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형 방순이

by 별하열음

요즈음 나의 별명은 ‘방순이’이다. 아부지가 나를 부르는 별명이다. 언제부터인가 자꾸 방순이라고 부르길래 왜 나를 방순이라고 부르느냐 물었더니 방에 들어가면 방에서 안 나오기 때문에 방순이란다. 그렇다 나는 집순이라고 하기에는 방에만 있으니까 방순이가 맞다. 방에서 뭐 하냐고? 할 일이야 무궁무진하다. 책을 읽고 시와 글도 쓰고 좋아하는 드라마나 예능을 반복해서 보고 다이어리도 쓰고 사부작거리면서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한다. 생각이 많아서 이것저것 상상하고 생각하다 보면 심심할 겨를이 없고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의식의 흐름대로 사부작거리다 보면 또 시간이 빨리 간다. 그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은 물건이 많은 나의 방에서 보물 찾기를 하는 것이다. 이곳저곳에 숨겨진 아기 자기한 아이템들을 발견하는 것. 나는 이것을 ‘방에서 주웠어’라고 표현한다. 정말 주워서 횡재한 기분이다. 내가 좋아했던 물건인데 나의 기억에서는 사라져 있다가 다시 재등장했을 때의 기분이란 그렇다. 온갖 꾸미기란 꾸미기는 또 다 좋아해서 유행하는 꾸미기는 다 하는 편이다. 다이어리 꾸미기, 가방 꾸미기, 거울 꾸미기, 핸드폰 케이스 꾸미기... 요즈음 볼펜 꾸미기가 동대문에서 유행이라는데 사람이 많다고 해서 일단 보류 중이다. 그 외에 춤추는 것도 좋아해서(춤을 전문적으로 잘 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흥이 많을 뿐) 춤을 추거나 요가 스트레칭도 방에서 한다. 이 작은 나의 공간은 방순이이자 은둔이인 나에게는 활용도가 많은 곳이다.


오랫동안 나의 공간이었던 이곳은 나의 침실이자 아지트이자 작업실이다. 암투병을 하던 때에는 병실이기도 했다. 사방에 책과 옷과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가득 차 있는 나의 방. 타인이 보기에는 무질서하고 물건이 가득 찬 방이겠지만 나만의 스타일로 채워진 아지트 같은 공간이다. 너무 오랫동안 살아서 낡아진 이 아파트의 나의 방을 나는 떠나고 싶지 않다. 할 수 있다면 죽을 때 이곳에서 편안히 죽고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얀색 바탕에 잔꽃 무늬가 들어간 철릭 원피스에 빨간색 허리치마로 구성된 나의 첫 생활한복이었던 그것을 곱게 입고 화장도 예쁘게 하고 미소를 띠며 가고 싶다. 그 마지막 모습으로 하늘나라에 가게 될 테니까. 그리고 이 생에 마지막 모습을 남기는 일이니까 잘 정돈된 상태로 떠나고 싶다. 사후 세계가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 보면 마지막에 죽었던 모습으로 천국이든 지옥이든 가던데 마지막 모습도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누군가 말하지 않던가 인생이라는 여행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이고 죽음은 그 긴 여행을 끝내는 것이라고.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든다. 내가 인생을 여행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참 설레기도 하면서 그렇다면 이 여행을 잘 즐겨야지 하는 생각도 드니까. 생에 마지막에도 나의 여행을 마친다라고 생각하면 많이 슬프지는 않을 것 같다. 그저 ‘잘 즐기다가 갑니다’ 하고 쿨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20년을 넘게 사회생활을 했던 나를 사람들은 사교적이며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어렸을 때 내성적이었다는 말을 하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나는 말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초등학교, 중학교 때 성적표에 같이 적혀 오는 선생님의 학생을 평가하는 말에는 ‘조용하고 소극적이며 말 수가 적고’라는 말이 단골 멘트였다. 실제로 태어나기를 낯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이었다. 우리 엄마는 내성적인 나의 성격을 개조하고자 활발하게 지내라고 교회에 보냈다. 우리 집안이 기독교도 아닌데 엄마는 자진해서 동생과 나를 교회에 다니게 했다. 학생부에 언니, 오빠, 친구들이 많이 생기고 또 어울리며 교회 활동을 한 덕에 그때부터 외향적인 부분이 발달이 되었다.

