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다.
오후 1시, 직업인으로서 내가 하루를 여는 시간이다. 가벼운 메뉴로 점심식사를 한 후, 커피 한잔을 내려 주방에서 거실로 진입한다. 내 집 거실에는 책상 두 개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놓여있다. 벽을 향해 놓인 책상은 주로 미디어 연구자이자 강연가로서 업무를 보는 공간이다. 창을 향해 놓인 또 하나의 책상은 자유로운 형식의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할 때 쓴다. 당장 코앞에 닥친 마감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날 먼저 앉을 책상이 정해진다.
어느 책상에 앉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이다. 특정한 업무에 관해 그때그때 계약을 맺고 일하는 프리랜서인 나는, 최근 대부분의 제안을 이메일이나 전화로 받는다. 요즘 말로 ‘이랜서(e-Lancer)’의 전형이랄까. 이랜서는 주로 인맥을 통해 일을 얻던 과거 프리랜서들과 달리, 일을 얻는 것부터 비용 결제에 이르는 모든 단계를 인터넷으로 해결하는 프리랜서를 일컫는 용어라고 한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체감상 들어오는 일의 2/3는 이메일을 통한 연락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이메일은 나에게 ‘작업의뢰서 목록함’인 셈이다. 들어오는 일들은 내 기준에서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강연 의뢰와 원고 청탁 그리고 기타 업무다. 기타로 분류하는 일들은 주로 콘텐츠 심사나 심의, 회의 참여 등 다양하지만 주로 일회성 행사가 많다.
외출한 날에는 카페 책상이 나만의 작업대가 된다. 노트북이나 패드를 펼쳐 메일 내용을 확인한 후, 관계자와 화상 회의를 하거나 급히 진행해야 할 서류 업무들을 지체 없이 처리하곤 한다. 사람들이 나에게 맡기는 일은 제각각이지만, 나와 일한 후 그들이 건네는 평가 중 공통된 의견이 있다. 매과정 빠르고 정확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 일하기 수월했다는 점이다.
일상에서는 음료나 식사 메뉴를 고를 때조차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지만, 일할 때만큼은 명료한 판단 기준이 있다. 새 프로젝트를 맡을지, 말지를 결정할 때 스스로 던지는 질문은 세 가지로 정해두었다. 첫째, 내가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인가이다. 제안을 듣자마자 바로 의욕이 샘솟는 프로젝트라면 따로 공부할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선택한다. 늘 하던 익숙한 일과 처음 접하는 낯선 일 중 골라야 한다면 후자를 택하는 것도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직은 앞서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턱으로 새 프로젝트를 환영하진 않는다. 일을 고르는 나만의 기준 두 번째가 내가 과연 해낼 수 있는 일인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탐나는 작업이라도 지금 그 일을 해낼 깜냥이 나에게 없다면 포기해야 한다. 그것이 길게 봤을 때 나의 경력에도, 일을 맡기는 쪽과의 관계에도 결국 이득이 된다.
마지막으로 놓쳐서는 안 될 일의 선택 기준이 있다. 바로, 합당한 노동 가치를 보장하는가이다. 강연을 예로 든다면, 실제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시간은 두 시간 내외이지만 강의 원고를 쓰고, 스피치를 준비하고, 강연장을 오가는 시간까지를 모두 고려하여 보수를 받아야 한다. 물론 노동 가치가 꼭 돈으로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가끔 무료 또는 교통비 정도만 받고 강연이나 발표를 할 때도 있는데, 이는 나에게 돈 이상의 보람을 노동 가치로 안겨 줄 때이다. 세 개의 물음에 모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주어진다면 프리랜서로서 두 팔 벌려 환영할 노동의 조건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내가 프리랜서 노동자로서 이렇게 일상의 여유를 누린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학 졸업반이던 스물세 살 때 방송국에서 라디오 작가로 처음 일을 시작했다. 그 후 방송국을 옮기고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으로 매체를 바꾸기도 했지만 프리랜서라는 지위는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같이 일한 정규직 PD와 기자들을 적잖이 부러워했다. 그들은 방송국이라는 화단 안에서 4대 보험이라는 비료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뿌리내린 나무처럼 보였다. 대학원에서 석,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학기에도 강의를 맡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고, 연구실과 같은 개인 공간은 꿈꿀 수도 없는 것이 아쉬워 몇 년간 정규직 교수 자리에 꾸준히 지원하던 시절도 있었다. 과거에는 ‘프리랜서’란 말이 불안과 불확실성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꼭 어딘가에 소속돼 있어야만 일의 안정성이 높아지는 것일까?’란 의문이 들었다. 조직 안에서도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직업인으로서 성장 가능성이 없다면 불안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후,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일할 수 있는 프리랜서의 장점을 누리고 나에게 더 안성맞춤인 일의 방식을 찾아 나가기로 했다. 그동안 혼자 판단하고 책임져야 하는 프리랜서라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나 홀로 일하다 보니 다채로운 작업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자유로움과 유연함을 탑재한 23년 차 프리랜서가 되었다.
누군가 직업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묻는다면 ‘글 쓰고 말하는 프리랜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참이다. 스스로 일할 분야와 지역, 계약할 조직이나 사람들에게 한계를 설정해두지 않은 덕에 다른 연구자나 작가에 비해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할 기회가 많았다. 오늘도 나는 어떤 작업의뢰서가 들어와 있을지 설레며 이메일을 열어본다.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지킬 수 있게 실력을 키우다 보면, 나에게 알맞은 노동환경을 스스로 제공할 수 있고 일의 다양성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그야말로 ‘프리랜서(free-lancer)’의 삶을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 이 글은 금정문화다양성 웹진 <다름기록자의 글여행>에 수록한 것을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