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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May 31. 2019

호떡 아줌마, 어디 가세요?

엄마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엄마와 재래시장 나들이에 나섰다. 길을 따라 쭉 늘어선 가게들을 둘러보며 옷이며, 신발, 갖가지 반찬과 제철 채소들까지 구경하다 보니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엄마, 출출한데 뭐 좀 먹을까?


“뭐 먹고 싶노? 말만 해라, 오늘은 엄마가 다 사줄게.”


“나? 나야 여기 오면 먹고 싶은 거 딱 하나지.”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입꼬리를 사악 올리며 엄마에게 알아맞혀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엄마도 단박에 알겠다는 눈빛을 보내며 나의 팔짱을 끼고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커다란 쟁반 위에 채 썬 무를 깔고 그 위에 새빨간 소스를 두른 떡볶이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에 포옥 안긴 어묵, 그리고 네모난 철판 위에 기름을 가득 둘러 튀기듯 구워지는 호떡이 눈과 코, 입안의 침샘까지 사로잡는 곳. 우리 모녀가 선택한 곳은 바로, 분식집이었다.


분식집에 도착하자 손이 바빠졌다. 일단 종이컵에 어묵 국물부터 따르고 주인아주머니에게 떡볶이 한 접시를 받아 들었다. 두툼한 쌀 떡을 포크로 집어 입으로 가져가려던 순간이었다. 먼저 자리를 잡고 서서 호떡을 먹던 여자 손님이 우리 모녀를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을 느낀 내가 멈칫하며 쳐다보자 그녀는 내가 아닌 엄마를 향해 말을 건넸다.


“저기, 혹시...... 맞죠? 서원시장에서 장사하시던....... 호떡 아줌마!”


마지막 구절을 어찌나 그게 소리쳤던지 다른 손님의 떡볶이를 담던 아주머니도, 호떡을 뒤집던 아저씨도, 옆의 다른 손님들도 일제히 엄마 쪽을 쳐다보았다. 호떡 아줌마가 다른 호떡집에 왜 왔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는 듯이.



엄마는 1954년생으로, 올해 예순여섯이다.(두 달 후 생일이 지나면 드디어 노령 연금을 탈 수 있다며 기뻐하는 중이다.) 엄마가  분식 장사를 한 세월이 33년이니 인생의 딱 절반을 ‘호떡 아줌마’로 살았던 셈이다. 스물아홉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먼저 보내고, 전업주부였던 엄마가 남매를 키우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 분식 장사였다. 평소 음식 솜씨가 좋아 떡볶이와 어묵은 그 맛을 내겠는데, 호떡은 도저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한 아이는 잡고, 한 아이는 둘러업고 호떡 만드는 기술을 배우러 다녔다고 한다.


처음 본 사람에게 자신이 갈고닦은 비법을 순순히 알려주는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근처에서 호떡집을 열까봐 화를 내며 쫓아내는 사람도 여럿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맛이 좋다는 호떡집을 찾아 어깨너머로 몰래 훔쳐보거나 사정사정해서 기술을 조금씩 배웠고, 새벽까지 혼자서 여러 가지 재료를 섞고 반죽을 숙성시키며 나름의 노하우까지 터득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엄마의 호떡은 동네에서 꽤 이름이 났고 멀리 떨어진 동네에서도 차를 타고 사 먹으러 오는 손님들까지 생겼다.


호떡 굽는 새댁이었던 엄마는 호떡 아줌마를 거쳐, 호떡 할머니가 될 때까지 장사를 계속하셨다. 큰 수술을 앞두고 장사를 그만두어야 했을 때, 호떡을 굽던 판과 손때 묻은 집게, 누루개를 한참 어루만지며 엄마는 말했다.


“그래도 얘들 덕분에 우리 아들, 딸 공부도 시키고 시집, 장가도 보내고, 세 식구 평생 밥 안 굶고 살았는데. 고맙데이.”


엄마는 어려운 수술을 무사히 이겨냈지만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더 이상 장사를 하지 않는다. 호떡판 앞에서만 메여 산 세월을 보상받듯, 요즘은 오전에는 노래 교실, 오후에는 스포츠 댄스 학원을 다니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종종걸음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엄마를 만나면 동네 사람들이 묻곤 한다.


“호떡 아줌마, 어디 가요?”


그럼 엄마는 걸음을 멈추고 환하게 웃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대답한다.


“뭐라카노~, 내 이제 호떡 아줌마 아니다. 호떡 아줌마 대신 순옥 씨~ 이래 불러라. 그럼, 나 바빠서 먼저 간대이.”


호떡 아줌마의 이름표를 벗어던지고, 순옥 씨로 산지 삼 년째. 지금도 심심치 않게 엄마의 호떡을 그리워하는 예전 손님들을 만난다.


“아줌마 호떡, 진짜 맛있었는데... 다시 장사하면 안 돼요?”


그럼 엄마는 엄마의 전매특허인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엄마가 웃으면 연기자 강부자 님과 판박이다.)


“우짜겠노! 니는 어릴 때 우리 집 호떡 하고 오뎅 국물 많이 먹어서 이리 훌쩍 컸는데, 맞제? 아줌마도 다시 하고 싶은데, 자식들이 못하게 한다. 근데 다른 집 호떡도 맛있다이가. 다른 데 꺼라도 많이 사 먹어라. 호떡집 불나게. 호호호!”


사실 나도 엄마의 호떡과 떡볶이가 많이 그립다. 바삭하면서도 부드럽고, 고소함과 달콤함이 조화를 이루던 호떡,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던 쫄깃한 식감의 떡볶이를 아직 다른 분식집에서는 찾지 못했다. 그래도 호떡 아줌마가 아닌 순옥 씨로 이제 막 삶의 여유를 즐기기 시작한 엄마를 위해 맛에 향한 그리움은 묻어두기로 했다.  대신 오늘도 우리 모녀는 시장을 돌며 분식집 투어에 나선다. 미슐랭 가이드 못지않은 날카로운 시식평을 나누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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