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한 나로 살아가기

by 별하열음

요즘 문보영 시인님의 산문집을 찾아 다시 하나씩 읽으며 문보영 시인의 세계에 빠져서 재미와 자극을 받고 있다. 또 문모영 시인님의 브이로그에도 오랜만에 찾아가 최근의 생활들을 보았다. 문보영 시인님은 일기 딜리버리로도 유명하다. 일기 딜리버리는 자신의 일기를 우편과 메일로 보내는 구독 서비스이다. 구독료는 만원이었고 나도 그 일기 딜리버리를 받은 적이 있다. 누군가의 글을 기다리며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자, 또 문보영 시인님의 팬이라면 그녀의 일기를 소장하는 것이니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문보영 시인님을 알게 된 것은 5,6년 전이었던 것 같다. SNS에 나의 계정으로 시와 글을 올리고 있을 때쯤 시인님의 계정을 알게 되었고 일기 딜리버리와 브이로그도 알게 되었고 그 뒤에 시인님의 산문집들을 찾아 읽었다. 그녀의 산문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문보영 시인만의 독특한 시선과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나는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고 나를 빨간 머리 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문보영 시인님도 빨간 머리 앤을 닮았고 좋아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비슷함이나 닮음은 빨간 머리 앤의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면 안에 가지고 있는 시선이나 상상력 같은 것을 말한다. 나도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는 말과 평범하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서 사는데 엉뚱하면서도 이상한 생각이나 말을 하는 사람이 주변에는 없으므로 그래서 문보영 시인의 남과 다른 평범하지 않은 시선과 생각이 재미있고 마음에 들었는지 모른다.



문보영 시인의 산문집들을 읽으면 나는 글이 쓰고 싶어지고 일기가 쓰고 싶어진다. 그래서 글의 원동력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글이 쓰고 싶어지는 자극을 받기 위해 종종 이렇게 문보영 시인의 산문집들을 하나씩 다시 읽는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평범하지 않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서 나의 글도 평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글이 평범해서 쓸 수 없을 때 이 책들을 찾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의 이상한 말들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게 된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지 않는 엉뚱한 이야기들을 하면 공감이 돌아오는 것이 아닌 나를 희한한 사람으로 생각했으므로 언제부터인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나 티키타카의 상대가 없었으므로 내뱉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것들을 그냥 버리지 말고 다 주워다가 문보영 시인님처럼 일기에 써둘 걸 하는 생각도 든다. 간간히 쓰는 일기가 나의 글감이 되기도 한다. 나의 일기는 성찰의 일기이므로 다소 진중하다. 나의 엉뚱함 들은 기억나지 않고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이래서 기록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흩어져 사라질 기억들을 고스란히 담아 두고 꺼내 볼 수 있는 기록이라는 것은 소중하다.



문보영 시인님의 산문집들을 보면 글을 쓰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나의 엉뚱함들을 찾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은둔이로 사는 지금은 특히 내가 엉뚱한지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나의 생각이나 상상 그리고 행동을 내보여야 평범하지 않다는 둥 엉뚱하다는 둥 이런 피드백을 받을 텐데 만나는 사람이 없으므로 나는 나의 엉뚱함을 알 길이 없다. 은둔이로 살게 되면서 MBTI가 E에서 I로 바뀌었듯이 엉뚱함도 평범함으로 바뀌었을지 모른다. 6년 전에도 문보영 시인님은 나의 추구미였고 뭔가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당시 정식 시인은 아니었지만 나는 어렸을 적부터 간간히 또는 꾸준히 시를 쓰고 있었고 문보영 시인님처럼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스타일도 힙한 그런 시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추구미는 추구미일 뿐, 나도 나의 세계가 분명한 사람이라서 나는 나의 스타일대로 시인이 되었다. 그 사람을 동경하고 배우고 싶은 점을 응용해 볼 수는 있지만 추구미라고 해서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은 될 수 없다.



시집을 출간하고 좋은 기회를 얻어 서울 영풍문고 종각종로점에서 함께 시집을 출간한 시인님들과 북토크를 하게 되었다. 북토크가 끝나고 마지막 사인회가 있었고 한 분 한 분에게 사인을 해주는데 어떤 독자분이 사인을 하고 있는 내게 질문을 하셨고 나는 이렇게 답했다.

독자 : 시를 쓰면 SNS에 올리거나 하시나요?

