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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를 시작하는 용기

나만의 글에서 우리의 책이 되는 순간!

by 김주미

지난 20주 동안 월요일이 참 바빴다. 주말 동안 쓴 글을 월요일에 다듬어 '위클리 매거진 화요일'편에 게재해야 했다. 주말에 여유가 있으면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못하면 월요일이 마감일이나 마찬가지여서 "독자들을 위해 글을 예약 발행해 주십시오"라는 멘트에 쫓기듯 글을 썼다. 연재를 처음 시작할 때는 20주가 길고 아득해 보였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20주를 무사히 채우고 연재를 마칠 수 있었다. 한 번도 기한을 넘기지 않고 글을 올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위클리 매거진'에 글을 싣기로 한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입버릇처럼 지인들에게 "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고 다녔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내가 쓴 글을 읽으며 나를 판단할 생각을 하니 두려웠다. 나를 아는 이들이 내 글을 읽는다는 상상을 하면 더 당혹스러웠다. 속내를 들키는 것 같고, 혼자 오롯이 품어온 나만의 이야기들이 이제 내 것이 아닐 것만 같았다.


그래도 용기를 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의 마음가짐을 떠올렸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쯤, 나는 대학 강의를 그만두었다.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한 시간은 7년이었다. 그동안 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일을 맡았다. 결국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쳤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더 이상 나를 잃고 싶지 않아서, 열정적이고 주체적이던 나를 되찾고 싶어서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막상 일을 그만두니 불안했다. 처음 방송작가를 시작한 스물세 살부터 대학 강사를 그만둔 마흔까지 일을 쉰 적이 없었다. 방송작가 시절에는 늘 방송국 동료들과 팀을 이뤄 작품을 만들었고, 대학에서 공부하고 강의를 할 때에는 곁에 스승이나 선후배, 그리고 제자들이 함께였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니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무엇보다 누군가 대화할 상대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브런치'라는 공간에 글을 쓰는 것이었다.


대화의 상대는 또 다른 나로 정했다. 그리고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어줄 가상의 독자로 정했다. 그렇게 내가 진짜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썼다. 대학 수업 시간이나 방송 아카데미 같은 곳에 특강을 가면, 의외로 방송작가가 하는 일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이 많았다. 방송 글쓰기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품고 있는 이들도 있었고, 방송작가는 막노동일뿐 스토리텔링 실력은 필요치 않은 것 같다며 폄하하는 이도 있었다.


그냥 내가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힌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실패한 이야기는 실패한 대로, 성공한 이야기는 그 보람의 순간을 있는 그대로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방송 스토리텔링의 비밀>이라는 매거진을 시작했다. 십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방송계에서 버티며 성장해 온 과거의 나에게, 현재의 내가 잘 살아왔다고 건네는 위로 같은 글이 되기를 바랐다. 욕심을 조금 더 내어, 현재도 방송 현장에서 잠 못 자고 땀 흘리고 있을 선배, 동료, 후배 작가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한 회, 한 회 글을 쓰다 보니 어느 날 10회, 20회가 채워졌고 그 글들을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 응모했다. 믿기지 않게 '금상'을 수상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출간 지원금을 받았다. 그 사이 나의 글들을 읽어 주는 고마운 구독자가 1000명, 2000명 늘어났고 결국 '위클리 매거진'에 연재까지 하게 되었다.


기분 좋은 기적 같은 순간은 계속 이어졌다. 출판사 몇 곳에서 연락이 왔다. 이메일로 간단한 질의응답을 한 후, 마음이 가는 출판사의 편집자와 서울에서 미팅을 가졌다. 지금은 나의 글에 애정을 가지고 나의 작업 과정을 지지해주는 열정적인 편집자와 함께, 가을 출간을 목표로 책을 쓰고 있다. 편집자와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 "우리 책 방향은"이라고 시작하는 문장을 만나면 책임감과 함께 가슴 한편에 뿌듯함이 솟아난다. 현실의 불안감을 떨치려 용기 내어 시작했던 작은 행동이 하나의 근사한 프로젝트가 된 것 같기 때문이다. 나만의 글이 우리의 글, 우리의 책이 되는 과정을 나는 지금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기쁜 소식 하나 더! 방송작가로 일하거나 대학 시간강사를 하면서 직장에서 나만의 방을 가져보지 못했다. 방송국에서는 팀별로 앉거나 작가실을 이용했고, 대학에서는 그야말로 '보따리 장사'로 이방 저 방을 기웃거렸다. 그런데 이번에 나만의 창작실을 갖게 되었다. '브런치'에 올린 방송작가 시절의 에피스드를 모아 영상 스토리로 만들기 위한 기획안을 썼고, 시나리오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지금 이 순간, 나만의 창작실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돌이켜보니, '브런치'에 첫 글을 발행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이렇게 많은 글, 좋은 글들이 넘쳐나는데 과연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글을 올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었다. 내가 쓰고 싶어서, 지금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쓴 글이었다. 그 글들이 나 자신과 더 깊이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내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꺼낼 수 있는 또 다른 용기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브런치에 새로운 매거진을 발행했다. <아이 없이 살게요>에서는 무자녀의 삶을 선택한 우리 부부의 일상 이야기와 주변인들의 반응, 사회의 시선에 대해 솔직한 나의 생각과 감정을 담을 계획이다. 이 매거진을 쓰면서 나에게 또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벌써부터 설렌다. 혹시 아직 이 공간에 나의 글을 내보이기가 망설여지는 분들이 있다면, 부디 도전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시작하는 용기 한 스푼, 그것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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