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제가 사는 아파트 앞에 중학교가 하나 있습니다. 거실 창에서 내려다보면 학교 운동장이 훤히 내려다보이지요. 창을 열어 수업 종소리와 함께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점심시간엔 축구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저 또한 유년 시절 추억에 빠지곤 한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카페에 앉아있는데 낯익은 교복을 입은 남학생 세 명이 들어왔습니다. 마주 앉아도 되는 테이블에 굳이 나란히 앉은 학생들은 하나의 태블릿 PC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어요. 집중한 모습이 궁금해 커피를 받으러 가며 슬쩍 화면을 훔쳐봤습니다. 그랬더니 OTT 드라마를 같이 보고 있더군요. 학생들은 영상을 보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나도 이거 보고 싶은데, 우리 엄마는 OTT 구독은 안 된대.”
“야,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도 없어! 스마트폰 데이터도 내 맘대로 못쓰거든?”
“나도 이거 보는 거 들키면 아빠한테 혼나. 아빠 개인정보로 보는 거야.”
아이들이 보고 있는 드라마는 SNS에서 입소문이 한창인 작품이었습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싸우는 장면과 욕설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었어요. 학원물임에도 폭력의 묘사가 많아 청소년관람불가를 받은 콘텐츠로 알고 있습니다. 멀리서 봤을 땐 다들 또래답게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구나 하며 흐뭇했던 청소년들의 모습이었는데, 가까이에서 미디어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니 어른으로서, 미디어 비평가로서 고민을 갖게 하는 풍경이었습니다.
# 내가 보는 콘텐츠가 나를 말해준다?
여러분의 자녀 혹은 학생은 요즘 어떤 영상 콘텐츠를 보나요? 이 질문을 듣고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다면 가정이나 학교에서 구성원 간 소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곁에 있는 사람이 즐겨보는 콘텐츠를 알고 있다면 서로의 취향과 관심사를 공유한다는 뜻일 테니까요. 하지만 한집에 사는 식구라도, 매일 만나는 친구라도 서로의 미디어 이용 경험을 속속들이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미디어를 이용하는 방식이 점점 개인화되고 있으니까요. 여럿이 같이, 공개된 장소에서 영화나 방송을 시청하기보다는 혼자 사적인 장소에서 편한 시간에 콘텐츠를 즐기는 일이 더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보호하는 부모와 교사라고 해도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무슨 내용의 콘텐츠를 보는지 파악하기는 어렵다는 말이죠.
그래서일까요? 어느 순간부터 저에겐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청소년의 OTT 이용을 그냥 저렇게 어른들 몰래 숨어서 하는 행위로 놔둬도 괜찮을까라는 물음이에요. 저는 과거에는 방송작가로 직접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했고, 드라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영상 스토리텔링을 연구, 조사하거나 미디어를 비평하는 강의를 하고 있죠.
콘텐츠 창작과 비평에 한 발씩 담그고 있는 저의 이력이 특이해서인지, 강연 현장에서 만난 많은 분들이 먼저 다가와 고민을 털어놓곤 하는데요. 언젠가부터 OTT에 관한 이야기 비중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OTT가 무엇이냐는 질문부터, 자녀나 학생들에게 OTT를 보여줘도 괜찮은가라는 어른들의 근심, 나중에 OTT 창작자가 되고 싶다는 어느 청소년의 꿈까지 제게 답을 묻거나 이해를 구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시간 관계상, 혹은 전제로 해야 할 상황들이 많아 한마디로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있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 청소년의 OTT 이용 지도 현실은?
여기 담길 글들은 현장에서 만난 부모와 교사, 그리고 청소년의 질문에 충분히 답하지 못했던 답답함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풀기 위해 썼습니다. 글을 기획하면서 제일 먼저 주변의 어른들에게 어린이나 청소년의 OTT 이용을 어떻게 지도하고 있느냐고 질문을 건넸어요. 그랬더니 가정이나 학교에서 아예 스마트폰을 쓰지 못하게 한다거나 이용 시간의 제한을 주어 최대한 OTT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는 답이 많았습니다. 극소수지만 집이나 학교 안에서 막아봐야 소용이 있겠느냐며 포기했다는 답도 있었죠.
청소년의 OTT 이용에 무관심한 것보다는 당연히 OTT를 사용하는 장소와 시간을 통제하는 방법이 미디어의 부정적 영향에서 청소년을 지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자녀와 학생이 OTT와 같은 미디어에 접근하는 행위를 하루 종일 제한할 수 있을까요? 보호자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공간에서도 안심할 수 있나요? 앞서 제가 카페에서 마주친 중학생들의 사례처럼 말이죠. 결국 누군가의 감시나 통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청소년 스스로 OTT 이용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 지점입니다. 부모와 교사는 OTT와 청소년 중간에 서서 미디어를 사용하는 목적이나 방향을 찾을 때 길을 잃지 않게 곁에서 걷는 길잡이 역할을 하면 충분합니다.
OTT를 우리 눈앞에 놓인 거대한 산이라고 가정해 볼까요? 청소년이 안전하게 산행을 할 수 있다면 그동안 보지 못한 숲 속 풍경과 다양한 생명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자신조차 발견하지 못했던 등산가의 재능을 찾을 수도 있지요. 대신 이를 돕기 위해 보호자로서 여러분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일단 산세와 지형을 파악할 수 있는 지도와 위험한 길을 피할 수 있는 지침, 그리고 수월하게 등산할 수 있는 도구들을 챙겨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연재될 글들을 읽어가며 독자들이 OTT를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이 쌓이고, 청소년의 안전한 놀이터이자 배움터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본 내용은 <<OTT 보는 청소년, 괜찮을까요?>>(김주미, 글이출판)의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