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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Jul 17. 2017

글쓰기 고수들의 비법 Ⅱ

독자를 존중하고 이해하라!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구멍가게를 했다.

‘슈퍼마켓’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너무 작은 가게였지만, 과자며 음료수가 나란히 정렬되어 공간을 꽉 채우고 있어 철부지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가게에는 방 하나와 부엌 하나가 달려 있었다. 방의 크기는 엄마와 나, 남동생이 나란히 누워 자기엔 무리가 없었지만 책상 하나를 더 놓을 공간은 없었다.


엄마는 과감히 부엌을 개조해 내 방을 만들어 주셨다. 좁고 긴 부엌, 아니 방은 책상과 의자 하나를 놓으니 꽉 찼다. 그러자 엄마는 가게로 이어지는 방문 앞에 시멘트를 발라 작은 마루를 만들었다. 마루가 끝나는 지점에 커튼을 달았고, 과자를 진열하다 남은 철제를 이용해 책장을 만들었다. 그곳엔 엄마가 일 년에 한 번씩 우리 남매를 위해 사 모은 동화책들이 과자처럼 진열되었다.       


말수가 적고, 체력이 약했던 나는 또래 친구들과 뛰어놀기보다는 책을 읽는 것이 훨씬 즐거웠다. 그 시절, 동화 속에서 나는 나와 닮은, 혹은 닮고 싶은 친구들을 만났고 엄마가 만들어준 내방과 서재는 그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상상의 놀이터였다.


그때 읽었던 동화 중 가장 좋아했던 이야기는 <소공녀>였다. 열 번도 넘게 읽어서 <소공녀> 편만 책이 닳아 있었다. 부자에다가 자상한 아빠가 있어 기숙학교에서 공주 대접을 받지만, 아빠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기숙학교의 천덕꾸러기가 된 세라. 힘든 기숙학교 생활 속에서도 선생님과 친구들을 미워하지 않고 착한 마음을 잃지 않던 소녀. 그리고 아빠가 끝내 돌아와 다시 옛날 행복한 소공녀로 돌아간다는 이야기.


난 아마 세라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책을 읽으며 늘 비슷한 상상에 빠지곤 했으니까. 일곱 살 때 돌아가신 아빠가 사실은 하늘나라로 가신 게 아니고, 어딘가에 살아계셔서 곧 우리에게 돌아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 말이다.

     

며칠 전, 아는 동화 작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화의 힘이 이렇게 크다고, 불우할 수도 있었던 어린 시절에 기죽지 않고 자존감을 키우며 자랄 수 있었던 건, 동화책에서 만난 희망의 이야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화 작가들은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창의적인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와 동갑이지만, 20대 초반에 결혼해 어느새 고등학생 자녀를 둔 그녀는 그저 평범한 전업주부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 자신이 동화의 매력에 빠졌고, 직접 이야기를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직접 동화작가들의 강의를 찾아다니며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현업 동화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발견한 동화의 매력은, 좋은 동화가 아이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한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화 쓰기의 비법을 살짝 일러주었다.     


동화는 판타지를 그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동화를 쓰겠다고 모인 예비 동화작가나 학생들 또한 환상적인 소재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개 그들의 습작은 용두사미로 끝나거나 환상과 현실을 적절히 연결시키지 못해 기괴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판타지 세상을 그릴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묘사하므로, 그것이 마치 아이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더욱 생생하게 묘사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점을 간과하거나 무시해버리고 펜 가는 대로 써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동화쓰기도 개연성이 관건인 셈이다.


비록 현실적인 내용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창작한 작은 세계 안에 나름의 법칙을 만들어놓고, 그 법칙을 성실히 지켜가야 어린이들도 그 세계를 납득할 수 있단다. 어딘가에 꼭 있을 것만 같은 세상, 그래서 어린이들이 동화책을 덮고 난 후에도 언젠가 가보고 싶은 세상으로 그리기 위해선 다른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풍부한 취재와 자료조사, 그리고 구성이 필요하고 했다.  


덧붙여 그녀는 동화쓰기에 관한 몇 가지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예를 들어, 동화는 무조건 교훈적이어야 한다거나, 결말이 행복해야 한다거나, 꼭 착한 존재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모두 편견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를 가르치고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어른들일수록 이런 편협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화작가라면, 독자로서 어린이들을 누구보다 존중하고, 그들만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단다. 어린이의 말이나 행동을 어른의 시각으로 멋대로 재단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재차 당부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지인들과의 대화에서도 섣불리 타인의 말을 평가하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아이에게 배운다’는 말이 있다. 내가 지켜본 동화작가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에게서 배운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처음엔 우습게 생각했지만, 작은 화분에도 이름을 붙이고, 그녀가 오래 타고 다닌 자동차도 친구처럼 대한다. 그래서 그녀의 일상에서 하찮은 존재는 하나도 없으며, 오히려 자신과 만나는 모든 것이 귀한 글감이 되는 듯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불현듯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라디오 작가를 하던 때이다. 방송이 끝나고 DJ와 함께 밥을 먹다가, DJ가 자신의 아들과 아침에 있었던 얘기를 꺼냈다. 늦잠을 자서 세수도 하지 못하고 아이를 차에 태워 어린이집으로 향하는데, 아이가 빤히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더란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엄마 눈에 별사탕이 있어”라고 말했단다.     


바쁜데 무슨 엉뚱한 소리라며 다그치고, 어린이집에 도착해 아이를 선생님에게 인계한 후 그제야 차에서 거울을 봤단다. 그런데 자신의 눈에 커다란 눈곱이 끼어있더라는 것이다. 본인은 엄마 눈에 별이 있다는 얘기로 알아듣고 그래도 엄마라고 예뻐 보이나 보다 하고 내심 기분이 좋았단다. 그런데 이렇게 큰 눈곱을 붙이고 어린이집 선생님과 인사를 나눴다는 생각에 창피하고 황당했다고 한다.


DJ는 푸념처럼 일화를 얘기했지만, 난 순수한 아이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란 생각이 들어, 이 일화를 라디오 오프닝 멘트의 소재로 썼다. 그리고 그날 게시판에는 오프닝을 듣고 공감했다거나 아이들의 말을 다시 듣게 됐다는 긍정의 소감들이 많았다.  


방송을 하면서 어린이를 비롯해, 나와는 다른 부류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방송을 만들 때가 많다. 이주민 여성이나 중년 남성들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노인의 일상을 그린 방송 등등. 그렇다면, 방송작가로서 나는 나보다 어리다고, 혹시 나와 다르다고 편견을 가진 채 그들을 대했던 적은 없을까?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면서, 그들의 시선으로 스토리텔링을 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어린 시절 내게 <소공녀>가 그러했듯, 장르를 불문하고, 누군가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물하는 글을 쓰는 진짜 스토리텔러들이 새삼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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