 출근해서 하늘을 보며 김밥 한 줄을 먹을 때…… 평범한 매 순간마다 사는 게 겨워서 남몰래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훔치곤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은 각자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조기에 문제를 발견해 준 마고 언니, 노련한 부동산 지식으로 주도면밀한 대응을 가능케 해 주신 중개사 브라더 씨, 현장에서 목에 핏대 올리며 함께 싸워주신 민달팽이유니온(시민단체) 분들, 틈틈이 법적 조언을 해주시고 무료 수임까지 결단하셨던 변호사님, 용기가 부족할 때마다 뒤에서 세게 밀어주시던 전세사기 피해자 모임 분들, 내 다음 집을 찾아주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서울 부동산을 나보다 더 많이 검색한 멀리 있는 친구, 끼니를 걱정해 주고 연락해 주던 여러 친구,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상처 주고 깊이 실망하고 한때 멀어졌지만, 여전히 내 곁에 있는 내 친구 소울까지,


무너진 세상에서 거짓말처럼 만난 선한 사람들이 내게는 있었고, 그들은 한때 나의 우주였다. 기억으로 나나는 여태껏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세상을 미워하지 않는 일이 너무 힘든 당신에게, 의심과 불안 없이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당신에게, 버려진 밤 혼자 우는 당신에게, 감히 말을 건넨다. 갖고 있을 수도, 버릴 수도 없어서 어찌할 바 모르는 삶을 사는 사람이 여기에 또 있다고. 이 지리멸렬한 세상에서 우리는 행성처럼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그러다 하나의 우주가 되는 순간도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우리, 살자고. 죽지 말고 살자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