나 : 올리는 것도 있고 시 노트에만 담겨 있는 것도 있습니다

독자 : 어 그럼 그것을 누군가 모방할 수 있지 않나요?

나 : 시를 베껴서 모방할 수는 있겠지만 그 시인이 가진 감수성이나 결까지는 따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고유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베낄 테면 베껴라 주의예요. 하하하



나의 대답이 답이 되었는지 독자분은 감수성이나 결까지는 따라 할 수 없다는 말에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셨다. 어떤 시가 마음에 들어 모방을 하고 자신의 시라고 한다면 그렇게 한 사람은 거짓으로 사는 사람일 테고 남들은 몰라도 자신은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시를 볼 때마다 나라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시가 마음에 들었다면 그것을 영감으로 자신의 시를 쓸 줄 알아야 한다. 베껴 쓴 인생은 그 무엇도 내 것이 될 수 없다. 추구미를 끌어와서 추구미와 똑 닮은 캐릭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성으로 나의 고유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문보영 시인님의 독특하고 엉뚱한 글이 좋아서 따라 쓴다고 해도 나는 문보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맞아 나에게도 나만의 엉뚱함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 ‘나도 기록과 일기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일기에서 글의 영감을 얻거나 일기 형식의 글을 써봐야겠다’‘브이로그로 나라는 사람을 기록하고 싶다’‘조금 더 아티스트적인 삶과 가치관을 갖고 싶다’ 등등의 내가 추구할 수 있는 방향성을 가질 수는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응용해서 나의 것을 만들어 가면 된다.


오늘 아침 읽은 문보영 시인님의 ‘준최선의 롱런’을 읽으면서도 2가지 추구미를 찾았다. 하나는 ‘준최선의 삶’ 또 하나는 ‘브이로그란 무해함을 보여주는 기록 방식’이라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삶과 대충 사는 삶 사이에서 사는 것을 문보영 시인은 준최선이라고 불렀다. 늘 열심히 살려고 하다가 번아웃으로 소진되어 버리는 나는 이 중간 선상에서 사는 삶을 현재 연습 중인데 나도 항상 준최선에 머물러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얼마 전 이 ‘명랑한 은둔이’라는 캐릭터로 계속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요즘 너무나도 즉흥적인 나는 유튜브 브이로그를 시작했다. 무엇인가 가장 느리게 나를 기록하는 방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리고 브이로그를 만들고 보니 이것 또한 세상에 나를 남기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시작을 했다. 이 브이로그는 그냥 수요가 없어도 조용히 남겨 보기로 했다. 나의 또 다른 삶의 추구미가 ‘무해함’인데 문보영 시인님이 브이로그란 무해함을 보여주는 기록 방식이라고 해서 마음에 든다.


10분짜리 영상을 만들어 한 시간을 넘게 자막을 넣으면서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유튜브 하는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나의 일상을 누군가 하나하나 궁금해해줬으면 하는 관종끼가 있다. 그런데 또 사람들이 나를 다 아는 것은 싫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고양이과의 사람이라서 놀아 달라고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새침하게 나의 세계에 머무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다. 나를 알게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나에 대해 다 알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도대체 이것은 무슨 심리일까. 요즘 내가 아주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어. 모든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만큼은 관심이 없고 내가 생가하는 것보다 관심이 있다는 말이다.



요즈음 모든 SNS에는 알고리즘과의 전쟁이다. 이제 알고리즘을 타지 않으면 내가 올린 게시글은 노출 조차 되지 않는다. 어느 때는 사람들의 반응에 기쁘고 어떤 때는 사람들의 무관심에 고립감을 느낀다. 세상이 나에게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 기분은 별로이다. 일단 SNS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소통하는 것일 텐데 누구는 조회수가 몇만을 찍을 때 누구는 조회수 1을 기록하면 자괴감마저 든다.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관심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하라고 조정당하고 있는 것 같다. 매일 릴스와 숏츠 공장이 돌아가고 조회수는 영업 성과 같다. 영업 성과가 좋지 않으면 낙담하고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가 아닌 남들이 보기에 좋은 콘텐츠를 찾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 조회수가 많다고 팔로워가 많다고 모두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고 핸드폰부터 확인하며 이 행위를 왜 하고 있는 것일까. 요즘 알고리즘 구조를 소통이라는 전제를 깔아 놓고 같은 관심사나 팔로우가 된 친구에게만 겨우 노출이 되는 구조이다.



