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ochimilco#1
오후 한때, 한편의 잔잔한 클래식 같은 산책이었다.
때로는 철학자가 되어
때로는 여행자가 되어
때로는 방관자가 되어……
멕시코시티에 머무른 지 며칠이 안되어 나는 좀 조용한 도시에 가고 싶어 졌다. 익숙한 대도시보다는 개성 있는 마을과 자연, 여유를 찾고 싶었다. 원래는 떼오띠우아깐(Teotihuacan)에서 피라미드를 보려고 했지만, 과감히 일정을 바꾸었다. 나의 선택은 강이 있는 작은 도시, 소치밀코(Xochimilco)였다. 약간 지쳐있있던 나는 실컷 늦잠을 자고 11시쯤 체크아웃 시간이 넘어서야 느적느적 호스텔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Tasqueña역까지 가서 뜨렌(Tren)으로 갈아탔다. 선착장이 어디인 줄도 몰랐고, 배를 타려면 일행도 필요했지만 '가면 다 해결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뜨렌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뜨렌의 같은 칸 안에 목적지까지 길을 함께 한 사람이 있었다. 같은 역에 내려서 나가려는데 둘 다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같은 상황임을 알아차렸다. 소치밀코에 방문하는 외국인이라면 100% 여행자였으므로.
그가 먼저 내게 기분 좋게 악수를 청했다. 그의 이름은 Perry, 미국인이었다. 그도 나처럼 배를 타러 왔으나 아무 계획이 없는 상황이었다.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우린 함께 배를 타기로 했다. 사실 그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선착장에는 우리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계획인 동행과 백지에 그림을 그려나가며 왠지 모를 든든함을 느꼈다. 나는 늘 길을 잘 잃었으므로 그는 나의 눈이 되어줄 수 있었고, 또 나는 짧은 스페인어가 가능했으므로 그의 입이 되어줄 수 있었다. 우리는 한 팀의 앉은뱅이와 장님이 되어 소치밀코의 골목 속으로 들어갔다.
눈 앞에 알록달록한 배로 가득한 선착장이 펼쳐졌다. 역과 선착장은 아주 가까웠다. 선착장 두 블록 앞에서 만난 멕시코 사람이 친절하게 방향을 안내해줘서 셋이 같이 왔는데, 알고 보니 배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역시, 멕시코답다. 우린 까다롭지 않은 고객이었다. 그와의 딜 끝에 1인당 300페소에 배를 타기로 했다.
이곳에는 내가 찾던 고요함이 있었다. 대도시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들을 수 없었던 백색소음이 흐르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숨어있던 미시의 세계를 찾은 듯했다. 강물이 자아내는 리듬은 귓가를 잔잔히 흘러갔고, 때때로 호객을 하는 장사치들의 목소리가 물 위를 오갔다.
배의 움직임대로 강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가 흘러가는 건지 강물이 흘러오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영원히 답을 알 수 없는 철학의 질문을 마주한 듯 멍해졌다. 강렬한 뙤약볕이 갑판에 닿는 기운마저 소리로 들려오는 것 같았다.
Perry는 조용한 여유를 즐기기에 좋은 동행이었다. 너무 말이 많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침묵이 어색하지도 않았다. 또 틈틈이 멋진 풍경과 서로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나도 그도 직업 덕분에 사진을 찍는데 능숙했기에 우리는 이심전심,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독특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는데, 아이폰의 각종 효과를 활용해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순전히 폰으로만 만든 영상들이었는데, 퀄리티가 제법 높았다. 한편의 짧은 독립 영화 같은 그의 영상들 중에는, 나중에 배 위에서 미풍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동양인 여자의 옆모습도 한 컷의 배경으로 등장하게 된다.
우린 아예 갑판에 드러누워 버렸다. 오후의 볕은 강했지만, 따가워질 때쯤이면 그늘로 돌아왔다. 나란히 누워서 강 위를 떠다니며 Perry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어느 연상의 여자와 결혼을 했고 미국에는 딸이 있었다. 딸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의 예술적 감각과 딸의 귀여운 미모가 어우러져 한장 한장 모두 아름다운 예술 작품 같았다. 결혼을 하고도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며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는, 어떤 제약도 한계도 없어 보였다. 가족들은 서로의 삶을 받아들였고, 사진 속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지구 반대편에는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같은 배에 올라타기까지 누군가에게 여행은 큰 도전이고 누군가에게는 작은 일상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끼리도 서로 마음이 통할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갑판 위에 누워서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너무 편해서 거의 잠들 뻔했다. 여행 내내 가방과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걷고 또 걸었던 것이 멕시코시티에서부터 무리가 되었는지, 어깨에 근육통이 생겨 온몸이 피로한 상태였다. 순간순간 램수면의 경계를 오가는 사이 따사로운 햇빛이 영험한 광선처럼 뱃길을 따라왔다. 완벽한 날씨는 내 통증을 알아챈 듯, 그리고 잠재우려는 듯, 짐짓 감각을 앗아갔다.
소치밀코에 사는 사람들에게 강 위는 또 하나의 시장 세계였다. 그 시장은 여행자에겐 별천지였다. 강 위에서는 모든 것을 팔았다. 음식도 팔고 술도 팔고 음악도 팔았으며, 필요하면 능숙하게 배를 붙여 속도를 맞추었다.
선상의 마리아치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우리를 호객했지만, 우리 둘은 무음의 사색 속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스쳐가는 길목에서 음악을 엿듣지 못하게 할 정도로 인색한 것은 아니었다. 음악은 모두의 것이었다. 흥에 취해 우리에게 건배의 축사를 건네는 강 위의 여행객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었다. 강 위의 음악은 도플러 효과가 되어 가까워졌다 멀어져 가기를 반복했다.
심심해질 때쯤 Perry와 나는 노젓기에 도전해 보았다. 노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고, 나의 경우에는 젓기는커녕 제대로 들고 있기도 힘들었다. 반면 Perry는 꽤 선전했다. 우리는 상념에서 벗어나, 다시 호기심 많은 관광객 모드로 돌아갔다. 우리가 지나온 뱃길 위로 남은 웃음소리가 물 위의 동심원들과 함께 천천히 사라졌다.
순간순간은 길었으나, 길 끝에 다다른 건 순식간이었다. 아마도 그동안의 나의 시간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가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다. 불성실하고 게으르며 무계획적이고 몽상적인 여행자가 아니라면, 그 시간에 그곳에서 하루를 시작할 리가 없으므로.
우리는 함께 강 위를 유영하며 한 편의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공유하듯, 서로의 기억 한 구석을 각인했다.
Perry와의 동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날 소치밀코에서 잊을 수 없는 인연을 만나게 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