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속 의사들
지난밤 TV에서는 두 명의 의사가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이자 메디컬 에세이스트 남궁인씨.
그는 <비정상회담>에서 의사로서 가지는 고민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의료계에 남아있는 남녀차별과 의료사고 등 한국 의료현실의 문제들을 각 국의 의료현실과 친절하게 비교해 주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낭만 닥터 김사부>.
지방의 허름한 병원에 ‘김사부(한석규)’로 불리는 괴짜 의사가 있다. 지저분한 차림새, 툭하면 욕을 뱉어내는 거친 말투로 오늘도 그는 카지노를 어슬렁거리며 환자들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이런 그에겐 반전 매력이 있다.
그 누구보다 빠른 진단 실력과 경이로운 수술솜씨를 가진 천재 의사!
일반외과와 흉부외과, 신경외과까지 트리플 보드를 달성한 국내 최고의 실력자이다. 그런 그가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병원의 이익도 의사의 명예도 아니다. 오로지 내 앞에 있는 환자는 반드시 살려낸다는 의지만 있을 뿐이다.
현실 속 의사와 드라마 속 의사.
사실과 허구라는 간극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의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 ‘낭만’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낭만(浪漫)의 사전적 정의는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이다. 누구보다 과학적이며 이성적이어야 할 의사들이 오히려 자신은 감성적이라고 말하고, 과장되게 웃거나 불같이 화내며 감정 표현을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이 토로하는 감성과 감정은 환자들이 병원에서 느끼는 심리이자 태도와 다르지 않다. 환자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고, 환자의 빈곤을 같이 애달퍼하며, 질병과 병원시스템 앞에서 무기력한 환자를 위해 기꺼이 나서서 대신 분노해주는 의사! 그래서 ‘낭만’의 또 다른 말은 ‘공감’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 우리는 왜 낭만 닥터들에게 끌리는가?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의 사회적 권위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쌓아 사회에 봉사하고 희생한다는 전제 아래 그들은 오랫동안 사회에서 자율성과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의학지식은 더 이상 의사들만의 것이 아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대로 의술을 펼치기에 의사들 간, 병원 간 경쟁 또한 치열해졌다. 게다가 정부와 자본의 간섭이 의사들의 세계를 점점 옥죄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사와 환자는 의료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의 모습일 때가 더 많고 의사들은 환자의 심리와 태도에 공감해 줄 시간과 마음의 여력이 없게 되었다. 현실에서 만나는 의사들 중 환자와 연대감을 가지며 같이 아파하고 함께 싸워줄 의사를 찾기 어렵기에 대중들은 TV 속에서 만나는 ‘낭만 닥터’가 더 반갑다.
그래서일까? <골든타임> 이후 메디컬 드라마에서 주인공 의사들은 하나같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환자를 대신해 싸우는 투사이자 영웅의 모습이다. 메디컬 드라마들은 의료민영화의 흐름 속에서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의료현실을 그려내고, 의사들은 매회 미션을 수행하듯 그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결국 TV가 주목하고 그려내는 의사의 모습과 의료계의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현실의 대중들이 욕망하는 그것과 맞닿을 수 있게 된다.
‘그분’이 드라마를 즐겨본다고 한다. 드라마 여주인공 이름으로 병원을 예약하고 여주인공 패션을 따라 해 해외순방을 나설 만큼. 일부에서는 “정치할 시간에 드라마나 보다니!”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말이다. 드라마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감히 말하건대, 드라마는 죄가 없다. 드라마 속에 숨어 있는 대중의 목소리와 바람을 읽지 못하는 위정자들의 무지함이 죄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