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의 나를 ‘명랑한 은둔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2년 전에 서점에서 발견한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라는 책의 제목을 따라했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 책의 제목을 본 순간 나는 완전 반해 버렸으니까. <명랑한 은둔자> 그 여섯 글자가 주는 만족과 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왜 나는 이 말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여섯 글자는 나를 정의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실제로 나는 혼자 있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고 혼자서도 충분히 유쾌하고 즐겁게 산다. 나의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혼자 있으면 신나고 나랑 노는게 세상에게 제일 재미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다. 나는 이 책을 제목만 보고 바로 구입을 했다. 나의 주변인들에게 이해 받지 못했던 것들을 이 책에서 이해 받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은둔자를 만났다는 기쁨에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난 것 마냥 기뻤다.
사람들은 혼자 있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혼밥, 혼영, 혼카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부터 나는 혼자 밥을 먹으러 다녔고 혼자 영화나 전시회를 보러 다녔고 카페에서 책읽고 다이어리를 쓰며 보내는 나만의 시간을 좋아했다. 그 당시 주변 사람들은 “혼자 무슨 재미로 놀아? 안 심심해?”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아?”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 질문들에 오히려 의문을 가졌다. “왜 혼자 노는데 심심해? 혼자 있는게 왜 외로워?” 하며 진짜 진심으로 나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혼자였을 때 심심함과 외로움을 느꼈을테고 나는 혼자 있으면 너무 재밌고 신나고 심심할 겨를이 없었으니 서로를 이해 못하는 건 당연한 거였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하지 않거나 이것이 잘못된 걸까하고 고민하지 않는다. 그 특이하게 보는 시선을 감내하며 나는 오랜 시간 은둔력을 지속해왔다. 내가 말하는 은둔은 철저한 혼자만의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기 위해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것 그것이 나의 은둔의 목적 1이다.
10여년 전 감성 매거진 ‘히치하이커’에 ‘솔로예찬’이라는 주제에 글이 당선되어 실린 적이 있다. 그 글에서 ‘ 나를 발견하기 위해 혼자 여행을 떠나고 사색을 통해 나를 돌아보며 누군가를 쫓지 않는 느린 속도로 걸어가고 한 끼의 맛있는 식사와 향기로운 커피 한 잔, 즐겨 듣는 음악과 좋아하는 책 읽기, 보고 싶은 전시회나 영화도 날 위해 선택한다. 혼자여도 괜찮다. 혼자의 시간은 결코 외롭지 않다. 그것은 ‘소중함’과 ‘새로움’의 발견이다.’ 라고 말했듯이 혼자의 시간은 나를 들여다 볼 수 있고 나를 소중히 대할 수 있는 꼭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주변에 무엇이든 사람들과 하지 않으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사람들에게 나는 솔로예찬을 외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적극 추천했다. 그러면 그 이들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각자가 행복할 수 있는 추구미는 다른 것이니까 각자의 성향에 맞춰 살고 싶은대로 사는 것이 베스트라 생각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없으면 안되는 나라는 사람이 있듯이 혼자 있으면 극도의 외로움에 치를 떠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나와 당신은 다른 성향의 사람이군요 하고 인정해야지 강요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도 살고 싶은대로 사는 것이니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기를.
24년 말에 나는 암환자가 되었고 많은 가치관과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암환자가 되고 나는 나의 성향대로 본격적으로 은둔이가 되었다. 나는 모든 아픔들을 내부에서 해결을 한다. 몸이 아프든 마음이 아프든 혼자 움츠리고 있다가 서서히 회복을 한다. 그것이 나를 지키고 회복시키는 나의 방식이다. 누군가의 걱정과 위로가 힘이 될 수는 있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것들은 나와 맞지 않는 것처럼 거부감이 든다.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은 하면 안되고 드러내면 안된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들이 나의 무의식에서는 그렇게 작용을 하나 보다. 그래서 미리 알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직장에 사람들과 가족 그리고 유일하게 카톡을 매일 주고 받는 친구 외에는 나의 암소식을 내가 항암이 거의 끝나던 시점에서야 알게 되었다. 청천벽력 같이 인생에 날벼락을 맞아 나의 세상이 무너져 내려버린 그 순간에 내가 나를 다스리기도 버거웠으므로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위로를 받고 나의 사정을 이야기할 여유가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항암을 하면 요양 병원에 입원을 하고 케어를 했지만 나는 나의 집, 나의 방이 편했다. 그냥 편하게 혼자 있고 싶었다. 스스로도 버거운 고통을 가족들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필요한 것은 따로 요청할테니 혼자 내버려두라고 했다. 그렇게 항암 한 번에 4일을 방안에 은둔해서 투병을 했다.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을 해대는 통에 방밖으로 나가기가 무서웠다. 가만히 있어도 물만 마셔도 구역질과 구토를 했으므로 이것은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버티는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4일째가 되어야 겨우 구역과 구토감이 잠잠해지니까 그 시간을 버티면 되었다. 처음 겪는 항암 증상에 대비하는 정답은 없었다. 항암 증상도 다들 제각각이고 상, 중, 하 중에서 나는 최상이었다. 같이 항암했던 동기 여사님들은 그냥 속이 미식거리고 입맛이 없고 정도였다는데 나는 항암 횟차가 거듭될 수록 구역, 구토감은 기본이고 고열에 설사에 백혈구 수치는 매일 떨어져 결국 0까지 찍었고 죽을 뻔 했다. 교수님도 항암을 너무 못이긴다고 하셨는데 그게 내 마음처럼 되는게 아니다. 내 몸에 벽혈구라는 것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처음 느꼈다. 백혈구 수치를 올려야 해서 매일 피검사로 확인하고 호중구 올리는 주사와 항생제 수액을 맞았다. 피검사는 2시간이 있어야 결과가 나오므로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몸이 너무 피곤했다. 나른 나른하니 꼭 눈을 감으면 그대로 영영 잠들어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앉아서 생각을 하니 내가 당장 이 세상을 떠난다면 아무것도 가져갈 것도 없고 사람들과의 인연도 끝나는 것이구나..나는 이 생을 살다가는데 사람들에게서 금세 잊혀진다는 것이 서글퍼졌다.
