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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영웅과 악당

누가 우리를 분노케 하는가?

by 김주미


세에 영웅이 나타난다고 했던가?

최근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에서 유독 영웅형 인물들이 눈에 띤다. 크리스토보글러는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에서 ‘영웅’이란 단어의 어원이 헬라어에서 왔으며 ‘보호하다’, ‘봉사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자기희생적 개념이 가진 단어라고 서술했다.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영웅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장르는 역시, 사극이다. 현재 방송 중인 <역적>과 <화랑>에서는 다른 듯 닮은 두 영웅의 성장 과정이 그려진다.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의 주인공 홍길동(윤균상)은 조선 시대 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백년 만에 나타난 역사(力士)라는 자신의 능력을 숨긴 채 밀무역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가족을 잃는 커다란 슬픔과 분노를 경험하고 백성의 편에 서는 의적의 삶을 살아간다.

<화랑>은 천 오백년 전 신라 시대, 화랑들의 이야기이다. 중에서도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은 무명(박서준)이다. 무명은 비밀스런 사연을 간직한 채 핏덩이 때부터 우륵이라는 인물에 의해 길러진다. 천민의 신분인 줄 알고 살아가다가 친구를 대신해 화랑이 되고,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백성들을 위해 싸우게 된다.

자신의 능력이나 출생의 비밀을 숨기고 살아가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백성의 억울함을 대신해 싸운다는 의미에서 ‘홍길동’과 ‘무명’이 영웅이 되는 여정은 닮아있다.


그럼, 현대극은 어떤가?

<낭만닥터>라는 ‘의사-영웅’이 지나간 자리에 어떤 영웅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

이번엔 재벌의 분식회계 등 사회 부조리를 바로 잡는 수학 천채 영웅, <김과장>이다.

김성룡(남궁민)은 이 사회에 부정부패가 없는 곳은 없다는 믿음 아래 그 비리들을 이용해 10억을 벌어 한국을 뜨겠다는 야심을 가진 인물이다. 한탕을 위해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그 곳에서 벌어지는 억울한 일들을 외면할 수 없어 결국, 약자의 편에 서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영웅의 길을 가게 된다.


이처럼 세 드라마의 영웅들은 공통점이 있다.

처음에는 자신의 재능이나 출신을 숨기며 평범하거나 이기적인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은 곧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부당함을 당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자원'을 활용하여 자신 앞에 닥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며 사회의 영웅으로 성장해 나간다.

이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뛰어난 힘이나 능력도 없고, 왕이나 재벌가의 핏줄일리도 없는 범인인 우리들은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영웅의 이야기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할 만큼 보편적이고 꾸준히 사랑받소재이다. 다만, 영웅의 유형이나 영웅과 갈등을 일으키는 악당의 존재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조금씩 다를 뿐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악당, 즉 대립자이다. 대립자는 작품에서 주인공에 대립하는 인물로 주인공의 적대자, 경쟁자되는 인물이다.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는 폭력으로 신하와 백성들을 위협했던 ‘연산군’이, <화랑>에서는 나라의 안위보다는 사리사욕을 탐했던 신국의 대신들이, <김과장>에서는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재벌과 이를 수호하는 권력 기관들이

영웅을 분노케 하거나 앞길을 막아 대립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영웅 서사를 표방한 콘텐츠에서 영웅의 적대자이자 대립자가 누구로 설정되는지를 살펴보면, 현실 속 대중이 노를 느끼는 대상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메디컬 드라마의 경우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IMF 이후 경쟁사회를 반영하듯, 조직 내 성공에만 눈먼 이기적인 의사들을, 최근에는 신자유주의 흐름에서 이익만을 좇는 병원 경영진과 무능한 정부 등을 대립자로 묘사하였다.


그런데 현재 방송되는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악당이 바로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드라마에서 재현한 악당의 모습을 통해 우리를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 권력을 가진 자들은 왜 대중을 괴롭히는 존재로만 재현되는 것일까?’,

‘왜 우리 사회엔 존경받는 관료나 정치인,

투명하고 귀감이 되는 기업인이 없는 것인가?’ 등등.

드라마는 허구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사극에서도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 ‘허구’임을 잊지 말고 드라마를 보라는 당부의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먼저 보낸다. 그런데 허구인 줄 알면서도 드라마에 빠지고, 저런 영웅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영웅의 행보를 응원하는 것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을 그리는 ‘개연성’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는 영웅이 필요하다. 여전히 불합리하고 답답한 현실에서 속 시원함을 느끼게 하고 카타르시스를 전해 줄 허구의 인물을 통해 우리는 마음의 위로가 얻는다.


이런 영웅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악당도 필요하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직업이 악당으로 그려지는 것을 환영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은 늘 부정부패를 일삼는 존재로 자신들의 모습을 그리는 현재의 드라마들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중들이 느끼는 ‘분노’라는 감정의 실체를 드라마를 통해 읽어내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언젠가는, 정치인이나 기업인 같은 기득권 세력을 악당으로 설정한 드라마를 보며 시청자들이 먼저 나서서 개연성이 없다고,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말하는 판타지 같은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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