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목소리들0

by 김목청

0. 가는 귀가 열려야 오는 말도 곱다

나는 성우를 좋아하지만 이상하게도 선호하는 목소리에 대해서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아마 1.성우 같은 것…… 이야기해 봤자 다들 잘 모르다 보니 호응이 없을 것 같고 2.취향이라고 할 만큼 기준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2의 이유는 아마도 성우 풀이 너무 좁아서 떡밥이랄 게 없기 때문이다. 밥그릇이 너무 작아서 이것저것 따지고 이 성우가 별로네 저 성우가 더 잘 어울리네 하다가는 있는 것도 뺏기게 생겼으니.(원어로 들어봤자 1도 이해 못 하고 자막 읽기에 급급하면서 더빙 집중 안 된다고 하는 놈들과 순진하게 성우 밥그릇 뺏어 더빙하는 연예인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피곤하다 이거예요)


거기에 내 우유부단한 성격까지 더해져, 결국 난 적폐 해석 같은 것도 마다하지 않고 주는 대로 다 받아먹기 급급한, 그런 취향 없음의 인간이 되었다. 흡사 딸이 흘린 과자 조가리를 주워 먹다 딸 방까지 들어오게 된 아부지처럼…….


최근 친구로부터 비슷한 톤/발성을 가진 성우들을 세심하게 구분하기 어렵다고, 바로 알아듣는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렇다 할 특기라고는 없는 내게도 유독 어릴 때부터 목소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구분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렇지만 사실 이건 능력이라고 하기가 좀 뭐한 게 그렇게 해서 구분한 성우들이 대부분 정미숙 강수진 배정미 류의 한 번에 귀에 꽂히는 성우들이라……. 나만 알아들은 건 아니고 아마 90년 대생들의 대부분이 알아들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2010년대에 들어서는 좀 더 자연스러운(a.k.a. 성우 같지 않은 ㅋㅋㅋ) 목소리를 선호하다 보니 2000년대 이전 성우들처럼 고막에 팍팍 꽂히는 그런 강렬함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난 딱히 이게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각자의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러우면 아무래도 흔히 말하는 생활 연기류가 좀 더 잘 붙는 것 같고 호불호도 크게 갈리지 않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피로도가 덜 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래도 이미지 소모가 덜하고 연기의 스펙트럼이 좀 더 넓은 느낌. 미스 캐스팅이 될 우려도 좀 덜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도 해 봄. 색깔이 강하면 아무래도 강렬한 대신 다른 연기도 같아 보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성우의 연기란 그렇게 단순하게 소리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고, 타고난 소리와 연기력은 별개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자연스러움 타령하는 사람들은 잘 그린 그림을 보고 "와 진짜 같아요!"라고 하고, 멋진 경치를 보고는 "와 그림 같아요!"라고 감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목소리 좋은 일반인한테 "와! 성우 같아요!"하고 정작 성우한테 "와! 일상에 있는 사람 같아요!" 하기ㅋㅋ) 게다가 듣는이로 하여금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게끔 하는, 청자로서의 쾌감을 알게 해주는 성우들에 대한 갈증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니 특별히 뭐가 좋다 싫다 하기엔 좀 힘든 면면이 있다.


그래도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분야이니(진짜 더빙 마니아들을 보다 보면 나 자신의 어중간함에 신물이 나지만서도…….) 한 번쯤 나도 모르는 내 취향을 정리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순전히 개인의 취향일 뿐이므로 전문적이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내용이 되리라 예상하지만, 그래도 많관부. 그리고 이 글을 통해 성우에 눈 뜨게 되길 바라며(그렇지만 너무 인기를 끌어버리면 홍대병 도지니까 적당히만ㅋ) 한 번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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