중학교 때에도 나는 ‘방순이’였다.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나는 방에만 있었다. 방에 있는 책상에 앉아서 그림도 그리고 하이틴 로맨스 소설도 썼다. 노트에 소설을 써서 학교에 가져가면 친구들이 쭉 돌려 보고 나에게 다시 노트가 돌아오면 다시 소설을 써서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식의 소설을 썼다. 친구들이 재밌다고 해줬기 때문에 신이 나서 학교 끝나면 나의 방으로 돌아와 소설을 썼다. 당시에는 만화가가 꿈인 친구들이 많아서 예쁜 여자 캐릭터를 그리는 친구들이 있었고 나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만화가가 될 정도의 그림 실력은 아니었지만 종이 인형 같은 여자 캐릭터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글 쓰고 그림 그리며 혼자 있는 그런 시간들을 좋아했기에 친구가 놀자고 전화를 하거나 집에 찾아오면 종종 집에 없는 척을 하기도 했다. 그 친구가 싫었다기보다는 나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지금 돌아보면 이것은 내가 가진 본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조금 헷갈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항상 방에만 있는 사람도 아니다. 초등학교 때를 생각하면 나는 동네방네를 다 뛰어다니며 친구들하고 놀기 바쁜 애였고 내 기억 속에 누구의 집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데 종종 누군가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다녔다. 고등학교 때는 나서서 동아리도 친구들과 만들었고 교회에서 하는 문학의 밤에도 적극 참여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지인들과 여행을 다니거나 몰려다니며 놀러 다녔고 생활 한복을 입고 다니던 때에는 이곳저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관심을 받기도 했다.


나는 고양이과의 사람이다. 생김새가 고양이를 닮은 것은 아니고 고양이의 성향을 닮아 있다. 사람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듯 하지만 또 막상 관심을 주면 새침하게 거리를 둔다고 한다. 예민하여 스트레스에 취약한 것도 닮아 있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과의 사람이다. 외향적이면서 내향적이다. 나의 MBTI는 E와 I가 거의 50대 50이다. 근소한 수치로 E가 되었다가 I가 되었다가 한다. 이렇게 방순이로 지내다 보면 내향형이 강화되어 수치가 바뀐다. 지금의 나는 INFJ이다. 아이유가 이 MBTI를 갖고 있어서 그리고 통찰력이 있는 성향이라고 해서 마음에 들었다. 나는 통찰력이 있다는 말을 아주 좋아하니까 이 MBTI가 마음에 들어서 이렇게 살기로 했다.


방순이로 그리고 은둔이로 지내는 지금은 내향성이 도드라져서 신기하게도 오랜만에 사람들 만나는 자리에서 긴장을 하고 쑥스러워한다. 내가? 쑥스러워한다고? 암환자가 되기 전만 해도 낯가림도 없었는데 낯가림도 생겼다. 쑥스러워서 머뭇머뭇거린다. 근 20년을 넘게 낯가림과 쑥스러움을 달고 살지 않아서인지 이런 내가 낯설면서 웃긴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거야. 내가 나인데 여전히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외향과 내향의 어느 선상에 있는 일관성이 없는 방순이이자 은둔이이다. 외향인으로도 내향인으로도 살 수 있는 뛰어난 능력 아닐까 생각한다. 감정 기복처럼 나의 성향도 기복이 있다. 지금은 내향형 방순이로 살고 있다. 방순이의 활동 반경은 붙박이 마냥 한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를 반복하므로 엉덩이와 허리가 쑤실 때가 있지만 나는 방순이로 충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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