그 생각들이 지금의 나의 가치관에 영향을 많이 주었다. 첫번째는 돈이든 물건이든 많이 가져야 한다고 집착하며 살았는데 죽으면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으므로 돈과 물건은 이 생에서 나의 안위와 즐거움을 주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과 그렇다면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은 바로 나의 내면을 채우는 것이라는 생각에 머물렀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영혼이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한다. 좋은 경험을 주고 나의 삶을 확장하고 내면을 가꾸는 것들은 내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들이었다.
두번째는 원래도 사람과의 관계에 미련을 크게 두지는 않았지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지 말고 미워하고 원망하던 마음이 남아 있다면 털어 버리자라는 거였다.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시절인연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10년 전, 20년 전에 좋았던 관계들이 현재에도 좋을 수도 없고 이어지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것은 그 시절에 좋았던 기억일 뿐 이미 우리는 각자의 인생길로 다른 인연들을 새로 맞이 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를 미워하기도 하고 나도 누군가를 많이 미워하면서 살았는데 그것을 안고 가고 싶지는 않다.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제때에 용서를 구하고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굳이 사과받지 않아도 용서하고 털어내기로 했다. 그리고 굳이 나에게 해로운 사람들하고 엮이고 싶지도 않고 인연을 이어가고 싶지도 않다. 암환자에게 최악은 스트레스이다. 이제는 스트레스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살게 하려면 아주 대쪽같은 분별력과 거리감을 두어야 한다.
세번째는 나는 이 세상에 나의 이름을 어떤 식으로든 남기고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평소에도 꼭 무엇이 되고 싶은 것에 열망을 갖고 살았는데 나는 그렇게 열심히 살고도 왜 아직도 그 무엇이 되지 못했는가가 의문스러웠다. 나는 꼭 이 세상에 살다간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이름 석자라는 생각을 했다.
암환자가 되고 나는 1년을 은둔이로 살았다. 메신저나 SNS로는 사람들과 소통하지만 실제적으로 사람들과 만난 횟수는 거의 없다라고 보면 된다. 난생 처음으로 빡빡이가 된 머리 스타일에 자존감도 지켜야했고 호르몬 억제제 부작용으로 할머니의 몸처럼 관절이 뻣뻣해지는 통증에 불편한 몸으로 적응도 해야했고 삶이 바뀌었으니 그 바뀐 삶에 나름대로 건설적이고 진취적으로 살아내는데 집중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혼자 있는 시간들을 사랑하고 나는 나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만 채워주고 싶었다. 부지런히 운동을 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먹이고 무해한 것들을 곁에 두고. 이제 나에게 나를 살리기 위한 목적이 무조건 1순위이다. 나에게 해로운 것들은 그 무엇이 되었든 거리를 두고 싶다. 이것이 내가 은둔이로 살아가는 목적 2이다. 나에게 해로운 것들과 거리두기를 하기 위해 은둔하는 것이다.
은둔하는 시간들은 나를 오랫동안 사색할 수 있는 시간에 머무르게 하고 시나 글을 쓰도록 창작의 시간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내면을 채우는 일에 집중하고 나를 돌보고 알아가는 시간을 갖게 한다. 이것은 은둔이의 목적 3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은둔이들을 사회적으로 도태된 사람으로 볼 수 있지만 글쎄 그럼 뭐 어때서. 그 누군가 일반적이라 말하고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개개인에게 다 맞는 것은 아니다. 개인에게 보통 사람처럼 일반적으로 살아가라는 정상이라는 기준이 우리가 타인을 의식하며 사는 이유이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해야하는 선택들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이다. 은둔이라고 어둑하고 우울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우울한 날이 있으면 밝은 날도 있듯이 즐겁게 사는 나같은 명랑한 은둔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