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
한때 나는 방송작가였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 방송국에서 라디오 구성작가로 일을 시작했고 이후 30대 초반까지 쉼 없이 방송을 제작했다. 한 프로그램을 기획한 후 매주 구성을 달리하고, 대본 집필을 하는 바쁜 일상을 보냈다. 그러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하며 저널리즘 이론에 목마름을 느꼈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서 드라마와 인문학의 매력에 빠져 샛길로 빠지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어느 방송국 편성표의 작은 한 칸을 내가 쓴 프로그램으로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미디어와 스토리텔링을 연구하고 대중에게 그 결과를 전달하는 비평가이자 강연가이다. 한때 콘텐츠 창작자였던 내가 연구자로서 자질을 발휘하게 된 것은 2013년부터다. 한창 박사 논문을 쓰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그때, 영상물등급위원회라는 낯선 이름의 기관이 부산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영화와 비디오물, 공연물과 광고·선전물 등을 사전 심의하여 등급분류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영상 작품들을 먼저 만날 수 있다는 점, 영상의 내용을 분석해 시청 가능한 연령에 따라 등급을 부여하고 궁극에는 이용자들에게 도움이 될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 이끌려 위원 공모에 지원했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까지, 7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우리나라에서 영상 콘텐츠를 가장 많이 보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상륙한 2016년 이후 영상물등급위원회에는 등급분류를 신청하는 비디오물, 그중에서도 온라인 영상 콘텐츠의 물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한 해 평균 2000편의 영상물이 늘었고 증가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2020년 영상물 등급분류 연감』, 영상물등급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물량의 홍수 속에서 나는 온라인 영상물을 전담하는 위원이 되었고, 그렇게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플랫폼의 콘텐츠들과 만났다.
OTT(Over The Top) 서비스란, 기존의 통신 및 방송 사업자와 더불어 제3사업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영화나 드라마 등의 각종 영상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일컫는 말로, 인터넷 기반의 동영상 서비스 모두를 포함하는 의미로 쓰인다. 대표적으로 넷플릭스, 유튜브, 왓챠, 웨이브 등이 있다.
온라인 영상물의 등급분류를 담당한 나의 주요 일과는 이랬다. 하루 평균 3~400분의 작품을 시청한 후 콘텐츠 내용 중 청소년에게 유해를 끼칠만한 표현들이 없는지 가려냈다. 영상을 만든 이와 보는 이가 모두 납득할 만한 등급을 부여해야 하기에 줄거리 파악부터 창작자의 의도, 시간과 공간적 배경 등도 살피며 콘텐츠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반복해 영상을 분석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넷플릭스 콘텐츠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점이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방송작가 시절 배웠거나 익혀서 알고 있던 스토리텔링 전략들과는 작지만 의미 있는 차이가 분명 있었다. 방송을 만들던 과거 경험까지 보태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온라인 영상 콘텐츠의 스토리텔링 특징들을 하나씩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한 끗 차이’가 많은 사람들을 지금 이 시각에도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로 이끄는 경쟁력이란 확신이 들었다.
한국에서 방영하는 넷플릭스 콘텐츠들은 거의 다 봤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넷플릭스 콘텐츠는 뭐가 달라요?”
일주일이라는 사이클, 60분의 단위로 주로 방송을 만드는 작가들 중에도 온라인 영상 콘텐츠들을 단순히 ‘숏폼’이나 ‘시리즈’ 같은 단어로만 이해하여 방송되는 주기나 방영 시간이 다를 뿐 별 차이가 있냐며 되묻는 사람도 소수이지만, 간혹 있다.
방송이나 영화계 종사자가 아니라도, 영화관과 TV의 큰 화면으로 영상을 시청하는 것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은 작은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에 빠져 사는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지기도 한다.
이들의 질문을 받으며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서비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이 그저 시간과 공간감의 차이만이 아니라고, 그러니 이 작품들을 주목해 달라고 권유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물론 처음에는 내가 과연 답을 해줄 자격이 있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과거에는 10년 이상 매주 TV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며, 현재는 새로운 콘텐츠를 남부럽지 않게 많이 시청하고 분석하고 있으니 창작자이자 연구자, 그리고 시청자를 모두 경험한 내가 답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이 매거진을 통해, OTT라는 플랫폼에서 만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보고 읽은 후 발견한 스토리텔링의 특징들을 갈무리할 생각이다. 보다 넓은 세계 아니,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없는 온라인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은 예비 스토리텔러들, 아직은 방송과 영화라는 미디어의 틀에 갇혀 작품을 만들고 있는 기존 작가들에게 편하게 나의 넷플릭스 시청 경험담을 들려준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써내려 가려한다.
굳이 창작자가 아니라도 좋다. 평소 내가 즐기는 콘텐츠 혹은 앞으로 경험하고 싶은 콘텐츠에는 어떤 차별점이 있길래 이토록 우리를 사로잡는 것인지 호기심이 드는 독자들도 함께한다면 좋겠다. 자, 그럼 지금부터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속 콘텐츠들은 도대체 무엇이 다른지 미스터리 드라마의 비밀을 풀어가듯 차근차근 그 매력 속으로 걸어가 보자.
(*커버 이미지 출처 : ⓒ PD저널 (http://www.pd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