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500일

카메라를 들고 한 블록의 길을 걷는다는 것

D-432

by 세라

오늘 저녁 내 손에는 카메라가 한 대 들려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한 블록의 길을 걷는다는 것, 카메라를 들지 않고 한 블록의 길을 걷는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 걸까?


카메라 아이(Camera eye)로 본 세상은 아름다웠다. 그때 포착된 장면이 얼마나 쓸쓸하든, 얼마나 창백하든, 나는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한 블록의 길을 걷는 사이에 나는, 그것을 들지 않았을 때보다 더 많은 순간에 '아름답다' 하고 혼자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한 블록의 길을 걷는 나의 바디에, 나의 손이라는 마운트에, '카메라'라는 작은 렌즈가 장착되어 있을 때,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카메라 아이가 된다. 내가 나의 카메라가 된다. 아니, 나의 아이가 된다. 아이의 눈에는 그 어떤 모노크롬도 멀티 컬러로 굴절시키는 마법의 필터가 씌워져 있다. 미치고 홀린 상태로밖에는 통과할 수밖에 없었던 마약 같은 삶이, 아이에게는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삶이 아름다웠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그런 재귀적인 물음이 가능한가. 그보다 아름다운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쓸쓸한 장면도, 창백한 장면도, 아이는 기어이 확신에 찬 채 대답하고 말 것이다,


미치도록 아름다워요. 무엇을 준대도 바꿀 거예요. 가난을 준대도요.


마치 카메라가 하는 말 같은, 아니, 아이가 하는 말. 아니, 늘 그랬듯 혼자 하는 중얼거림. 그렇게 무엇이 무엇의 환유인지 알 수 없는 순간이 온다. 한 블록의 길을 걷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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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에 사진이라는 거창한 결과물은 없다. 나의 가난이, 나의 고집이, 내가 살아온 삶의 외람된 결과물이다. 그것이 평생에 걸쳐 이루어낸 내 고된 작업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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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했다.


"그래도 무언가에 미친 사람이 부러워요."


"예…… 저는 미친 사람이에요. 맨정신으로는 버티기 힘들어서 미치고 환장한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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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나를 장착한다. 렌즈를 교체한다. 이번에는 고정된 초점거리에 나라는 카메라를 앉혀둔다. 셔터를 누르면 곧바로 돌입할 수 있는 아름다운 스냅 세계가 거기에 또. 오늘은 147페이지에서부터 시작한다. 오늘 내 집 주소는 147번지다. 여기서 휴식한다. 미친 채로도 집 주소를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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