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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Aug 05. 2017

첫 눈에 끌리는 제목 짓기

나의 이름을 쓰다!


내 이름은 ‘김주미’다.

나는 내 이름을 좋아한다.

내 이름은 쓰기에도, 부르기에도 참 쉽다. 한글을 막 배우기 시작한 조카가 고모의 이름을 쓰면서 받침을 헷갈릴 필요도 없고, 논문이나 책을 편집할 때 영문명이 잘 못 표기되는 일도 없다.    


그리고 내 이름에는 추억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 이름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어주신 것이다. 부모님이 나를 임신했을 때, 한창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열렸고 이후 진선미 당선자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미모와 지성을 뽐냈다고 한다. 그 모습이 인상 깊었던 아버지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나에게 ‘김주미’란 이름을 붙이고, 주위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이 아이를 미스코리아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셨단다.    


金主美!

내 이름을 한자로 풀면 주인 주와 아름다울 미, 즉 ‘아름다움의 주인, 아름다움의 우두머리’가 되라는 뜻이다.        

초등학교 때 한자를 배우면서 내 이름의 뜻을 얘기했다가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은 적이 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네가 무슨 미스코리아냐”며 비웃었다. 한동안 놀림을 당했지만 나는 내 이름에 담긴 의미가 부끄럽지 않았다.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님에게 난 소중한 존재였고, 누구보다 기대와 사랑을 받은 아이라는 걸 이름이 증명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름은 내 자존감의 표상이 되었다. 나는 나를 소개할 자리가 있으면 늘 내 이름의 뜻을 풀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미스코리아를 꿈꾸며 내 이름을 지어주셨지만, 자라면서 외모가 이름을 따라가지 못했고 결국 미스코리아는 아버지의 이루지 못한 꿈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꿈은 아직 진행 중이다. 아름다운 이야기, 아름다운 글을 지어서 내 삶의 주인이 되고 나아가 나의 글과 강의를 공감하는 사람들이 주체적인 삶을 살도록 돕고 싶다는 꿈이다.     


이런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인지 가끔 내 이름을 탤런트 박주미 씨와 헷갈리는 사람은 있어도, ‘주미’라는 이름을 쉽게 잊지는 못하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각인되는 이름을 갖고 산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방송 스토리텔링에서도 이름을 짓는 일은 중요하다. 프로그램 기획서에서 프로그램명이 ‘가제’가 아닌 확정이라면 이미 기획의도와 구성 전략이 상당 부분 갖춰졌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매주 에피소드의 제목이나 코너 제목을 소개할 때도, 제목부터 기대감을 갖게 한다면 시청자들에게 소구력 있는 아이템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방송에서 사용되는 제목의 유형은 역할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정보전달형 제목이다. 시청자들이 방송 내용을 짐작할 수 있도록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고 프로그램 정체성을 설명하는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삼시 세 끼’나 ‘효리네 민박’,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명은 제목만으로 이미 출연자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 제작진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콘셉트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방송 제목의 두 번째 유형은 관심 유도형이다.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시청자들을 유혹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대통령의 금고-수인번호 503번의 비밀’이나 ‘아침의 살인자-배산 여대생 피살 사건 미스터리’ 같은 제목은 시청자들에게 궁금증을 갖게 하고, 방송을 통해 어서 그 비밀을 풀고 싶게 만든다.

    

그런데 이렇게 방송의 제목을 정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무엇보다, 제목은 간결해야 한다. 특히 텔레비전의 경우 프로그램 제목은 '로고타이프(logotype)'로 제작해야 한다. 로고타이프 또는 로고는 방송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도록 만들어 상표처럼 쓰는 글자체를 말한다. 그래서 프로그램명은 특정 방송이 지니는 이미지를 쉽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시청자들에게 한눈에 각인되어야 하며, 프로그램 처음과 끝, 그리고 광고 영상 등 모든 영상에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무엇보다 간결한 문구로 제목을 정하는 것이 시각화에 도움이 된다.     


다음으로 제목과 내용의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제목은 방송 내용의 핵심을 담고 있거나 주요 정보를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때 제목과 내용의 적당한 줄다리기가 필요하다. 제목에서 이미 구성상 반전이 되는 내용이나 프로그램의 결론을 얘기해버린다면 이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추리소설을 읽는 것과 같다. 반대로 두루뭉술한 제목으로 방송 내용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추측하기 어렵거나, 지나치게 암시적이라 내용을 짐작할 수 없게 만든다면 시청자들은 그 프로그램을 꼭 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제목은 방송 내용에 관해 최소한의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시청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정하는 것이 좋다.     


제목을 쓰고 이름을 짓는 일은, 단순히 생각하면 다른 대상과 나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구별 짓는다는 말속에는, 이름 속에 그 대상만의 특성을 담는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정한 이름은 대상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줄곧 영향을 준다. 나아가 이름은 지은 사람들의 소망과 기원을 담기도 하고, 중요한 메시지를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람이든 방송이든, 이름을 붙이는 순간 자신만의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 즐겨 찾고, 회자되는 이름을 만드는 과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거나, 남들과 차별화된 스토리텔링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작품 이름 또는 제목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는지 점검해보길 바란다. 이름 속에 앞으로 나아갈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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