나도 그 대열에 끼어서 알고리즘의 노예로 살고 있다. 갑자기 한 번도 도달하지 못한 조회수가 나오면 기분이 좋고 무엇인가 기대감을 품으며 다시 게시물을 올리지만 제자리걸음이다. 그러다가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라는 말을 되뇌인다. 어차피 조회수도 안 나오고 사람들이 관심도 없는 거 내가 하고 싶은 거 할래라고 하며 정말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것을 올렸다. 그냥 나의 취미와 재미만을 생각한 게시물 올리기. 그렇게 생각하니 자유롭고 재미있었다. 한 가지 방향으로 게시물을 일정하게 올려야 알고리즘도 그런 게시물을 원하는 이들에게 닿게 해 줄텐데 나의 게시물은 일관성이 없다. 열심히는 올리지만 일관성 있는 한 가지 주제가 아니다. 북스타그램으로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어느새 나의 일상, 출간한 시집 이야기나 시낭독도 하고 또 요즈음 시 쓰는 것이 관심사여서 시를 쓰고 게시물을 올린다. 나의 친구 고동이가 그랬다. 알고리즘 깨지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나는 못 돌아갈 것 같네 친구.



나는 호기심이 많고 다양한 것들을 좋아한다. 관심사도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상한 객기 같은 건데 알고리즘이 나의 생각을 읽었다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영상을 띄워 주면 그것을 보지 않고 다른 관심사로 눈을 돌린다. 이때에도 나의 그 이상한 기질이 나오는 것이다. 알고리즘을 타고 내가 관심 있는 것을 보고 싶지만 또 알고리즘이 내 생각을 꿰뚫어 보고 조종하려는 것은 싫다. 누군가 나의 스타일을 지레짐작해서 이런 스타일이 잘 어울릴 것 같다던지 이런 스타일 좋아하지 않아라고 하면 그때도 나는 상대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정말 내 스타일이고 마음에 든다면 생각은 달라지겠지만. 그래서 알고리즘이 혼동을 겪으며 재빠르게 재탐색을 하지만 난 금세 또 다른 관심사에 눈을 돌리고 결국 알고리즘은 재탕된 영상만 반복적으로 내게 보여 주고 나는 지루함을 느끼며 꺼버린다. 내가 관심을 보인 것을 3개 이상 보여주면 나는 지루함을 느끼고 다른 것을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알고리즘이 버거워하는 것을 나는 느낀다. 알고리즘이 띄워준 상품 광고도 아니 나 그거 관심 없는데 하고 지나가 버린다. 분명 방금 전까지 검색했던 것이라 알고리즘이 나에게 이거 사라고 권하지만 나는 노를 외치며 사지 않는다.


그러니 알고리즘도 내게 보복하는 것일 수 있다. 일관성 있게 같은 관심사의 게시물을 올리라고 말이다. 하지만 난 또 청개구리처럼 다채로운 나의 관심사들을 게시물로 올린다. 그러면 나의 게시물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하지 못한다. 지금 이 구조를 계속 반복하는 중이다. 아니면 나의 관심사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는 것들이 아닐 수도 있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하루만 해도 어마어마한 게시물들이 쏟아지는데 알고리즘도 재미없는 것은 걸러 내고 재미있는 것들을 가지고 일을 해야겠지. 나라는 사람도 재미있는 게시물과 내가 관심 있는 게시물을 환영하니까 인생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다 사람들이 관심 있어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무래도 타인의 관심을 끌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좋고 그것들이 빛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나는 언제나 고유한 나로 살고 싶은 사람이다. 가끔은 유행하는 것들 남들이 하는 것들에 시선을 돌리고 추구미를 갖게 하는 것들에 동경을 품지만, 결국 내 스타일이 아니면 오래가지 않았다. 독서와 기록을 좋아해서 사람들의 트렌드나 누군가의 독서나 기록의 방법이 탐나 따라 해 보지만 이것은 나와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양한 것을 경험해 볼 수는 있지만 고유한 나의 것을 만들어 가야 한다. 남에게 휘둘릴 것들이 세상에 넘쳐 나고 남들 따라가기 바쁘다. 현재의 내가 그렇게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하며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핸드폰을 핸드폰 파우치에 넣어 두고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멀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알고리즘의 노예를 청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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