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원 아저씨의 제안에, 나는 외국인 관광객 모드가 되어 대답했다. 그래서, Plata가, 뭔데요?
Plata는 바로 '은'이었다. 멕시코 중북부에는 광물로 유명한 도시가 많은데 이때만 해도 처음이라 관련 단어들이 생소했다. 알고 보니 Taxco 하면 Plata, 이곳은 '은의 도시'로서 명성이 높은 곳이었다. 아저씨는 어떻게 여기 왔는데 Plata도 모르냐는 표정을 지으며, 가까운 상가로 나를 안내했다.
Taxco에서는 특이하게 관광 안내 센터 대신 광장에서 초록색 안내 조끼를 입은 아저씨·할아버지들이 지도도 주시고 안내도 직접 해 주셨다.(처음엔 의심했는데 정말 방식이 그랬다.) 그를 따라 가까운 곳으로 가 보니 은으로 된 액세서리를 파는 잡화상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광장 근처, 골목 구석구석에도 은 관련 잡화점·갤러리가 가득했다. 골목을 걷다 보면 노점상들이 모여 있는 상가도 자주 눈에 띄었다. 메인 광장 근처에 줄줄이 늘어선 부띠끄들은 좀 더 가격이 높았다. 이런 은을 파는 가게들을 'Platería'(쁠라떼리아) 라고 부른다.
나는 평소 액세서리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닌데, 스무 살 때 친구 따라 번화가에 나갔다가 얼떨결에 귀를 뚫은 적이 있다. 그 이후에도 귀걸이를 잘 쓰지 않았는데 내게는 피부 재생 능력이 아예 없는 것인지(..) 신기하게 귀가 절대 막히지 않았다.
Taxco에서도 처음엔 그냥 구경만 하며 지나쳤다. 그러다문득 나에게 아직 '막히지 않은 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삼일째에 호객꾼의 성화에 못 이겨 귀걸이를 하나 사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를 사기 시작하자 그 옆, 그 옆의 옆으로 이어지는 아줌마들이 더욱더 열성적으로 나를 호객했다. (..흡사 부산 자갈치 시장이었다.)
-죄송해요, 전 이미 샀는데요.
-아미가(Amiga), 여긴 그거랑 다른 종류들이 많이 있어, 여기 와서 이것도 좀 봐봐! 정말 예쁘지 않니?
냉정하지 못한 나는 거기서 또 하나 더 샀다. 그런데 순간, 무의식 중에 다른 데로 또 눈을 돌리자 그 라인 전체가 나를 바라보며 아우성을 치는 것이었다. 차림새는 누추하지만 진짜배기 알부자 동양인으로 보였던 건가.(?) 덜컥 무서워진 나는 그 상가를 빠져나왔다.
액세서리들은 사실 우리나라 번화가에서 파는 것들이 더 세련되고 예쁜 것 같지만, 그래서 한국에서는 절대 안 살 것 같은 치렁치렁한 걸로만 골랐다. 멕시코 친구들은 다 예쁘다고 해 줬는데 한국 친구들 반응은..
"..그거 뭐야?"
(반응 끝)
비록 몇 달 뒤 금방 색이 바래버렸지만, 그냥 소모품으로 생각하기로(..)
멕시코를 누비며 돌아다닐 때만 해도 반짝반짝 예쁘게 빛이 났는데 꿈에서 깨어 보니 꿰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어 있다.
Taxco가 은의 도시라는 걸 알게 된 날, 도깨비장난 같은 하얀 유혹에 잠시 정신을 잃었다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