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걷기 운동 겸 산책 삼아서 거리를 걷다 보면 땅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보게 된다. 그것도 하루에 하나씩 꼭 발견한다. 마스크, 장갑 한 짝, 닭다리 하나, 키링, 꼬리빗 등등 누군가가 잃어버리고 간 그것들에 시선이 간다. 그리고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궁금해진다. 저 물건은 어떤 사람의 것일까 또는 저 물건을 잃어버리고 속상했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듯 잃어버림과 동시에 잊어버렸을까 다시 찾으러 올까 뭐 이런 생각들을 한다. 나의 경우라면 나는 물건에 대한 애착이 많은 사람이므로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닌 거라고 생각하는 물건도 소중히 대하기 때문에 분명 다시 찾으려고 애를 쓸 것이다.
걷기 운동하고 기구 운동하러 가는 맨발 공원의 정자에 어느 날 핑크색 어린이 장갑이 한 짝 놓여 있었다. 그것을 보며 ‘아이고 또 누가 장갑을 한 짝 잃어버렸네’ 속으로 생각했다. 왜 어떤 사람의 물건인지도 모를 그것들을 보며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꼭 주인을 다시 만나기를 바랐다. 나는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은 찾아 주려고 하기보다 그 자리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야 주인이 다시 되돌아와서 찾아갈 테니까. 전에 아끼던 아이보리색 카디건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더워서 가방에 걸쳐서 들고 다녔는데 어디서 떨어진 것인지 집에 돌아와 보니 카디건이 없었다. 아끼던 것이라 속상했다. 그래서 다음 날 다시 어제 왔던 길을 돌아가 보았다. 그런데 어떤 고마운 분이 땅에 떨어져 있던 카디건을 누가 밟을까 봐 어느 기둥에 걸쳐 둔 것이다. 어찌나 감사하고 카디건을 다시 찾아서 기뻤는지 모른다. 덕분에 카디건은 누구한테 밟히지도 않고 미아보호소에 보호되어 있던 것처럼 그렇게 보호되어 있었다. 그때 이후로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 잃어버린 물건은 처음 잃어버린 장소에 있어야 주인을 만나기 쉽다고.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 아이는 움직이지 말고 그곳에 있어야 한다. 엄마는 잃어버린 아이를 찾기 위해 기억을 곱씹어 아이랑 왔던 길을 차근차근 되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확률적으로 둘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인데, 이때 아이가 엄마를 찾겠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누가 엄마를 찾아 주겠다고 데리고 다니기 시작하면 낭패이다. 그러면 엇갈리기 시작해서 더 찾지 못한다. 버리고 간 것이 아니라면 그 자리에 있는 편이 났다고 생각한다. 그 자리를 떠날 거면 흔적을 남겨 두던가.
주인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장소에 찾으러 왔는데 그 물건이 사라지는 순간 운명이 엇갈리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버스 정류장에서 곰돌이 귀가 달린 모자가 카드 잔액 확인하는 기기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내심 뿌듯했다. 그리고 주인이 찾으러 왔을 때 곰돌이 모자가 그곳에 있어서 기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맨발 공원 정자에서 발견한 핑크색 어린이 장갑 한 짝은 이틀 뒤에 사라졌다. 청소하시는 분이 버렸거나 주인이 찾아갔거나 했을 것이다. 주인이 찾아간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뒤 장갑이 다시 돌아와 맨발 공원 정자에 이번에는 반대편에 누워 있었다. 의문스러웠다. 버려진 것도 아니고 주인이 찾아간 것도 아니라면 녀석이 자유를 얻은 김에 어디 세상 여행이라도 다녀왔나? 아니면 누군가 가져가서 쓰다가 다시 돌려놓았거나 주인이 이번에는 반대쪽 장갑을 다시 잃어버렸거나 하는 온갖 상상을 해본다. 그것도 아니라면 장갑은 주인을 떠나 가출을 했는지도 모른다. 새 주인을 만나고 싶어서 말이다. 이번에도 나는 건드리지 않고 장갑을 그곳에 그대로 둔다. 장갑은 이틀 정도 그곳에 머무른 후 또 사라졌다. 이번에는 원래 주인을 만나서 귀가했거나 장갑 한 짝이 필요한 새 주인을 만났기를 바란다.
