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 좋아요!'의 소통법
나는 미디어 비평가다!
영화와 TV 드라마를 분석하는 논문과 책을 썼고, 대학에서는 <영상예술의 이해>, <대중문화의 이해>와 같은 수업을 맡았다. 대중들에게 <영화 인문학>, <드라마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오늘도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을 보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나에게 ‘미디어’하면 떠오르는 대상은 당연히 영화와 텔레비전이다. 초등학생, 중학생 때는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에 빠져 일명 '오빠 부대'가 되어 연예인을 따라다녔고,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는 ‘할리우드 키드'라 불릴 만큼 새로 개봉하는 영화를 기다리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다.
그런데 2020년 나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미디어 역시 영화와 텔레비전일까?
돌이켜보니 요즘 영화와 텔레비전을 본 횟수가 손에 꼽힐 정도로 줄어들었다. 외출 중 시간의 틈이 생기면 곧바로 켜는 것은 스마트폰 속 유튜브다. 집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청소나 요리를 할 때는 TV로 인터넷을 연결해 유튜브 속 영상들을 본다.
이런 변화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1월 30일에 발표한 ‘2019 방송 매체 이용행태 조사’에서 그 결과가 잘 드러난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OTT를 시청한다는 사람이 95,5%를 넘었고, 주 5일 이상 시청한다는 사람도 49.4%로 절반에 가까웠다. 여기서 'OTT(Over The Top)'란 인터넷으로 각종 영상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필수매체, 다시 말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미디어로 인식한다는 대답이 10대는 87%, 나와 같은 40대도 72%에 달했다.
실제 40대인 나의 하루는 유튜브로 시작해 유튜브로 끝난다.
아침에 일어나면 요가나 필라테스 관련 영상 중 그날 특별히 불편한 곳을 풀어주는 스트레칭 동작을 소개한 콘텐츠를 선택해 따라 한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는 유튜브에서 피아노 연주곡이나 첼로 연주곡을 모아 좋은 영상을 틀어놓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보고 싶은 영화나 읽고 싶은 책을 요약본들을 찾아 시청한다. 가끔 그냥 웃고 싶은 날에는 TV에서는 종영했지만 유튜브의 바다에서는 여전히 유영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짤들을 찾아본다.
하루 일과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여유로운 저녁 시간이 되면, 지방에 살다 보니 혹은 시간이 없어서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었던 명사의 강연 영상을 찾아 듣는다.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면 좋아하는 여행 유튜버들과 함께 동행하는 마음으로 가고 싶은 여행지를 체험한다.
미디어로서 유튜브가 가진 장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언제, 어디서든 내가 시청하고 싶다면 내 손 안에서 그 광활한 세계로 바로 입장 가능하다.
나에겐 유튜브가 가져다준 기쁨이 또 하나 있다. 유튜브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나는 조카들과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무자녀 부부인 나와 남편에게는 세 명의 조카가 있다. 조카들과 가까이 살고 있고, 만나는 횟수도 잦은 편이다. 나의 조카 사랑은 주위 사람들이 혀를 내둘를 정도여서 이미 유별난 고모이자 숙모로 소문이 자자하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 부모의 역할은 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 든든한 어른이자 격이 없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되기를 늘 꿈꾼다. 이런 바람을 이루기 위해 나는 유튜브로 소통하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
아홉 살 조카가 나와 만나는 날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있다.
“고모 같이 봐요, 유튜브!”
그럼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거침없이 조카를 향해 달려간다. 다만 이때는 나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고쳐먹는다. 일상생활에서 조카에게 나는 어른으로서 이런저런 가르침이나 사랑이 담긴 조언을 아끼지 않는 태도를 취하지만, 유튜브를 볼 때는 오히려 조카가 유튜브 전문가, 혹은 유튜브 비평가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가간다.
아기 때부터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손가락 하나로 어른들의 스마트폰을 켜서 노는 세대이고 지금은 놀이뿐 아니라 공부도 영상으로 해야 더 편한 아이들이니 유튜브에 있어서는 나보다 한 수 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유튜브 속 인기 유튜버의 영상이나 키즈 콘텐츠를 볼 때 나는 배운다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질문을 하고 아이의 설명에 긍정적인 리액션을 아끼지 않는다. 예를 들면 유튜브를 볼 때 내가 하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마인 크래프트는 어떻게 하는 게임이야? 고모는 한 번도 못해봤는데 좀 가르쳐줘."
"이 게임하는 유튜버들 중에 네가 제일 좋아하는 유튜버는 누구야?"
"와, 네 말대로 유튜브 보니까 고모가 직접 게임하는 것처럼 생동감 있네. 이거 말고 또 고모한테 소개해주고 싶은 영상 없어?"
이렇게 대화의 주도권을 아이에게 주고 질문을 이어가다 보면, 아이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이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리고 "대단하네", "진짜?", "재미있겠다"와 같은 반응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이 유튜브를 보는 것이 어른에게 꾸중을 듣거나 부끄러운 행위라고 의식하는 순간 유튜브를 더 이상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다 은밀히 숨어서 시청할 방법들을 모색하게 된다. 부모나 가까운 어른이 유튜브 시청을 '놀이'로 생각하고 혼자 숨어서 보는 것보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보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경험을 선물한다면 아이의 콘텐츠 시청 태도도 조금씩 변하지 않을까.
나는 믿는다. 아이와 유튜브를 함께 보는 시간은 소중한 공감대를 쌓을 수 있고, 같이 볼 영상을 고르며 아이들도 자신만의 기준으로 유해한 내용은 거르게 될 테니 콘텐츠를 해석하고 가치를 가늠하는 비평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길러질 것이다.
물론 아이와 함께 유튜브를 볼 때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놀이나 게임에도 룰이 있는 것처럼.
"오늘은 수민이가 소개해주고 싶은 영상 3개만 골라서 같이 볼까?"라고 시간이나 횟수를 제한하고 시작하면 좋다.
책이나 잡지, 영화나 텔레비전도 '백해무익(百害無益)'한 미디어로 취급받으며 당시 어린이들에게 금기시되던 과거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미디어의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미디어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그 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우리를 위협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고, 일상에 유익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대세인 유튜브 시청을 거스르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자녀들과 같이 유튜브를 보며 대화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나 역시 조카들과의 연결 고리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유튜브 소통법을 더 고민해볼 참이다. ‘도대체 유튜브가 뭐기에 이렇게 난리야?'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앞으로 ‘구독', '좋아요'의 세계로 즐겁게 항해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