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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500일

Homo Solitude

D-301

by 세라

2025.6.30. 月


장마가 끝났다는 뉴스를 보았다


장마가 끝났다고……?


장마는 끝나지 않았다

시작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염려하는 건 장마라는 단어의 사장이다. 장마는 그 옛날, 장마라는 기후를 겪었던 사람들만 기억하는 어떤 늡늡한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당신은 장마철의 기분을 아십니까?

(저 사기꾼 아닙니다……)


장마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오늘 물길을 철벅철벅 걸어다녔겠지

장마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확신에 찬 채 장화를 신었을 거야


장마철인데,

비가 철철 내렸으면 좋겠는데,

이런 구시대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종아리가 저릿하다

어디 한 군데 저릿한 이들이나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르지


(나는 장마의 유족이다)



2025.7.1. 火. D-301


July first


생일에 출근하는 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 내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견뎌내지 못하는 나의 가느다란 천성 때문이겠다. 그 때문인지 나는 아침부터 저녁 내내 쓸개 빠진 짓을 하고 다녔다. 모닝 커피를 사자마자 통렬하게 쏟는가 하면, 20년 전의 친구에게 20년 만에 실수로 전화를 걸고. 엘베에서 만난 타부서 사람에게 말실수를 하고, 윗사람에게 전해드리라고 접시에 담아준 케이크를 우당탕탕 흘렸다. 그러다가 어이없게도 팀 전체에 커피를 돌리고, 자기 생일이 뭐라도 된다는 양 커피를 사돌리는 나의 가벼움을 참을 수가 없고…… 아아, 나여, 뭐하니. 뭐하고 있니. 실은 얼른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엉망과 진창의 완성체인 나를 겨우 다독였다. '괜찮아, 내년 이맘땐 백수야.'(뭐가 괜찮다는겨?) 이윽고 퇴근……


나는 버스 기사에게 말했다.

*"내가 고독했던 곳으로 가주세요"

(*박지웅 詩, <택시> / '내가 행복했던 곳으로 가주세요')


사람들이 묻는다. 생일인데 아무도 안 만나니? 생일인데 저녁도 안 먹니? 사람들이 말하는 '보통의 삶'이란 무엇인지 나는 잊어버린 지 오래다. 나에겐 나의 보통이 있다. 나는 얼른 쉬고 싶은 마음으로 내 안락한 요람으로 돌아왔을 따름이다. 매일매일 다시 혼자가 되는 시간이 내 삶의 가장 큰 선물이라는 듯. 혼자가 아니었던 나머지 모든 시간에 대한 의식을 드디어 가방처럼 내려놓을 수 있다는 듯. 세상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하기에 대한 인내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듯.


당신이 나를 이해할 수 없다면 나를 신인류로 봐주는 것도 좋다. Homo Solitude. 나는 고독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나는 고독 속에서 자라왔기에 고독을 나의 엄마 품이라 여긴다. 나는 이보다 더 안락한 품을 모른다. 세상의 품은 내 가난했던 단칸방들보다 언제나, 좁았다. 아니, 세상 품이든 엄마 품이든 거의 비슷하다. 이에 비하면 고독의 품은 나를 살고 싶게 할 정도다. 고독은 매일 퇴근 버스의 목적지이자 확실한 신분을 증명하는 나의 집주소인 것이다.


나는 오늘 새 책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다. 사람들에게 책 선물을 잔뜩 받았기 때문이다.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너무 많아. 이 정도 기대감이라면 조금 더 살아봐도 좋겠어. 나에겐 읽고 싶은 미래가 있어. 그러니까, '미래' 말야!'


그때,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 우리네 모녀는 반 년에 한 번 연락할까 말까 한다. 우리의 '보통'이다. 나는 엄마의 고민, 엄마의 설움, 엄마의 가난을 듣는다. 엄마는 어디 취직해야 되겠니. 엄마는 손주나 볼 수 있겠니. 엄마는 60이 넘어서도 취직을 고민하게 될지 몰랐어. 엄마는 월세와 세금을 감당할 여력이 바닥 나고 있어. 엄마는 엄마 나이에도 이런 걱정을 해야 할지 몰랐어. 엄마는 그게 너무 서러워. 자꾸 서럽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계속 서러워.


네, 엄마. 그랬구나, 엄마. 다 그래요, 엄마. 잘 하고 있어요, 엄마. 그랬겠지, 엄마. 어쩔 수 없지, 엄마. 괜찮아요, 엄마. 쉬어요, 엄마.


(엄마, 나도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한 연명이에요. 엄마, 나는 매일매일 '미래가 있다'라고 일기를 써야만 해요. 엄마, 내게 가난을 그만 말해요. 가난이 뭔지 나는 몰라요. 우리는 가난하지 않은 적이 없었잖아요. 엄마, 나는 고독을 좋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고독이 없는 천국을 나는 가 본 적이 없는 걸요. 엄마, 저녁은 안 먹으려고요. 낮에 빵을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요. 엄마…… 나는 혹시 엄마의 엄마가 아닐까요?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주면 좋겠어요.)


엄마와의 통화가 끝났을 때,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놀랍게도 친구의 출산 소식. 친구는 엄마가 되었고, 친구의 아기는 나와 같은 날에 태어났다. 아가야, 환영해. 이렇게 덥고 습한 날에 세상에 도착했다는 기분, 나 알아. 나도 언젠가의 오늘, 여기에 왔거든. 친구의 첫 아가, 너무 작고, 힘겨워 보이는 아기……


생일을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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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오늘 엄마가 전화를 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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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믿기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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