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하는 마음

#일기

by 세라

퇴사를 겪으며 썼던 글을 브런치북으로 엮어보려고 다시 읽어보다가 무력해졌다. 퇴고는 어른의 일이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해서, 결국 그 아이의 친구밖에는 되어줄 수 없었다. 마음이 시큰했다. 나는 아직 내 글을 퇴고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퇴고는 깎고 다듬는 기술이 아니다. 퇴고는 들여다보고 받아들이고 떠나보내는 마음의 과정이다. 퇴고를 하기에 나는 아직 미숙하다. 나는 아직 어리광이 심하고, 허영심이 많고, 그런 나를 인정하기 싫다. 글도 거기까지다. 퇴고는 인격의 문제인 것이다.


성당에 다니는 친구 B는 몇 해 전부터 나를 루시아라고 불렀다. '빛'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녀에게 나는 빛이라고 한다. 나는 어둠의 왕인데, 그녀는 어째서 나를 빛이라고 하는가. 당신도 바보야. 당신도 콩깍지가 씌었어. 그런데 나는 '당신'이라는 단어를 사랑하는 것 같다. 당신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들이 있군요.


언젠가 책을 쓴다면, 쉬운 글일지언정 누군가에게 선물할 수 있는 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쓴 어두운 글은 결코 누군가에게 기분 좋게 선물할 수 있는 글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용기가 부족하고, 지금까지 쓴 모든 글을 자주 다 지워버리고 싶다. 이건 오래된 생각이다. 이 고리타분과 구태의연을 깨 부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서 나는 정말로 노력했다. 그 노력이라 해봤자 겨우, 백수로 지내면서도 매일매일 머리를 감았던 것, 기분이 처지려 하면 꼭 하루 한 번은 밖으로 나가 걸었던 것 정도였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산다는 건 빛을 본다는 것이다.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빛을 그러모아 읽고, 쓰고, 놀라고, 감탄하고, 경애하고,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것으로 먹고 살았다. 햇빛과 불빛을 찍고, 담고, 잇고, 엮어 사진과 영상으로 만들었다. 어둠이 아름다운 것조차 한 줄기 빛 때문이라 여겼다. 그 사실만으로 가슴이 터질 듯이 벅찬 순간들이 있었다. 이런 내 마음도 모르면서, 나를 빛이라고 불러준 당신들이 존재했다.


오늘 친구가 아이유 콘서트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해서 따라가서 보고 왔다. 평소 아이유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사실 책 빼고는 바보라서, 태어나서 한 번도 가수의 콘서트를 본 적이 없다. 3시간 동안 영화관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나는 노래의 분위기나 맥락과 무관하게 절절 울었다. '삶이 어떻게 더 완벽해'. 이 가사를 그냥 음원이나 뮤직 비디오로 들었다면 그냥 한번 플레이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듣다가 중간에 스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편집 불가능한 시공간에서 내 눈과 귀와 뇌에 직접 내리 꽂히는 노래는 달랐다. 가사는 자꾸 반복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음악이 아닌데도 나는 울고 말았다. 노래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노래가 나를 설득했다. 와락 울어버렸다. 와르르 울어버렸다.


아이유는 자신이 이렇게 큰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에 감사하다며 , 앞으로도 잘 사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잘 살겠습니다", 이거 어려운 말이다.


집으로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e-book으로 허지웅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을 읽었다. 울면서 읽었다. 최대한 안 우는 척하면서 이미 헐은 눈가를 훔치며 울었다.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를 훌쩍거렸지만 그래도 어깨를 들썩거리지는 않았다. 그가 말하더라.


"자전거에서 굴러 떨어진, 그래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보조바퀴를 파는 곳을 찾을 수 없고 뒤에서 잡아줄 아버지가 없고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휘청거리다 이제는 자전거를 탄다는 일 자체가 지긋지긋하다며 전부 다 그만두겠다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절망과 분투하기를 포기한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나는 언제나 뭐든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인간은 도무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한 사람을 그 밤은 결코 집어삼킬 수 없다. 이건 나와 여러분 사이의 약속이다. 그러니까, 살아라."


솔직히 나는 소싯적 허지웅보다 더한 아집과 반항의 전문가다. 갑자기 내가 지금까지 썼던 모든 글에 대해서, 반항하듯 거꾸로 써 볼까 하는 유치한 생각이 치민다. 내가 싫다고 한 것에 대해서 좋다고, 내가 지겹다고 한 것에 대해서 안 지겹다고, 내가 못 견디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 참 나 그거 별 것도 아니라고 너털거리면서, 뭐래 어이가 없네, 그게 뭐라고? 하면서, 내 주특기를 발휘해 보자고.


단시간에 쓰고 고치고 누군가에게 선물할 만한 좋은 글을, 나는 쉽게 엮어낼 수 없을 것 같다. 그러기에 나는 아직 너무 부족한 사람이다. 그러나 내 삶의 행복이나 불행과 관계없이 나는 언제나 좋은 글을 쓰고는 싶었다.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꿈이었다. 이루지 못한 꿈과 사랑을, 고통과 고독을, 나는 영원히 글로만 노래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자체를 소재 삼으려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의 고통이 글로 재탄생한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해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좋은 글도 못 되는.) 고통은 고통일 뿐, 선택 가능한 편안한 삶이 있었다면 나는 100% 그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 글은 창작이나 예술이 아니가 아니라 남은, 쓸쓸한, 고독한, 어쩔 수 없는 수습 행위였다. 글이 삶보다 먼저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 최선도, 차선도, 그리고 차악도, 어쩔 수 없이 글쓰기 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최악만은 아니었다, 글쓰기는.

오늘, 술에 취한 채 아무렇게나 쓰고 있다. 내 마음이 너무 유아적이고 동어반복적이어서 부끄럽다. 일기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거라지만, 책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퇴고 이전에, '퇴고를 할 수 있는 마음'이 준비되어야만 한다. 나는 부족하고 부족하다. 나는 그동안 내가 쓴 글이 지금까지 워밍업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자기 전 헝클어진 내 마음 일부를 고백하는 시간을 가진다. 오늘 내가 반짝반짝 빛나는 가수의 노래를 들은 것, 반짝반짝 빛나는 작가의 글을 읽은 것, 반짝반짝 빛나는 친구를 포옹한 것. 노래 속에서, 글 속에서, 당신들과 '살기'로 약속하고 약속받은 것, 그것만을 좋이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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