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17
읽기와도 쓰기와도 멀어진 채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다자이 오사무는 가을과 여름이 동시에 찾아온다고 하였는데, 오늘같이 미스티한 날에 가을의 풍치를 한 번 상상해 버리고 나면 한 해가 몰록 지나가 버린 것 같은 서늘한 기분에 사로잡히기 십상이다. 그렇긴 해도 유월 중순에 벌써 한 해의 끝을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나라는 인간은 뒷덜미를 콕 붙잡아두지 않으면 이 지나치게 성급한 기질을 어찌하지 못한다.
어쩌면 반대로 지나치게 미련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서늘한 기분, 그것은 미리 실온에 꺼내놓아도 끈질기게 해동되지 않는 가난과 불안의 짬뽕에서 스며나오는 매콤한 냉기일지도. 봄과 여름과 가을, 무한화서처럼 피어나는 여린 꽃들 앞에 서면 나도야 속절없이 넋을 빼앗기고 만다마는, 그러다가도 한순간 내게서 발아한 '좋다'라는 감각이 낯설어지면 어쩔 줄을 몰라서 달밤에 주류 코너를 어슬렁거리는 잡객이시다. 나는 지난 겨울과 다가올 겨울 사이에서 취객처럼 비틀거리며, 현재라는 평균대 위를 갈지자(之)로 걸어가고 있다. 모든 걸 그만하고 싶은 마음과 그럼에도 버텨보는 마음도 비틀비틀 반반. 다들 아시다시피 취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세상인데, 한껏 취해서라도 내 앞에 놓인 길을 걸어가려는 마음이란 갸륵하지 아니한가. 취한 채로는 좋다, 좋다, 그런 말도 아무 생각 없이 중얼거릴 수가 있는 것이다.
4개월 전 큰맘 먹고 주말 알바를 그만뒀던 것은 '숲 해설가' 공부를 위해서였다. 시간도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여야 하는 이 과정에 덤벼든 것은, 13년 간 시난고난 학자금을 다 갚은 기념으로 내가 나에게 허락한 금전적인 보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게도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음을 한 장의 수료증으로 확인해 보기. 그렇게라도 내 삶에 세속의 활기를 불어넣어 보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주로 50대와 60대였고 심지어 80대도 있었다. 누구보다 낡고 늙고 구중중한 마음을 숨긴 채 나는, 좋다, 예쁘다, 신기하다…… 를 중얼거리면서 팔랑팔랑 대열의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나 같은 사람은 영원히 숲 해설가 같은 건 될 수 없겠다는 한심한 생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수료증을 받았다는 사실이 내심 좋아서 일기를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책상 위에 널따랗게 펼쳐놓았다지.
젊다, 예쁘다, 귀엽다, 라는 말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들었던 날들이었다. 물론 젊은 사람이 뭘 그렇게 조냐, 또 알바하다 왔냐, 젊으니까 졸리는 거다, 라는 거침없는 잔소리들도 들으면서, 그래도 꿋꿋하게 졸았다. 졸면서 들었던 말들은 달큰한 꿈 속으로 풍덩 빠져버렸고, 나는 아주 오랜만에 10대의 여느 날들처럼 교재 위로 멋진 수면파를 그려냈다. 혹시 모르지, 저 멀리 산하대지 우주법계에서 10대의 나와 30대의 내가 조우하고 있었을지.
자격증과 상관없이 나는 언제나 숲의 정령과 나의 검은 새(카메라)와 산책을 사랑해 왔지만, 정작 자연에 대한 지식은 너무나도 보잘것없어서 수업의 반절은 아예 알아듣지 못했고, 나머지 반절은 고질적인 소극성으로 뒤쪽에 걸쳐 있느라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잘 모르는 내가, 가끔은 너무나 기초적인 질문을 던지는 내가 있어서 든든했다고 말해주시던 선생님이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나도 장난기 섞어 응답했다. "선생님, 저의 하찮은 실력에 반하셨군요!"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게 아니라고. 물론 같이 몰라서 동질감을 느꼈던 것도 있었지만, 수업 시작하기 전에 혼자 시집을 읽고 있더라고. 그 모습에 반했다고.
아…… 수면파에 아득히 잠기기 직전에 나는 그런 모습이었구나. 꿈속에 빠졌단 걸 자각하기 이전에 나는 이미 빠져 있었던가. 지금껏 꿈이라 믿었던 건 꿈속의 꿈이었는지.
허투루 읽고 쓴 것은 감히 읽고 썼다고 공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읽고 쓰기와 멀어졌다고 단호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한 문장에라도, 한 단어에라도 발 담그고 싶었던 나도 모르던 나의 '적극성'이 거기에…… 심지어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오직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는 편벽한 나를 좋아해 주기까지……. 선생님은 이 세상에서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으며, 특히나 젊은 날에는 그게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어서 그 모습을 높이 샀으며 한편으론 안쓰럽다고 하셨다.
어느 은퇴한 선생님은 "요즘 2030의 주 정서는 분노라고 하던데요?"하고 말을 건네셨다. "그런 것 같아요……." 하고 어물쩍 대답하다가 별안간 설움을 쏟아놓고 싶어서 혼이 났다.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미래라곤 보이지 않는 침통한 서울 생활, 열정 페이와 고시원, 부당 해고와 전세 사기, 산책길에 만난 꽃과 나무와 바람과 노을만이 나를 순연하게 쓰다듬어주던, 그것의 본체는 사나운 분노였던가. 아니면 천연한 슬픔이던가. 나는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라지만 내 부모는 나보다 가난했기에 나는 누구도 탓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누구를 탓하지 않고,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않고, 오직 나 자신의 불행과 열렬하게 싸우면서 여기까지 살아왔기에, 아직까지 살아있기에, 이렇게 잠시나마 무람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라 믿고 싶다.
어떤 선생님은 이제 읽지 않는 책들을 나에게 '버리겠다'며 넉넉하게 물려주셨고, 어떤 선생님은 내 또래들을 모두 딸이라 불러주셨다. 또 현장 수업에서 다쳐서 부축을 해드렸던 선생님은, '이쁜 짝지를 얻은 것도 호사인데 너무 고맙다'며 나를 만난 게 선물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내가 보기엔 모두들 너무도 순수하고 화사한 60대 분들이셨다.
……그런데 잠시만. 나 지금 꽃도 나무도 아닌, 사람에 대해 쓰고 있는 건가. 말도 많아지는 걸 보니 나 좀 외로운가. 이렇게 조금 들떠서 쓸데없는 말이나 종알종알 쓰고 있는 나를, 나는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갑자기 당황스러워서 술을 한 모금 마신다. 아니, 거짓말이다. 사실 이 글은 처음부터 술을 마시면서 썼다. 비틀비틀, 모르겠어요, 살아가는 건 반반이에요. 한잔 더 마시고 싶지만 내일이 출근이라 참기로 해요.
궁금합니다. 당신은 잘 살고 계신지. 이렇게 비틀비틀 살아가는 거, 조금 부끄럽지만. 말 걸고 싶어요. 나 말고 이런 사람 또 있는지. 어쩌자고 이 새벽에 허공에다 말 붙이고 앉아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