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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Jun 30. 2024

공지사항 -마감-

#일기 #헛소리

[곧 심심파적 주절거림이 시작되오니 나의 열렬한 팬들을 방구석 여백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방은 충분히 좁으니까 어서어서요.]


라는 공지사항을 올려놓고

나는 이제부터 무엇을 쓸지 고민한다

나의 바로 이런 점을 당신들은 사랑하지


그래서 지금 이걸 운문으로 쓸지 산문으로 쓸지 고민 중인데요

사랑하는 팬들 여러분, 이거 어떻게 구워삶을까요? 킥킥 제가

창의력을 좀 구워삶아가지구


일단 들려줄게요, 좀 처지는 이야기부터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퇴근길에

문득 못 받은 알바비가 서러운 거다

촬영 장비를 이고 지고 우산까지는 들쳐 올릴 수 없었던 그날

그날처럼 젖은 바짓단을 끙끙 신경 쓰다가 계단에서 혼자서 미끄러질 뻔했는데

사기꾼 새끼 에라이 나쁜 새끼 너 같은 새끼는 말년에 개고생 해라 혼자서 그랬는데

그 새끼는 이미 말년인 거다 이미 평생을 잘 먹고 잘 살은 거다

그냥 잊어, 지나간 불행은 잊어, 그냥 살어,

그런데 나는 왜 착한 말들에 더 열받는가

나를 진짜 불행하게 하는 건 진정으로 온유한 말들


[같이 못된 말 하실 분들 모집합니다]

- 마 감 -


하지만 아시죠, 나 그렇게 못돼먹기만 한 사람은 아니란 거

당신이 발굴한 예비 스타에게 자부심을 가지세요!

얼마 전 낙선한 공모전의 당선작들을 읽었다

무수히 프로페셔널한 시들에 대한 나의

몹시 아마추어적인 절망, 그러나 며칠 뒤

나는 어둠 속에서 솔직하게 중얼거렸지

뭐야, 한두 개 빼곤 내가 쓴 게 더 낫잖아?

게다가 나는 창작에 유리한 가난까지 타고났다고

이거 안 되겠다, 심사위원들을 다시 심사하자고


[같이 국민신문고 울리실 분들 모집합니다]

- 마 감 -


마지막으로, 슬픈 건지 기쁜 건지 정하지 못한 이야기

어릴 적에 우리 엄마는 장마가 오면

내 생일이 오려나 보다, 그랬거든

나는 언젠가 한여름 장마철에 죽고 싶거든

그런데 지금은 너무 바빠서 죽을 시간도 없어

죽도록 일하다 보면 꿈은 이루어질까?


[제 꿈을 응원하시는 분들에겐… 헛바람 풍선껌 증정]

- 마 감 -


더 많은 분들께 사랑받고 싶지만

응원은 딱 한 번만 받습니다

두 번은 안 돼요

적당한 자만은 사랑스럽지만

그 이상은 엉터리생고기

기회주의적 조기 마감만이 얼렁뚱땅 생존의 길

외로워져

외로워져


나는 전국의 팬들에게 혼란한 공지사항을 올려놓고  

좁은 방에서 음냐음냐 가녀린 새우잠에 든다(들고 싶다)

일요일 밤에 지맘대로 되는대로 지껄이다가

Oh Happy Happy Birthday




(일요일 밤 이상한 글 죄송...)




토요일.


하늘이 비를 아끼려는가. 매체들이 너도나도 섣불리 장마를 예보했으나 하늘은 무사태평한 얼굴로 '물'욕을 자제하고 있었다. 귀여단칸방을 위하여 대출을 해주십사 시방으로 뛰어다닌 한 주, 피로가 유독하게 차올라서 '이번 정류장'에서 하차해야 하는 그 순간에도 꾸벅꾸벅 졸면서 3번이나 정신을 잃었다. 전세 사기를 당했던 집이 자산에 잡혀 수차례 이의제기를 신청해야 했다. 이미 공중에서 분해된 일들입니다. 어찌하여 서류를 달라 하십니까. 하루, 또 하루,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간다. 다시 생바닥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다 잊고. 다 다 잊고. 지난날들의 나에게 안부를 묻고 싶어지면, 어느 정류장에서도 하차할 수 없을 테니까. 지금은 일단 내릴 때.

 

일요일.


토요일 퇴근길에는 비가 안 온다고 해 놓고 비가 쏟아져서 비를 맞았다. 일요일에는 종일 비가 온다고 해놓고 출근길만 함빡 적셔놓고는 오후에 이도저도 아니게 그쳐버렸다. 쏴아아아…… 아무도 찾지 않는 산속의 책방에서, 깊은 수면에 들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 흔들리며 쏟아지는 . 나는 좋았어요. 이렇게 좋은 날에 나를 낳아준 엄마가, 엄마가 울었어요. 은퇴 후에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어느 요양원에 총무로 들어갔는데 청소부터 서무까지 온갖 잡일을 다 시키고 거기에다 10일은 무급 봉사활동이라고 그랬다고. 일단 뭐든 해 보자고 그랬다가, 그냥 내일 당장 그만두라고 그랬다가, 점점점 점점점 할 말이 없어졌는데 내가 얼마나 죽고 싶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음독자살에 실패한 내 친구만 나무라는 우리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 내가 귀신 마음도 아는데 엄마 마음 모를까 봐. 엄마가 울다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아직도 머나먼 고향땅의 큰 언니만 같아서 쏴아아아, 빗속에서 조용히 울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6714번 버스 안에서 졸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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