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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11시간전

나를 생각했을 때 더 이상 슬프지 않을 때까지

상담일기-8회차

"회사 생활은 어때요?"

"처음 상담을 시작할 때보다는 많이 편해졌어요. 적응하는데 오래 걸렸지만 지금은 20대 동생들과도, 상사와도 잘 지내고 있어요. 요즘은 혼자 있고 싶어도 혼자 있을 틈이 없어요."


이야기를 주고받던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래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네요?"


선생님은 내가 낯을 좀 많이 가려서 그렇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면도 있는 것 같고(처음에 나는 무조건 혼자인 게 좋다고 말했었다), (특유의 소극적인 기질상) 사람들 사이에서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매우 낮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평화롭지 못한 직장도 많았다. 한 명만 나를 싫어해도 집단 전체와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왜냐하면 누군가 나를 비난하면 나는 같이 목소리 높이는 게 아니라,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주로 입을 닫고 나를 싫어하지 않는 나머지 모두에게까지 의기소침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답답한 선택을 내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오해와 억울함을 견디는 것보다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 어려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부당하게 퇴사를 당했을 때, 어차피 현실에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시원하게 욕이라도 하고 나오면 좋잖아요. 그런 상황에서조차 저는 속 시원한 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울면서 나왔어요."


피로에 잠식됐던 토요일 오전, 뜬금없는 눈물이 하루를 깨웠다. 그 순간 선생님이 기습적으로 질문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는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바로 그때,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 역시 순간적으로 튀어나간 대답이었다. 스스로에게 조금 놀랐다.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걸까? 


선생님은 나에게, 나 역시 몰라서 말 못 한 게 아니라 말하는 것이 더 힘들었기 때문에 못한 것 아니냐며, 나에게 가장 힘든 순간을 견디고 있던 그때의 나를 미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오랫동안 억울하게 참다 보면 나중에 어느 순간 '나'를 생각했을 때, 그저 답답하고 안쓰럽고 불쌍하고 슬픈 마음이 된다고도 하셨다. 사실은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목표는 이거예요. 나를 생각했을 때 더 이상 슬프지 않을 때까지."


그러고 보면 평소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타인의 이야기는 한없이 들어주려고 하면서, 내 이야기는 꺼낼 줄 몰랐다. 어영부영 살다 보니 이제는 내 얘기는 궁금해하지도 않는, 말 많은 사람들이 곁에 많이 남아 있다. 그래도 백 번 양보해서, 거기까진 괜찮았다. 문제는 나는 타인에 대한 나의 불편한 감정은 감수하면서도, 타인이 나에게 불편하게 하는 것은 쉽게 허락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런 선택을 내리는 사람이었다. 그게 나에게는 덜 어려운 것이었으니까. 내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는 게 세상 무엇보다 어려웠으니까. 그러나 전자와 후자는, 나에게 함부로 다가오는 사람과 나를 함부로 내치는 사람은, 너무도 닮아 있었다. 로 그런 이들이 나를 사랑했고, 나는 그 기형적인 사랑을 거부할 줄 몰랐다.


(어린 시절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던 나의 엄마는, 나에게 입을 닫고 귀를 여는 방법만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나는 성인이 되고 입을 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다 못해 약속을 잡는 것에도 그랬다. 선생님은 일상에서 작은 선택 하나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 그렇게 살아온 숱한 세월은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하셨다. 그리고 직장 관계는 너무 고난도이니, 안전하다고 느끼는 가까운 관계에서부터 조금씩 내 마음을 꺼내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어 불편하거나 서운한 마음을 표현한 이들도 떠올랐다. 그때의 기억을 떠오르는 대로 말했다.


"그러면 그 친구들은 주로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요?" (이 질문도 예리했다고 생각한다.)


"그 친구들은 저와 정반대로 무척 밝고 말도 많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들을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그들이 저를 끌어올려줘요. 그 친구들을 만나면 저도 막 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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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대화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내가 내 마음, 특히 우는 내 마음에 대해서, 너무도 몰라주고 있었다는 이다. 마치 엄마가 평생 동안 지독하게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듯이, 내가 나 자신에게도 그러고 있었다는 것.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엄마와 닮았구나,라는 상투적인 결말에 도달하고 만다. 기어이 나는 여기까지 왔는가. 타인의 일이었다면 어렵지 않게 말해줄 수 있는 것들도, 정작 나 자신에겐 해주지 못했다. 알고도 못해준 것이 아니었다.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잘 되돌아보는 사람이라 생각해 왔는데, 아니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 나에게, 가장 편파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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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탄핵 시위를 나가느라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기억의 흐름을 좇아 급하게 기록을 남겨 본다. 떠오르는 대로 얼기설기 엮은 터라 엉성한 일기지만, 언젠가 미래의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이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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