잃어버린 것들을 대하는 자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잃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하고 잃어버림과 동시에 잊어버리거나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지닌 사람은 속상함에 다시 그것을 찾으려고 애쓸 것이고, 그것을 찾아 나설지 아니면 잊고 살아갈지 갈등하기도 할 것이다. 세상에는 잃어서 좋은 것이 있고 슬픈 것들이 있다. 전에는 잃는다는 것에 대한 집착이 강했고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았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 잃으면 안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를 잃기라도 하면 크게 상심을 했고 그 상심의 자리는 오래 머물렀다. 살다 보니 잃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음을 배우게 된다. 자연히 잃는 것도 있고 잃어야만 살 수 있는 것들도 있다. 무엇인가를 잃었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새것을 얻기 위한 비움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물건을 잃어버리면 다시 돌아가 찾는 노력은 하지만 크게 애쓰지는 않는다.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만나지 못했다면 인연이 끝났구나 하고 생각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들이 없듯이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들도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한다. 하지만 잃은 것에 대해 무심하고 싶지는 않다. 그 잃은 것들로 내게 무엇이 남았고 얻었는지를 기억하고 싶다. 잃은 것이 단지 잃은 것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요즘은 상실에서 얻은 것들을 영감으로 시를 쓰고 있다. 현재 나에게 상실이란 상실로 피어나지 않았기에 그것에 대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암 환자가 된 나는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 당연하지 않은 것들로 바뀌었다. 많은 것들을 한 번에 잃어야 했지만 나는 크게 상심하지 않았다. 그때도 나의 운명은 바뀔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잃은 것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난생처음 빡빡이 머리가 되는 날은 세상 슬펐는데 머리카락을 다 밀고 나니 좋은 점도 많았다. 세면대에서 아주 빠르게 머리를 감을 수 있다는 것 (사실 감는다 라기보다 닦는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생각보다 빡빡이 머리가 너무 잘 어울렸다는 것, 그래서 힙한 스타일을 할 수 있었던 것, 수영장 다닐 때 수영모 쓰기 쉬웠던 것 등등 좋은 점이 더 많았다. 그리고 독성 항암으로 인하여 새롭게 머리카락이 나면 세포가 변형이 되어서 곱슬머리가 아니었는데 곱슬 머리카락으로 자란 난다. 현재의 나의 머리카락도 고불고불 할머니들 파마해 놓은 것처럼 꼬부라져 있다. 내 머리카락은 유독 더 파마한 머리카락처럼 그래서 같이 항암 했던 여사님들이 놀랄 정도이고 우리 엄마는 내내 부럽다며 감탄을 하기도 한다. 파마 값 벌었지 난생처음 하는 헤어스타일 해보지 빡빡이 되고 새롭게 얻은 것이 더 많다. 그러나 이 곱슬 머리카락도 두서없이 자라는지라 관리는 쉽지 않다. 머리카락이 너무 빠글대서 응답하라 1988 덕선이 엄마 머리 같은데 좀 창피하기도 하지만 늘 나에게 최면을 건다. 나는 힙하다 나는 힙하다....
1월에 시집 출간 북토크를 갈 때에도 곱슬거리고 위로 붕 뜨는 머리카락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고민이었다. 은둔이로 사람들 만나지 않고 살 때야 모자 쓰고 다니고 집에서는 그냥 되는대로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 오랜만에 서려니 외적인 부분이 신경이 쓰였다. 방안은 곱슬머리에 제일 무난하면서 붕 뜨는 머리카락을 잠재울 헤어밴드 착용하는 거였다. 북토크 하는 날 착용한 헤어밴드는 검은색 얇은 머리띠에 핑크색 밍크 장식이 달린 것이었다. 집에 있는 많은 머리띠를 하나씩 착용해 보았는데 그것이 가장 헤어 스타일을 무난하게 보이게 했다. 하지만 역시나 스타일이 튀기는 했나 보다. 북토크 후기 남겨 주신 블로그 찾아다니면서 댓글로 인사드리고 후기를 봤는데 스타일이 독특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복고풍이라는 말도 해주셨는데 최대한 얌전하게 스타일링한 거였는데 아무래도 헤어스타일과 액세서리 그리고 포인트로 신었던 보라색 스타킹이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평범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병이 있나 보다. 그냥 검은색 신어도 되었는데 보라색 스타킹이라니... 아니나 다를까 북토크 오신 분들과 단체 사진 찍는데 거의 50명 가까이 있던 그곳에 내 보라색 스타킹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 복고풍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했다. 나의 추구미 중 하나는 레트로이니까.
내내 허리까지 오는 긴 갈색 머리카락을 치렁거리며 살던 내게 머리카락을 잃었지만 새로운 경험과 에피소드를 얻었다. 아마 나의 암소식을 모르고 프로필 사진으로 나의 소식을 아는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파격 변신이니까. 삭발 상태의 머리 스타일도 마음에 들어서 다시 한번 자를까 하는 생각도 요즈음 종종 하는데 아직 나의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기에 곧 취직을 해야 한다면 대외적 이미지도 있으니 머리를 길러야 한다. 1년을 기르고 있는데 아직 단발도 안된 거 보면 머리카락이 그렇게 빨리 자라는 것은 아닌가 보다. 머리카락 외에도 나는 직장을 잃었지만 자유를 얻었으며 시인도 되었고 건강을 잃어서 고생을 했지만 건강하게 사는 식생활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가치관 하나가 깊게 뿌리내렸다. 세상에 수많은 잃을 것들에 내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몸에 수술 흉터가 있으면 어떠한가 내가 살아 있으면 되었지, 머리카락 좀 없으면 어떠한가 살아 있으면 되었지, 몸이 불편해져서 전보다 돈을 못 벌게 된다고 해도 어떠한가 살아 있으면 되었지.. 모든 생각의 끝은 내가 살아있으면 된 거다. 내가 있어야 내 삶도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러니 어떠한 상실이 와도 나는 그것을 상실로 피우지 않을 것이다.