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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500일

펜이 가는 대로 사는 사람들

D-300

by 세라

2025.7.2. 水


따지고 보면 내 일기는 온통 고독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내 입장에서 그건 이 글이 다름 아닌 일기이기 때문이다. 고독이 먼저였나, 쓰기가 먼저였나? 나는 원래 시를 쓰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에세이를 쓰게 되었고, 점차 삶의 풍랑을 견디지 못해 위독한 일기를 찢어갈기듯 써왔다. 그 후로는 상황이 좋아지고 나빠지고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살기 위해서' 일기를 쓰고 있다. 살기가 먼저였나, 쓰기가 먼저였나? 결국 조각글만 갈기갈기 끼적이고 있지만. 이런 나도 여전히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다시 에세이를, 시를, 쓸 수 있을까? 쓴다는 건 무엇이고, 쓰고 싶다는 건 또 무엇일까?


에세이와 일기의 차이는 뭘까? 먹고사니즘의 불안이 곰팡이처럼 도진 날에 에세이 공모전을 찾아보다가 생각했다. 예를 들어 흔한 글감 중 하나. '순간의 소중함을 깨달았던 날'. 그러니까 에세이는 일상 속에서 깨달음이 있었던 한 순간을, '어떤 이야기의 정점을' 고백해야 하고, 문장의 핵심이 글 전체의 진정성과 완성도를 결정할 수도 있다. 나는 소설과 에세이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질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갑자기 일기의 입장에서는 소설도 에세이도 잔의 예술적인 칵테일처럼 보였다. 어떤 주제를 예단하고 결정하며, 주어진 틀에 맞추어서 '작품'이라는 걸 만들어낼 수 있다는 발상. 그것이 문학을 호령하고 있다. '펜이 가는 대로' 쓰면 에세이도 뭣도 될 수 없다. 내 글에 맞는 공모전을 나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공모전에 끼워 맞춰 글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보통 사람에게, 그것을 한장 한장의 육필로 남겨두는 사람에게, 기승전결이라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인과성은 우연일 뿐이다. 열심히 살아도 불행한 것이 우리네 평균. 현대 사회에서 불행하지 않은 자, 있는가? 열심히 사는 자에게 행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자의 삶이 열심熱心으로 이루어진 것 또한 아니다. 실은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공식이 없다. 나는 그저 천천히 쓴다. 기승전결이 지켜진 삶이란 너무도 우연하고, 그러므로 완벽한 서사는 스타성을 지닌다. 그런데 나머지는? 어떤 공모전에 끼워 맞춰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삶들은? 진정한 기승전결이란 '기승전결 없음' 아닌가?


내가 쓰는 글은 시간이 겨우 서사를 봉합한다. 오직 시간만이 이야기를 접착할 수 있다. 이 산만한 생각들은 시간의 흐름이 아니고서는 애초에 하나로 묶일 수 없는 문장들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어디에도 접착되지 않고 실시간으로 흘러가버린다. 너무 단순한 변명이지만, 삶이 정말로 그렇기 때문이다. 어쩌다 내가 이런 글을 쓰게 되어버린 걸까? 이제는 알 수가 없다. 이런 나도 가끔은 스타성 있는 글을 추구하고, 그것으로 문단에 닿아보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 중요하며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도 무언가를 꿈꾸고 있다는 세속적인 의무감과 약간은 위선적인 즐거움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정말로' 진행 중인 나의 생활 때문이다.


나는 이제 일기를 쓰는 것만으로도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고, 죄책감 없이 말하고 싶다. 조금 다른 종류의 개연성. 시간,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그것으로 조각난 메모들을 기우며. 그것이 내 한계라면 한계다. 나의 글쓰기를 위해서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내 한계에 저항할 용기가 없어서 일기를 쓴다. (저항할 방법은 오직 하나다.) 일기 쓰기가 여사여사한 내 삶을 지탱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문학이 될 수 없는가?


될 수 없다, 는 것 정도는 나도 알 만큼 읽고 썼다. 삶은 삶이고 문학은 문학. 그러나 아무리 메모만 끼적이는 사람이라도 소설가가, 에세이스트가, 자신의 글에 품고 있는 열정보다 결코 덜하지는 않다. 나도 매일매일 내 삶을, 하나뿐인 생을 걸고서 일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하필 하고 많은 것 중에 읽기와 쓰기에 매혹되어서 이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혹시 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건 매혹이 아닐까? 어쨌든 편협하게나마 쓰는 것이 쓰지 않은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어쩌면 몽상에 빠진 채 한 권의 책도 써보지 못하고 끝날지도 모른다. 책을 쓰겠다는 의지와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다른 것 같다. 일기 쓰기는 예술이 아니라 생활이고, 이 세상에는 아직 자기 자신의 생활을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허다하다. 내가 아직 일기 쓰기에 대한 죄책감을 해결하지 못한 것처럼. 오늘도 쓰면서 묻다가, 쓰면서 어르다가, 쓰면서 꿈꾸다가, 내가 여전히 꿈꿀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하며 하루가 끝난다. 이런 식으로 글쓰기의 꿈이 하루하루 끝난다. (아아, 끝이라니.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망상에 빠져 있었나?) 끝나는가운데 하나는 나 자신이며,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서사도 없는 불행을 견디며, 읽고, 살며, 꿈꾸는 걸까? 자기 자신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건 무엇일까? 일기 쓰기에 의문 부호를 그만 사용할 수는 없을까? 나는 내가 매혹된 것들에 성실하게 복무하며 여사여사하게 읽고 쓴다. 여기까지 함께한 이상한 당신, 나와 같다면, 우리야말로 펜이 가는 대로 사는 사람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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